아크로에 오는 분들은 대개 공부는 한 가닥 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공포족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처지와 상당히 다르지요. 아직도 해결책을 제대로 못 찾고 있던 차에 시닉스 님의 댓글에 필을 받아서 이 글을 올려 봅니다.

1. 저는 1971년 1월에 태어났습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배운 거라고는 할아버지께 천자문을 조금 배웠더랬습니다. 대략 6페이지이므로, 대충 100글자 정도를 배운 것 같습니다. 글자의 모양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요, 단지 노래 가사처럼 음과 뜻을 흥얼흥얼 외웠습니다. 글자를 외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이 기억할 수 없어서 금방 중단하게 되었으므로, 실제로는 천자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한자를 배울 때까지 말입니다.

2. 둘째 누나는 3년 연상인데, 저는 가끔 둘째 누나가 산수 숙제를 하는 것을 옆에서 보았습니다. 왠지 쉽고 재미있어 보여서, '나도 저걸 배웠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3.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받아쓰기 시험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은 이 시험을 통해서 누가 선행학습을 했는지 파악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0점을 맞았죠. 글자라고는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요.

4. 제 집안은 모두 기독교인이어서 저도 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에서는 '요절 외우기'라고 해서, 성경의 한 문장을 외우는 숙제를 내 주곤 했습니다. 또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는 멜로디를 외워야만 부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악보를 보는 훈련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5. 국민학교 1학년 말에 받은 통지표에는 평균 70점~72점 정도가 기록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우리 반에는 신양균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일찌감치 뭘 배운 모양입니다. 체구는 작은 편이었지만, 똑똑해 보여서 다른 아이들이 약간 기죽을 정도였습니다. 저도 기가 죽었지요.

6. 2학년이 되자 구구단을 외우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그 날은 오후 수업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심술궂게도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제일 먼저 외우는 학생은 제일 먼저 집에 보내준다' 모두들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내주는 숙제인 요절을 외우는 요령으로 열심히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별로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마음 속으로 9단까지 다 외우고, 두 번이나 혼자서 외워 보았지만 막히거나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선생님께 외워 보겠다고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외우기에 성공해서 제일 먼저 교실에서 나갈 수 있었습니다. 텅 빈 운동장을 걸어나오면서 왠지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왜냐 하면 머리가 제일 좋다고 생각한 신양균도 아직 다 못 외웠으니까요....

7. 2학년 연말에 받은 통지표에는 평균 점수가 대략 80점 대였습니다. 누구처럼 집에 가서 공부를 따로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농촌읍에 사는지라 당시에는 그런 걸 관심 있어 하는 부모가 별로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 정도나 할까, 따로 공부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동네 형이 과외를 한다길래 구경을 가서 같이 모여 숙제를 한 일은 딱 한 번 있습니다만, 그 뒤로도 과외는 받은 적이 없습니다.

8. 3학년이 되자 평균점수가 90점대로 올라섰습니다. 이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말까지 거의 90점대에서 놀았습니다. 성적이 잘 나오자 공부 잘하는 애로 인정을 받았고, 덕분에 3학년 2학기에는 신양균을 떨궈 내고 반장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말은 안 해 봤지만, 신양균은 아마 마음 속으로 충격을 좀 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반장이라는 자리가 '내 것'이었다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으니, 자존심도 상하고 추격당하는 두려움도 느끼고 그랬겠지요. 남들은 1등이 누가 되든 신경을 안 쓰지만 본인은 1등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을 테니까요.

9. 국민학교 5학년 때는 어느 날 선생님이 분수의 나눗셈을 다른 학생들에게 가르쳐 보라고 한 일이 있습니다. 칠판 앞에 가서 폼을 잡고 설명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말이 느려졌습니다. 전에는 말을 느리게 하지 않았는데, 이 때부터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말이 느려졌습니다. 그리고 항상 남을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요. 지금도 말이 빠르게 안 나옵니다.

10. 국민학교 6학년 때는 어느 날 느닷없이 수학경시대회에 나가라는 말을 듣고 시험을 쳤던 일이 있습니다. 그런 대회가 있다는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그것말고 기억난다면, 중학교 반 배정을 위한 시험을 쳤던 일이 생각납니다. 이것도 느닷없이 치게 된 시험인데, 어쨌거나 340명 중에서 3등을 해서, 입학식 때 3만원 장학금을 받았더랬습니다. ^ ^

11. 중학교 1학년 때는 IQ검사를 했더랬습니다. 130이 나왔고, 학년에서는 제일 지능지수가 높다는 말을 선생님께 들었습니다. 제가 6학년 때 반장을 할 때 반 전체의 생활기록부를 들여다 본 적이 있는데, 국민학교 2학년 때인가 지능검사를 했고, 118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더군요. 제 기억에는 지능검사를 한 기억이 없는데 말입니다. 지능지수에는 아무 관심도 두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여길 뿐이었죠.

12. 중학교 1학년 때 딱 한 번 시험공부를 사흘 전부터 해 보았습니다. 그 때까지는 저는 시험을 앞두고 며칠 전부터 시험대비공부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시험을 대비해서 공부하는 것은 시험 당일 평소보다 일찍 등교해서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것으로 끝냈습니다. 그러면 공부는 언제 했냐 하면, 수업시간에만 했습니다. 그저 수업시간에만 선생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들었을 뿐입니다. 수업시간에 딴 짓 하는 친구들을 미워했고, 공부에 방해한다고 생각해서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쉬는 시간이나 집에서는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았죠. 3일전부터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해 봤는데, 단 2시간을 앉아 있기가 힘들더군요. 게다가 날씨도 추워서 책상에 가 앉아 있기가 싫었습니다. 그 결과는 학년 1등이었습니다.

13. 중학교 2학년 때 호세 드 실바의 [마인드 컨트롤] 을 읽었습니다, 제 인생을 안 좋은 쪽으로 꼬이게 만든 책입니다. 열심히 암기하는 것보다는 암기의 요령인 마인드 컨트롤 기억 방법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죠. 시험 성적이 나쁘면 마인드 컨트롤 기억 방법이 해결책이 될 것 같았습니다. 좀 특이한 경험도 했는데, 이 경험 때문에 인간의 기억이라는 게 지워진 것이 아니라, 인출해 내지 못한 것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14. 물상, 생물, 화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실험도 좋아하고, 과학 이론을 공부하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시골은 시골이라 이런 관심을 더 심화학습시킬 아무런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15. 중2 때 영어경시대회를 대비해서 선생님께 성문기초영어를 공부하게 되었는데, 외우는 것이 싫어서 며칠 나가다가 때려치웠습니다. 열심히 외워도 며칠 지나면 다 잊혀진 것 같아서 외우기를 무척 두려워했습니다. 학교 영어성적은 90점대가 나오는데, 자신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단지 친구들보다 단어를 더 빨리 외우고 더 오래 기억할 뿐이지, 자신감을 느끼면서 영어단어를 외우지는 못했다는 말입니다.

16. 중3 여름에는 수학경시대회를 준비했습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교내 경시대회에 나가서 시험을 치고, 다시 군내 경시대회에 나가서 모두 6명인가가  도 경시대회를 같이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교실에서 나와서 다른 교실에 가서 수학참고서만 죽어라 풀었지요. 중1, 중2, 중3 과정을 반복해서 풀었습니다. 많이 반복해서 풀다 보니, 나중에는 그냥 암산을 할 정도였습니다. 도 경시대회에서는 생전 본 적이 없는 문제들이 나오더군요. 속도나 거리를 묻는 서술식 방정식 문제가 나왔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풀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0점을 맞은 것 같고, 같이 갔던 절친 하광명은 입상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하광명에게 추격당하는 느낌을 받곤 했더랬습니다. 이 준비 때문에 삼각함수 사인, 코사인, 탄젠트를 못 배웠던 게 기억납니다.  

17. 중3 5월엔가 도 과학경시대회에도 나갔는데, 이건 언제 그랬는지 정확히 시기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중1, 중2, 중3 과학 과정을 전부 반복해서 풀어보았죠. 하루 종일 과학참고서만 보았더랬습니다. 그 때 제 공부를 봐 주셨던 이순이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매력적인 분이셨죠. ^ ^ 그래서 살짝 연모하기도 했습니다. 하루 종일 과학공부만 생각하는 '몰입'을 이 때 경험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이 아무 가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저 과학공부에만 관심이 갔더랬습니다. 몇 년 뒤에 친구에게 들으니, 이순이 선생님은 그 때 막 교사로 발령받아서 왔다가, 자꾸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 저 때문에 진땀을 흘리시곤 했답니다. ^ ^ 저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거나 하면 그냥 질문을 했습니다. 시골 아이들이라 질문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마음껏 질문해도 다른 아이들의 공부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별로 이상한 질문도 아닌데, 아마도 교사 생활이 처음이라 무척 당황하신 모양입니다. 

18. 국민학교 중학교는 하동읍에서 다녔습니다만, 고등학교는 진주에 있는 고등학교를 가기로 했습니다. 진주시는 서부 경남의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서울대 등을 가기 위해서 공부하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연합고사를 봐서 성적순에 따라 입학 여부가 결정되었습니다. 체력장 20점을 포함해서 모두 200점짜리 시험입니다. 성적이 낮은 학생은 선생님이 원서를 안 써 주려고 했습니다.

19. 저는 먼저 과학고등학교 시험에 응시했더랬습니다. 진주에 경남과학고등학교가 생긴지 1년이 지났던 때였습니다. 여기 시험은 체력장에 20점, 지능검사 적성검사에 40점, 지필고사에 140점이 배정되었습니다. 첫 날은 시험을 보고 적성검사 지능검사를 합니다. 둘째 날은 면접을 봅니다. 아침에 지필고사를 봤더니, 지난 3년간 풀어본 문제는 딱 한 문제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도 수학경시대회에 처음 봤던 바로 그 문제입니다. 나머지 문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떨어지겠구나 하고 미리 겁을 먹었습니다. 오후에는 지능검사를 하는데, 문제지를 절반도 못 풀었는데 시간이 종료되려고 합니다. 옆을 슬쩍 봤더니, 어떤 학생은 다 풀어 놓고 문제지를 처음부터 검산을 하고 있더군요. 기가 팍 죽었습니다. 60명 정원에 129명이 응시했고, 당시에 제주도에서도 응시하러 온 학생이 있었습니다. 학년 석차가 5% 이상이라야 하므로 날고 긴다는 아이들이 응시자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둘째 날의 면접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나중에 과학 선생님이 과학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문의해 봤다고 하시면서 성적이 13등이었다고 가르쳐 주시더군요.

20. 연합고사 성적은 196점이 나왔습니다. 시험을 치는 당일에는 만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4점이 빠졌더군요. 이 때 진주시의 연합고사 커트라인은 170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진주시보다 커트라인이 높은 지역은 울산과 마산 뿐이었습니다. 서울은 커트라인이 겨우 154점이었던가 그랬고요.

21. 중3 때는 야간 자율학습을 했습니다. 저는 주로 숙제하는 시간으로 사용했고요, 공부 자체에는 별로 열의가 없었습니다. 수학 과학은 모르는 게 거의 없었고, 영어나 국사 같은 과목은 외우기를 싫어했습니다. 호세 드 실바의 [마인드 컨트롤]에 사로잡혀서 열심히 외우는 일에는 노력하지 않고, 그저 외우는 암기법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담임선생님 눈에는 제가 늘 공부하지 않는 학생, 지금은 반에서 1등이지만, 연합고사에서 낙방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22. 고등학교는 진주에서 다녔는데, 이 학교는 평준화 이전에는 3류 고등학교였고, 평준화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일류급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한 학년의 10%가 서울대에 입학했던 1985년도 있었으니까요. 이 학교는 수학을 가르칠 때 책을 절반으로 나누어 앞 부분과 중간 부분을 동시에 가르쳤습니다. 3년 과정을 2학년 연말에 끝내고, 3학년 때는 1년 내내 문제풀이 위주로 가르쳤습니다. 아침 오후로 보충수업이 있었고, 야간에는 밤 10시 30분까지 자율학습이 있었습니다. 방학 때도 학교에 나와서 보충수업을 받았습니다. 무척 빠른 진도였고, 파김치가 되도록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전에는 공부다운 공부라는 것은 해 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저는 이런 방식에 적응할 수가 없었죠.

23. 제가 생애 최초로 수학에 좌절을 느끼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직선의 기울기를 배우던 중이었습니다. 좌표 평면 위의 두 점이 있을 때 그 점을 지나는 직선의 기울기를 어떻게 구하는지, y-y1=m(x-x1)이라는 수식을 유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두 식을 변변 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여기서부터 공부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께 물어도 그 유도과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요.

24. 그 다음에 수학에서 좌절을 느낀 것은 공식이건 뭐건 잘 외워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영어단어나 숙어도 그렇습니다만, 기억력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어제 공부한 것은 오늘 생각이 안 나고, 오늘 배운 것은 내일 생각이 안 나더군요. 2주쯤 제자리 걸음을 하다가 그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영영 공부를 포기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공포족이고, 공부라고 하면 울렁증이 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5. 고등학교 1학년 때 지능검사와 적성검사를 했는데, 지능지수는 140이 나왔습니다. 한국인의 지능지수는 대충 10을 빼면 미국의 지능검사 결과와 같아진다고 하니, 미국식으로 130쯤은 되겠죠. 적성검사 결과 가장 적성이 높은 분야는 수학이고, 그 다음이 사회 분야이더군요. 이 두 가지 분야가 두드러지게 적성점수가 높았습니다.

26. 공부를 포기하고 난 다음에는 수업시간이 지옥에 있는 것 같더군요.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업을 계속 듣고 있어야 하니, 얼마나 따분하고 괴로웠겠습니까? 그래서 뒷자리에 앉아서 선생님 몰래 만화를 보고, 무협지를 보곤 했습니다. 웃기는 건, 그래도 중학교 때까지 배운 가락이 있다고 성적이 학년에서 중간 정도는 나오더군요. 대충 찍어도 그 정도가 나오니, 정말 웃기는 일이죠. ^ ^ 죽어라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순이 저보다 낮은 친구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27. 학교수업이 진도가 너무 빨라서 제가 못 맞추니까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2학년 때 가출 소동을 일으키고, 1년간 휴학하기도 했습니다. 공부를 포기했으니 대학을 갈 수가 없었죠. 그러나 3학년 11월에 가출 소동을 또 한 번 벌이고 결국 연암공업전문대 전자과에 진학했습니다. 전자과 전공의 제일 기초 과목은 회로이론이라는 과목인데요, 첫 날 강의를 받으러 갔더니 적분으로 시작하더군요!!! 인테그랄..... 블라블라.... 적분으로 V=IR이라는 공식을 유도하는데, 첫 날부터 저는 잘못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공부와 담을 쌓아서 미분도 적분도 아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전자공학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뒤늦게 혼자 수학을 공부하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 외울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형편인데요.... 결국 간신히 졸업장은 땄습니다만, 전공쪽으로는 취직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28. 외우는 것이 두렵고, 어떻게 외워도 다음 날 거의 다 잊어버리니까 운전면허 필기시험공부에 1개월이 걸렸습니다. 한 3주는 공부하기가 무서워서 책을 처박아 두고 있다가, 간신히 용기가 나자 1주일도 안 걸려서 필기시험공부를 완료했습니다. 기억력 자체는 옛날처럼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필기시험, 주행시험, 코스시험 모두 단번에 합격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시험에 떨어져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29. 공무원시험도 다른 시험도 공부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새로운 분야의 직장에 들어가 뭘 배울 용기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문배달이나 하면서 16년을 허송세월했습니다.

30. 저는 지금도 공포족입니다. 어떻게 공부해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외우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부해 보겠다고 동영상도 많이 다운로드해 놓았습니다만, 쳐다 볼 엄두가 안 납니다. 경제학을 공부해야 네오경제도 궁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자신이 안 생깁니다. 이 문제만 해결한다면 제 인생도 꽃이 필 것 같은데 말이죠....

여러분의 충고를 기대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