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클의 오디오 논쟁을 보면서 -

고등학교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참 전쯤 되었겠네요. 친구가 그때 당시 싸구려인 <청자> 담배를 가지고 왔었습니다. 학교 뒷마당 저녁 10시쯤 되었을까 친구들과 모여서 담배를 몰래 피었죠. 저는 담배는 피우지는 않았지만 친한 친구들 대부분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같이 어울려 망도 봐주고 했습니다. (양아치 같은 학생은 아니었고요, 착하고 성실하고(?), 다들 아주 좋은 대학에 다 들어갔었죠. )
 
그런데 아주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담배를 피는 것이라 담배에 찍힌 레이블이 전혀 안보이는 상황에서 담배를 가지고 온 친구가 썰을 풀었습니다. “이거 중국 공산당 간부들만 피우는 건데 배타는 삼촌이 겨우 겨우 구해가지고 온 거다. 딱 4대 밖에 없으니까 돌아가면서 빨아야 한다.” 모두 침을 꿀떡 삼키며 그 담배를 돌아가면서 피웠습니다. 그 답이 아주 걸작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블라인드한 밤에 블라인드의 담배를 블라인드 페이스의 고등학생 5명이 열심히 블라인드 테스트에 걸려들었죠.
 

“야.... 역시 공산당 간부들이 피우는 것이 최고급은 최고급이네. 찐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어” “중국사람들은 기름진 것을 먹기 때문에 좀 독한 것을 피우는 것 같아. 그래서 국산보다면 뭔가 다르게 입안에 기름기를 싹 딱아주는 것 같은데...” “간부놈들 자기들은 이렇게 고급 피우면서... 그러니 중공이 못살지“ ”음... 중국향 냄새가 나는데..그것도 아주 고급향...” “고량주 향 같기도 하고 꼬냑 향 같기도 하고”.. “야 연기바라.. 올라가는 폼이 영 다르네. 색깔도 곱고, 그냥 쭉 올라가네...” “필터에도 다른 처리를 한 것 같네. 겉은 부드러운데 속은 좀 딱딱하네...”, “끝맛이 더 죽인다....뭔가 입가에 남아있네. 낙엽 향 같기고 학고..” 대강 기억나는 찬사는 이런 것이었죠. (이 이야기는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제가 잘 기억합니다.)
 

그 친구의 뻥이 들킨 것은 그 다음 다음 날 그 자리에 간 다른 친구가 주워온 “청자”꽁초 때문이었습니다. 즐거운 해프닝에 모두 머쓱했지만 참 재미있었든 블라인드 테스트로 기억을 합니다.   
 
고클 http://www.goclassic.co.kr/ 오디오 실용론 논쟁을 재미있게 보는 입장으로 저는 오디오의 음향학적인 차이는 우리가 인지하기 힘들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가진 스피커 중에서 제일 아끼는 것은 이전 에어로 스피커를 제가 개조한 것입니다. 삼미 유닛으로 2개 갈고(10만원*2), 트위터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에어로 트위터는 제가 보기에 매우 우수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우퍼를 갈고 나니 통울림도 조금 줄고, 이전보다 다른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 외 모니터 오디오 OOO 만원짜리, 기타 잘 나간다는 스피커 몇 개 구해보았지만 별 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더라고요. 간혹 바이올린 곡을 들을 때는 풀레인지 스피커도 씁니다. 엘비스의 목소리도 풀레인지에서 잘 나옵니다. 더 좋다기 보다, 다른 맛을 느끼기 위해서 간혹 바꿔가면서 들어 봅니다.
  

오디오 실용주의자와 오디오 근본주의자의 논쟁은 음악과 소리의 차이로 보입니다. 소리에 대한 탐닉을 뭐라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같은 스테이크라도 좋은 WMF 최고의 접시에 최고의 나이프로 썰어 먹으면 맛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루미늄 호일을 받치고 연필깍는 칼로 썰어먹는다면(제가 직접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식구들 동원시켜서...) 맛은 다르게 느껴집니다. (중요한 것은 느/껴/진/다는 것이죠. 인식론의 문제입니다.). 특히 수술용 메스로 스테이크를 잘라서 먹어보라니, 집사람은 못먹더군요. 피가 흥건히 베어있는 고기를 메스로 잘라서 입에 넣은 일의 context은 식사의 절차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에 맛도 다르게 느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음악을 이해하고 즐기는데 고급의 오디오가 더 유리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단 소리, 그 자체의 묘미를 즐기는데 그것은 가능할지 모르죠. 순정조와 평균율의 차이를 이해하지도 못하는 분이 소리가 “쫀득하다” “저음의 임팩트가 있다”, “밑이 풀어진다” “색채감이 없다” “차가운 소리가 난다”, 이런 식의 표현을 하는 황금귀를 가진 분이라면 평균율로 맞춘 피아노 곡의 그 어수선함을 어떻게 참는지 좀 궁금합니다. 어떤 분이 스피커 케이블 8종의 특성을 비교해서 올린 글이 있든데 전부 각각의 표현하는 형용사들이 무척 제미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색채감”이었는데 색채감을 떨어뜨리는 오디오 케이블은 어떤 것이며, 또 살려주는 케이블은 어떤 것인지, 소리를 정숙하게 만드는 케이블과 소리를 천박하게 내지르는 케이블의 상태는 어떤 것인지, 막귀인 저로는 너무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급의 기기가 내는 소리를 주관적으로 즐기는 것은 고급의 식기에 스테이크를 담아먹고 즐기는 것과 다를 바 없이 그대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이란 요리와 같이 context-sensitive하므로 기기의 모양, 가격, 그것을 구한 사연, 이 모든 것이 소리를 느끼는 것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을 합니다.
 

친구 중에 한의사 하는 인간이 하는 말이 꼭 같은 약이라도 50만원을 받는 것과 5만원을 받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50만원을 받으면 기를 쓰고 주의사항을 지켜가면서 먹는데요. 그냥 친구라고 공짜로 지어주면 룸싸롱에서 양주에 타서 마시는 놈도 있고, 그냥 썩여서 화분에 거름으로 주기도 하고 별의 별놈이 다 있어서, 그래서 돈은 받는다고 합니다. 다 친구 잘되라고, 돈을 받는다니 고마울 수 밖에 없죠.
   
제가 들어본 최고의 스피커는 몇 년전 프라이부르그(Freiburg)에 갔을 때 성당옆 골목 2층 집에서 나온 소리였습니다. 처음에는 그 안에서 어떤 메조(mezzo)가 직접 부르는 줄 알았습니다. 그 아래에서 한참이나 서서 듣고있으면서 주인이 창가에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스피커도 스피커였지만 그 집의 울림 구조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장이 높고 나무로 잘 만들 홀이 아니였을까 합니다. 집은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이전에 만든 historical building이라 더 울림이 좋았을지도 모르죠.  역시 소리는 공간이 문제죠.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중요한 것  연주홀이 특성입죠. 스피커도 마찬가지...
  

간혹보면 “OOO의 쇼팽 마주르카는 XXX와 달리 좀 맹숭맹숭하다. 내가 볼 때 OOO의 시벨리우스 바.협은 완전 깡통이야..”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ㅎㅎㅎ 한 두 번이면 재미로 들어주지만 이런 평가를 자기 자랑 마냥 늘상 흘리고 다니는 사람은 참 꼴사납게 보입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실제 피아노로 쇼팽 마주르카의 앞 8소절만을 그대로 쳐보는 연습을 해보라고 권합니다. 4시간 정도만 하면 8소절은 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녹음해서 한번 들어보라고 합니다. 실제 자신이 시도라고 해보면 이전에 깡통이라고 욕한 소리가 얼마나 귀하고 감동스러운 연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 말은 연주를 잘 해야만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고요, 연주를 해보면 우리가 그 전업연주가들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 과정이며 그것에 우리가 겸손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겁니다. 지휘자가 맘에 안드시는 분이 있으면 교향곡 하나 틀어두고 듣다가 불륨을 끄고, 그 상태 그대로 마음속으로 한 2분간만 지휘를 하다 다시 볼륨을 올려서 그 끝을 맟춰 보시기 바랍니다. 이전에 그 음반을 100번을 들어도 이것 맞추는 것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이것 재미있습니다.

요약

 (1) 음악을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150만원 정도의 오디오와 50만원 정도의 스피커면 충분하다.
 
(2) 소리를 즐기고자 한다면 고급의, 특정한 오디오 기기가 더 많은 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3) 음악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한다면 악기를 배워보는 것(성악포함)이 가장 좋다. 음악이론(기초 화성법, 음악사)을 제대로 공부하면 더 좋다.
 

(4) 오디오 기기의 가격차만큼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성능의 차이는 매우 미미하다. 하지만 주관적인 성능의 차이는 각자의 믿음에 따라 매우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물건을 담아 다니고, 옮기기 위한 목적으로 본다면 프라다나, 루이비똥 가방은 거의 사기에 가까운 가격이다.
  

(5) 오디오 업체들의 상술과 오디오 잡지, 가끔 보이는 악덕 오디오 전문가들의 주장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이들의 주장은 우리 엄마 된장찌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 세상에는 모든 엄마의 수만큼의 맛있는 된장찌개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엄마 찌개가 너희 엄마 찌개 보다 맛있다, 훨씬 더 맛있다- 라고 주장하려면 블라인드 테스팅을 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프로토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