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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는 과학의 타자라.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3029&article_id=62431
아크로에서 이 주제에 대해 관심있는 분이 많은 것 같아 링크 걸고 논쟁을 기대해 봅니다.
여기서 떡밥이란 말 그대로 떡밥입니다. 진중권 글은 미끼일 뿐, 논쟁의 진짜 주제와 내용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거지요. 아크로 아니면 어디서 이런 논쟁을 대중적으로 해보겠습니까? 안그래요?
ps - 진중권 글 참 잘써요.
저는 소년시대에 장래에는 과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저는 온갖 사물에 의문을 품고 있었고, 하동읍 국민학교 중학교의 친구들은 그런 의문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더랬습니다. 그래서 이런 의문들을 풀어내려면 과학을 배워야 하고, 과학으로 풀어지지 않은 의문들이 있다면 그 의문들을 내가 풀어보자.... 이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고등학교 이후로 공부와 담을 쌓았기 때문에 진짜로 과학자가 되지는 못했습니다만, 의문을 품고 의문을 해결하려는 성격과 태도는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기독교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문제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집안이 기독교인 집안이고, 저도 교회에 다녔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진화론의 증거들을 무시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상담하고 궁리한 결과 기독교를 버리게 되었습니다. 50여명 가족 친척들 중에 유일하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죠.
공부와 담을 쌓았으니, 과학 쪽으로는 무슨 의문을 품지도 해결할 노력을 하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관심사가 인간의 삶이나 인간의 제도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전문대를 다니던 1991년에는 '교육 리엔지니어링'이라고 이름 붙인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궁리해 냈습니다. 리엔지니어링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교육을 리엔지니어링하게 되면 아마도 무시험 대입제도를 도입할 것 같습니다.
그 뒤에는 통일을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좋은가,
부정부패를 없애려면 어떤 방법이 좋은가,
아파트값을 내리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영어를 습득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은가,
내가 잃어버린 학습능력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고속도로에 폭설이 내려서 차량이 고립되면 어떻게 해결하면 좋은가,
모든 사람을 가난에서 구제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이것은 궁리를 진행 중입니다),
....
주제넘는 질문들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자연과학자는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의문을 품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는 사람은 맞습니다. 저는 과학자일까요, 비과학자일까요?
주제가 모호해서, 진중권씨가 뭐를 이야기 하고 싶은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 많은 과학적 사실의 발견이 '우연적'인 이벤트로부터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과학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과학적 사실의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느냐?"가 아니라, "그 과학적 사실이 무엇이냐?" 하는 점입니다. 어떤 사실을 맨처음 발견할때 혹은 어떤 아이디어를 얻게 될때 매직 8볼에게 물어봤건, 뮤즈가 던진 망치에 머리를 얻어 맏았건, 혹은 무슨 니벨룽겐의 반지같은 대 서사적 모험을 겪은 끝에 알아냈건 간에, 그 발견의 결과물로서의 사실/아이디어 자체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다른 과학자들이 관심이 있는건, 그 발견/아이디어가 정말로 사실인가 하는 내용입니다. 그렇기 위해 과학적 발견을 보고하는 논문들은 몇가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a) 이 새로운 발견/아이디어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과 어떻게 서로 부합하는가. (만약 부합하지 않는 다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이론하에서 부합하지 않는가? 이 새로운 사실과 기존의 사실을 아우를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수 있는가?) (b) 이 새로운 발견을 어떻게 실험/관찰의 재현을 통해 증명할수 있는가. 입니다.
과학자 (혹은 어떤 인간)의 두뇌가 새로운 발견을 할때, 기계적인 연역이 아니라, 소위 '영감 inspiration'을 통한 몇단계의 비약을 거치는 일은 사실은 드문 일이 아니라, 일상 다반사입니다. 진중권씨의 글에 나온 예시에서와 같이, 자기가 늘 들여다보던 문제가 있었을 때, 다른 사건/사물을 들여다보다가, 그 둘간에 어떤 (추상적인) 연관성을 발견하고 그 유사성을 자신의 원래 문제에 적용해서 새로운 해를 찾아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항상 자기 분야의 한문제만 보는게 아니라, 여러 다른 분야의 문제들을 폭넓게 들여다 보도록 추천받습니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영감 그 자체는 과학적 발견의 30%정도 밖에는 차지 하지 못합니다. 이 영감을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진정한 과학적 발견으로 만드는 일, 그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이 진짜 과학자의 일인 것입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사과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하학적 증명을 통한 운동방정식에 관한 책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책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평론이야 얼마나 좋습니까? 진중달이 변희재에게 혼난 후 이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 같아서 흐뭇합니다. 이제 진중달이 철 들었군요.
과학에서의 영감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해 예전에 테드사이트에서의 어떤 유명인사는 열심히 한 자에게 우연히 오는 요정의 선물이라고 말을 합니다. 공감합니다.
진중권의 글에 흥미를 끄는 구절이나 주제는 많습니다. 세렌디피티의 유래도 그렇고 가설과 전제로부터 합리적으로 추론해서 발견으로 이어진다는 일반의 통념과 달리 영감에서 시작해 합리적 추론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즉 영감은 꼭 예술에만 적용되는 단어는 아니라는 거지요. 제가 과학자가 아니라 자신은 하지 못하지만 제 생각에 그 외에도 전혀 대립되는 분야라 여겨지는 과학과 예술, 혹은 문학이 의외로 서로 비슷한 경우는 흔합니다.
두 분야 모두 영감으로 시작해 최종 결과물을 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분야 모두 - 특히 현대에 이르러- 온전한 개인의 창작품이라기보다는 기왕의 성과에 힘입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 비어 등이 증명했듯 - 서술 구조나 기능도 비슷합니다. 많은 스토리, 특히 대중적인 영화들이 3막 구조를 갖고 있듯 대개의 논문도 서-본-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검은 바탕에 흰 제목, 마지막에 작품에 영향을 미친 요소 - 영화는 스탭, 논문은 참고문헌-이 나오는 것도 비슷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논문이든, 소설이든 그 안의 담론구조엔 당대의 권력 지형이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제가 흥미를 느낀 건 이러한 유사점도 있지만 진정한 차이점이 무엇인가입니다.
전 진중권 글의 유려함에 과도한 단순화가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위대한 발견이 우연과 영감에 더 의존한다고 말하는 것부터 그렇군요. 연금술사 술이 금 만들려다 그 부산물로 화학을 발전시킨 것 맞지만 그 엉뚱한 결과조차 과학적 방법에 의존했기에 가능했던 거지요. 연금술사들이 자신의 직업에 필요한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아무리 우연과 영감이 겹쳐도 어림없는 일입니다. 아리키메데스도 아리키메데스니까 목욕탕에서 부력 발견했지 저같은 사람에겐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연과 영감이 과학자들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것도 사실일까요? 제 주변 과학자들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노벨상 탈 재목은 20대때 영감으로 결과 얻고 그 나머지 시간은 증명으로 보낸다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하던데요?
전 오히려 영감과 우연에 대한 과도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이 떠올린 영감과 우연 중에 위대한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사장, 혹은 폐기되는게 훨씬 많습니다. (이 또한 예술가와 비슷합니다.) 영감과 우연 조차 과학자들은 과학적 훈련을, 예술가들은 예술적 훈련을 받을 수록 더 많이 형성됩니다.(이 또한 둘이 비슷)
과학자들이 영감과 우연도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되야 유의미하다고 말하듯
예술가들도 영감과 우연 또한 작품으로 구체화되었을 때 의미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많은 작가들이 반짝이는 영감이 떠올랐을 때 오히려 글쓰기를 묵히라는 충고를 많이 합니다.
과연 영감과 우연은 과학과 예술에게 무엇일까요?
둘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을까요?
이 것이 제가 던지고자 했던 떡밥입니다. 그런데 그 동안 하도 떡밥을 남용해선가 별로 입질들을 안하시네...잉..........
벤젠의 고리 문제를 풀기 위해서 궁리에 궁리를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잠재의식은 계속 이 문제를 풀고 있다가 그게 꿈으로 나타났다는 거죠.
의식이 꿈에 영향을 주는 것은 가끔 경험하지요.
가끔은 거의 환상적인 꿈을 꾸지 않습니까? ^ ^
수학 공식에 대입해서 답을 내는 문제라면야 그저 각 요소를 대입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답을 모르는 문제, 공식이 없는 문제는 그럼 어떻게 푸느냐.....
바로 여기에 우리의 경험에서 나오는 영감, 우연히 떠오르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끼워서 안 들어가면 방향을 뒤로 바꿔서 끼워 보는 것처럼
이 사물 저 사물을 대입해서 억지로 끼워 맞춰 보는 것이죠.

그나저나 Serendipity하니 1000불짜리 Sundae 파는 가게 생각이 나네요. 뭔 아이스크림을 1000불씩이나 받는지 모르겠지만, 그거 먹으려면 이틀전에 예약하라고 합니다. 이 가게 2만5천불짜리 금가루를 뿌린 아이스크림을 팔겠다고 하고는 일주일쯤 있다가 위생문제로 시에서 강제로 가게 문을 한달간 닫도록 한적이 있는데, 이후로 장사는 여전히 잘 하고 있더군요.
욕망지인/ 기초되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으니 꿈 속에 영감이 나타났겠지요. 저처럼 기초없고 놀 궁리 하는 사람은 꿈 속에 노벨상 수상한 영감이 나타나 직접 설명해줘도 아침에 일어나서 '개꿈 꿨네' 한마디로 끝날 겁니다.
오마담님 지적에 동의하는건 적당히 안다는 것의 차이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기억이니 자신하진 못합니다만 수학 잘하는 아이들이 어느 단락 초기에선 헤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잘 못하는 아이들, 특히 암기력 뛰어난 좋은 애들 점수가 더 좋기도 합니다. 그 과정을 잘 살펴보면,
잘하는 애들은 처음에 헤맵니다. 공식 나오면 과정 붙잡고 끙끙거리고 남들이 공식 대입해서 간단히 풀 때 엉뚱하게 그래프 그리며 헤매고 거꾸로 그래프 나오면 수식으로 증명한다고 버벅거립니다. 심지어 잘하는 애들 중에는 공식 외우면 헷갈린다며 간단한 문제조차 일일이 과정 전개하다 시간 보내기도 하죠.
반면 암기력 좋고 그런 애들은 수월하게 외워서 쭉쭉 진도 나갑니다.
그러다가...잘하는 애들은 어느 순간 머릿 속에 이미지 맵(다른 표현이 안떠올라 일단 이렇게...)이 형성됩니다. 수식 문제가 나오면 머릿 속에 그래프가 떠오르고 거꾸로 그래프를 보며 공식을 도출합니다. 야구하다 공이 떨어지거나 차가 정지, 혹은 가속도를 내는 순간에도 미적분을 떠올립니다.
잘하는 아이들과 못하는 아이들의 갈림점이 거기죠. 어느 단락에 대해 이미지 맵을 만드느냐 못만드냐가 결정적인 차이로 작용합니다. 문제가 변형되든, 응용이든 잘하는 아이들은 대개 그 이미지 맵 안에서 해결되지만 못하는 아이들은 손도 못대는 경우가 많죠.
뉴튼이 덧셈 뺄셈 잘했을까요? 글쎄요. 별로 그렇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잘하는 아이들이 단순 계산에선 서툰 경우도 꽤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이해하고 있었을 뿐더러 다른 아이들이 순차적으로 더하고 있을 때 이미지 맵이 있기에 맨 가장자리 숫자끼리 더하는 방법을 떠올렸겠죠.
많은 사람들이 덧셈 뺄셈 잘 못해도 천재더라, 중요한건 영감과 창의력이다...틀린 말은 아니지만 과정이 생략되있다는 점에서 별로 유용한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뉴튼이 덧셈 뺄셈 자체는 잘하지 못했을 지라도 숫자갖고 놀며 보낸 시간과 집중력은 다른 아이들보다 덜하지 않았을 것 같으니까요.
그래서 전 사실 중학교때까지 수학 사교육에 반대합니다. 이미지 맵 만드는 훈련이 필요한 시기거든요. 고등학교때야 워낙 급하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과학철학에서는 '발견'의 원리와 '정당화'의 원리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경험적 자료로부터 일반화된 원리를 기계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법칙은 세상에 없기 때문에 이론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창조적인 상상 (이걸 영감이라 부르건 어쨌건)이 필요하게 되지요. 하지만 이 가설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선 그야말로 철저하게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검증 과정이 필요하게 되는 겁니다.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건 이 정당화의 과정이지 처음에 가설을 끌어낸 학자가 이상한 꿈을 꾸었는지 도박에 미친 친구를 두었는지 여부는 전혀 알 바가 아니죠. 진중권은 늘 그렇듯이 전혀 다른 맥락의 이야기를 끌어들여 별 영양가 없는 결론을 내 놓는군요... ^^
과학의 필연성이란 것이, 발견 과정의 우연을 배제하는 것인가요? 제 머리로는 도대체 진중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불가능이군요.
제가 감히 단언하자면, 진중권은 지금 치매 초기 증상입니다. 나이 먹으면 저런 현상이 나타나기 쉬운데, 너무 빨리 나타나는 것 같군요.
너무 뻔한 논리적 일탈을 글쓰는 사람 본인이 잘 알아채지 못합니다. 글쓴 사람의 지성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그렇다고 진중권의 지성이 대단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리고,
쓰잘데없는 에피소드 동원해서 글 내용 대부분을 채우는 것은 정말 안좋은 글쓰기 습관입니다. 진중권의 이 글은 에피소드와 주장과의 연관도 매우 빈약하거니와, 에피소드의 분량도 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군요. 에피소드는 주장의 배경을 이해시키기 위해 간략하게 언급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고 에피소드가 글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면 그 에피소드 자체가 글의 주제 또는 소재가 되어야지요.
저런 글쓰기 버릇은 앞으로 고치기 힘들 텐데, 무엇보다 글 자체가 아니라 브랜드를 팔아온 글쓰기 버릇 때문입니다. 작년엔가 진중권이 서양 회화에 나타나는 죽음을 소재로 쓴 책(제목이 '춤추는 죽음'이던가?)을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두 권짜리였습니다) 읽어본 적이 있는데, 한심하더군요. 제가 서양 회화는 잘 모르지만, 글의 주제 자체를 끝까지 끌고가지도 못하는 내용을 단행본으로 엮어내다니...ㅉㅉㅉ
시닉스 님/ 과학자와 영감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새 공부/학습 이야기로 넘어갔군요. 이건 제가 제 경험담을 한 번 써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경험이 좀 독특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혼자만 독특하다고 여기고 있을런지도.... 여러분의 의견을 많이 들어봐야 되겠어요.
우연은 어림짐작법(heuristic, 발견술)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연이니까요. 뭔가 필연적인 것이 있어야 방법으로 써 먹을 수 있습니다.
진중권 영양가 없는 글을 썼네요
세렌디피티를 말하기 위해 장황하게 예시를 늘어놓았는데 정작 세렌디피니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빠져있고
스스로도 인정햇지만 우연이 과학적 발견으로 연결되는 것은 그만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세렌디피티를 강조하는 것은 모순이지요
그리고 결론부분에서 차라리 패러다임 이론을 주장하는 것이 더 나아보이는군요
시닉스님 그야말로 떡밥을 이리 고단수로 투척하시다니요 ㅎㅎㅎㅎ
뱀발
우연을 통하여 받은 영감이 대단한 과학적 업적으로 발견되었다는 사례를 엄청 제시햇는데 그거보다 수십만배는 우연이 없이
연구하는 도중 얻은 영감으로 또는 영감 없이도 발견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우연으로 얻은 영감을 과학적으로 그대로 말할수 없어 꾸며야 한다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과학에 대해 모르는 인문학자의 말
(저도 과학을 모릅니다마는)
우연에 의한 영감은 계기이지 논문이나 이론 발명의 완성이 아니지요
우연으로 영감을 얻었다고 해도 철저하게 과학적 이론과 증명으로 입증을 해야하겠지요
그리고 한가지 제가 아는한 여러가지 영감으로 해결한 사례들은 난제들을 붙들고 엄청난 몰입을 하고 있는 동안에 생기는 사건이라는 사실
결국 영감도 연구의 연장이라는
좌우간 진중권의 글은 망한글
별 의미도 내용도 논리도 안맞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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