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변이와 선택압들의

 

유전자에 초점을 맞추어서 자연 선택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어떤 유전자좌(locus)에 돌연변이가 생긴다고 하자. 그러면 그 돌연변이 유전자에 온갖 선택압들(selection pressures)이 작용한다. 어떤 선택압들은 그 유전자가 퍼지도록 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고 어떤 선택압들은 그 유전자가 소멸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각각의 선택압을 1차원 상에 있는 벡터(vector)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유전자가 퍼지도록 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선택압은 양의 값인 벡터이며 그 반대 방향의 선택압은 음의 값인 벡터다. 온갖 선택압들을 나타내는 벡터들을 몽땅 합하면 해당 유전자에 대한 선택압의 합이 나온다. 만약 그 합이 양의 값이라면 그 유전자는 개체군 내에서 퍼질 것이며 음의 값이라면 소멸될 것이다.

 

표현형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그 방향으로 진화하도록 하는 돌연변이가 생겨야 한다. 둘째, 그 돌연변이와 관련된 선택압의 합이 양의 값이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너무나 자명한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맹점

 

인간처럼 맹점이 있는 것이 적응적일까, 아니면 오징어처럼 맹점이 없는 것이 적응적일까? 답은 뻔하다. 맹점은 두 가지로 번식에 해를 끼치는 반면 이득은 없어 보인다. 첫째, 맹점이 있는 곳을 볼 수 없다. 둘째, 눈과 관련된 생리학과 심리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맹점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살았는데 그 이유는 맹점이 없는 것처럼 느끼도록 만드는 어떤 기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기제에 비용이 들 것이 거의 뻔하다.

 

그런데도 수억 년 동안 척추 동물이 맹점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맹점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진화하기 위해 거쳐야 할 중간 단계들을 자연 선택을 통해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눈이 오징어의 눈처럼 바뀌려면 기본 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진화하려면 중간 지점들에서 눈이, 맹점이 있는 현재 상태와 비교할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눈처럼 맹점이 있는 온전한(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눈과 오징어의 눈처럼 맹점이 없는 온전한 눈을 비교하는 식으로 선택압을 따질 때에는 오징어의 눈이 더 나아 보인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의 눈에서 오징어의 눈으로 진화하는 중간 단계들에서도 선택압을 따져야 한다. 편의상 인간의 눈을 E0이라고 하고 오징어의 눈을 E10이라고 하자. 그리고 E0에서 E10까지 가기 위해서는 E1, E2, E3, E4, E5, E6, E7, E8, E9를 거쳐야 한다고 하자. 지극히 단순화된 이 모델을 만든 목적이 무엇인지는 금방 드러날 것이다. E0인 상태보다 E10인 상태가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E1E0보다 나아야 하며, E2E1보다 나아야 하며, ……, E10E9보다 나아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이 만족되어야 E0에서 E10으로 진화할 수 있다.

 

 

 

 

 

침팬지 암컷의 자유분방한 성교 행태

 

Robert Trivers의 부모 투자 이론(theory of parental investment)에 따르면 더 많이 투자하는 성이 성교 상대를 고를 때 더 까다롭게 굴어야 할 이유가 있다. 침팬지의 경우에는 그 차이가 극단적이다. 암컷은 장기간 임신을 하며 그보다 더 긴 기간 동안 수유를 한다. 반면 수컷은 정자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는 자식을 위해 거의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침팬지 암컷은 수컷이 성교를 요구하면 거의 언제나 OK. 인간의 경우에는 부모 투자의 남녀 차이가 침팬지보다 훨씬 적다. 하지만 인간 여자는 침팬지 암컷보다 훨씬 더 까다롭게 처신한다.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사람들 중에는 이런 사례를 들어서 진화 심리학이 엉터리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선택압과 선택의 결과를 혼동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부모 투자 이론은 선택압에 대한 이론이지 선택의 결과에 대한 이론이 아니다.

 

포유류의 경우 암컷은 며칠 동안 아무리 많은 수컷하고 성교를 해도 결국 임신할 수 있는 자식의 숫자가 정해져 있다. 반면 수컷의 경우에는 많은 수의 암컷과 성교를 하면 많은 수의 자식을 낳을 수 있다. 인간 여자가 열흘 동안 100명의 남자하고 성교한다고 해도 (쌍둥이를 무시한다면) 그 동안 최대 한 명의 자식을 임신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인간 남자가 열흘 동안 100명의 여자하고 성교를 한다면 최대 100명의 자식을 볼 수 있다. 이 논리는 인간에게도 침팬지에게도 다른 온갖 종의 포유류에게도 적용된다. 논리적으로 볼 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선택압이다.

 

온갖 종의 포유류에서 암컷보다는 수컷이 성교를 하겠다고 더 덤벼든다는 것이 관찰되었다. 그리고 수컷이 자식에게 더 많이 투자하는 여러 종의 어류에서는 이런 현상이 역전된다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런 관찰 결과들은 부모 투자를 더 많이 하는 성이 성교 상대를 고를 때 더 까다롭게 굴어야 할 중대한 이유가 있다는 선택압이 매우 중대한 것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세상에는 부모 투자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선택압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 말고도 온갖 선택압들이 더 있다. 그리고 어떤 형질과 관련된 온갖 선택압들의 합을 따져야 어떤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돌연변이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맹점의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진화 과정의 중간 단계들에서도 선택압의 합이 계속 그 방향을 가리켜야 한다(상황은 훨씬 더 복잡하지만 넘어가자).

 

침팬지 암컷의 성교 행태와 관련해서는 유아살해라는 선택압이 있다. 수컷 침팬지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성교를 하지 않은 암컷의 자식을 죽이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유리하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 암컷이 곧바로 임신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암컷의 입장에서는 되도록 많은 수컷들과 성교를 해야 자신의 자식이 수컷에게 죽임을 당할 위험이 적다. 침팬지 암컷의 자유분방한 성교 행태가 주로 이런 선택압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으며 나는 이 가설이 가장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유아살해와 관련된 선택압 말고도 더 중요하거나, 그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하거나, 그보다는 훨씬 덜 중요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을 정도로 중요한 선택압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기에서는 그런 구체적인 것까지 파고들 필요가 없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부모 투자 이론은 선택의 결과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선택압에 대한 이론이라는 것, 부모 투자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선택압 말고도 온갖 선택압들이 더 있을 수 있다는 것, 선택의 결과는 그런 온갖 선택압들의 합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사 침팬지 암컷이 침팬지 수컷에 비해 더 성교를 하고자 안달인 난다 하더라도(실제로는 침팬지 수컷이 더 많이 원한다) 부모 투자 이론이 틀렸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이것은 헬륨으로 채운 풍선이 위쪽으로 올라간다고 해서 중력 이론이 틀렸다는 증거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헬륨 풍선의 사례는 부력(결국 전자기력이다)이 중력보다 센 경우일 뿐이다. 풍선의 방향이 각 힘을 나타내는 벡터들의 합에 의해 결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 선택의 방향은 각 선택압을 나타내는 벡터들의 합에 의해 결정된다.

 

 

 

 

 

적응의 비용

 

어떤 기제에는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그 기제가 발달해야 하며, 그 기제가 유지되어야 하며, 그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자동차를 만드는 데도 비용이 들고, 보수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고, 운행하는 데에도 비용이 든다.

 

친족을 향한 이타성에 대해서는 친족 선택 이론 또는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 이론이 있다. 이것은 선택압에 대한 이론이다. 친족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하려면 누가 친족인지 알아야 한다. 또한 이타적 행동을 산출하는 데에도 모종의 정보 처리가 필요하다. 만약 친족을 도와서 얻는 적응적 이득에 비해 그런 정보 처리를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이 더 크다면 설사 친족을 돕도록 하는 방향으로 돌연변이가 생긴다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진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인 중대한 선택압인가?

 

어떤 선택압이 있다고 해서 항상 그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다른 선택압들도 많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의 형질이 온갖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선택압들이 무한히 많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성교의 사례를 보자. 성교를 하면 임신을 할 수 있다. 성교를 하다가 성병에 걸릴 수 있다. 성교를 하는 도중에는 잡아 먹힐 가능성이 더 크다. 성교를 하다가 누군가의 질투를 유발할 수 있다. 성교에는 에너지가 든다. 이 외에도 상상력만 발휘하면 성교의 파급 효과에 대해 무한히 긴 목록을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성교를 하면 몸무게에 미세한 변화가 생긴다. 그리고 몸무게의 미세한 변화는 온갖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다.

 

성교로 일어날 수 있는 임신만 하더라도 온갖 영향을 끼친다. 임신을 하면 임신을 시킨 수컷에게는 이득이지만 다른 수컷에게는 손해다. 특히 그 손해 보는 수컷이 암컷의 남편이라면 이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다. 이미 태어난 자식에게는 동생이라는 경쟁자가 생긴다. 수컷의 입장에서 볼 때 암컷과 성교를 하면 암컷이 자신의 자식을 임신할 가능성이 생긴다. 따라서 암컷과 나중에 태어나는 자식에게 잘 해야 할 이유가 생긴다.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거나 상상하기도 힘든 선택압들 중에 무엇이 중대하고 무엇이 사소한지를 가려야 한다. 성교의 경우 임신은 중대한 결과일 것이며 몸무게의 변화는 너무나 사소해서 무시해도 될 것이다. 성병의 경우는 얼마나 중대한가? 이것은 애매한 문제다.

 

중대한 선택압들을 추려내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어떤 선택압이 중대한데도 불구하고 아예 상상도 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어떤 선택압이 중대한데도 불구하고 사소할 것이라고 오판할 수도 있다. 중대한 선택압들의 목록을 제대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 상대적 중요성에 대한 추측에서 큰 오차가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속단은 금물이다.

 

 

 

 

 

2010-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