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을 할 때, 맹수의 위협이 있을 때, 같은 종의 동물과 싸울 때, 사랑하는 대상을 대할 때 사망 여부를 가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망한 사냥감은 더 이상 도망갈 수도 반격할 수도 없다. 사망한 맹수는 더 이상 공격할 수 없다. 사망한 적은 더 이상 공격할 수 없다. 사망한 사람을 계속해서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것은 낭비다. 사망 여부를 알아내는 것이 번식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사망 인지 기제(mechanism)가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망 인지 기제는 사망 여부를 알아내서 이후의 행동에 적응적으로 영향을 끼치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나는 삶-죽음 개념쌍이 선천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의학으로 무장한 의사들은 동물이 사망했는지 여부를 즉시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뇌사처럼 완전히 죽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전혀 가망이 없는 경우도 정밀 조사를 하면 가려낼 수 있다. 반면 동물과 인간의 조상들은 사망 여부를 즉시 정확하게 알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사망 인지 기제에는 어느 정도 오류가 개입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류 관리 이론(error management theory)에 따르면 오류가 불가피할 때에는 비용이 덜 드는 방향으로 오류를 범하는 것이 더 적응적이다. 이것을 사망 인지 기제에 적용해 보자.

 

위험한 동물과 격투를 벌이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그 위험한 동물은 사냥감일 수도 있고, 맹수일 수도 있고, 다른 부족의 구성원일 수도 있다. 그 동물이 사망한 것처럼 보인다고 하자. 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이 때 그 동물이 사망했다고 생각하고 안심하는 것이 적응적일까? 아니면 아직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경계하는 것이 적응적일까? 후자가 더 적응적이다. 왜냐하면 경계의 비용은 보통 그리 크지 않은 반면, 안심하다가 당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뱀에 독이 있는지 여부를 잘 모를 때 독이 있다고 생각하고 조심하는 것이 적응적인 것과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자식이 사망한 것처럼 보인다고 하자. 이 때 자식이 사망했다고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대하는 것이 적응적일까? 아니면 아직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며칠 동안 더 돌보는 것이 적응적일까? 후자가 더 적응적이다. 왜냐하면 며칠 동안 돌보는 데 드는 비용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아직 살아 있는데 죽었다고 오판하여 국을 끓여 먹었을 때의 비용은 막대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체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현상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오류 관리 이론으로 설명되는 것 같다. 그리고 죽은 적에 대한 두려움도 비슷하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죽은 지 몇 년이 지났을 때에도 시체 훼손을 하지 않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동성동본 금혼 풍습과 어떤 면에서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근친상간 회피 기제가 있기 때문에 동성동본 금혼 풍습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동성동본 금혼 풍습은 적응론적으로 보았을 때 근친상간 회피 기제의 작동 방식을 터무니 없이 과장한다. 마찬가지로 사망 인지 기제의 작동 방식 때문에 사망한 지 몇 년이 지난 시체의 훼손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망 인지 기제의 작동 방식이 터무니 없이 과장된 것이지만 만약 사망 인지 기제가 사망 여부를 매우 신중하게 판단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면 그런 현상도 없을 것이다.

 

 

 

근친상간 회피 기제와 사망 인지 기제에는 또 다른 공통점도 있는 것 같다. 두 경우 모두 의식적 앎과 무의식적 앎 사이에 해리가 일어나는 것 같다.

 

이스라엘의 키부츠에서는 한 동네 아이들이 한 가족처럼 자랐다. 그렇게 함께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된 다음에는 서로 성교나 결혼을 하는 일이 사실상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의식적으로는 서로가 남남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성교나 결혼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무의식 한 편에서는 서로를 남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친상간 회피 기제가 작동한다.

 

갓난 아기일 때 남매가 서로 다른 집에 입양되어 자란 후에 성인이 되어서 만났을 때에는 반대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의식적인 수준에서는 서로가 남매이기 때문에 성교도 결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의식 한 편에서는 서로를 남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친상간 회피 기제가 작동하지 않으며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근친상간 회피 기제가 어렸을 때 한 집에서 살았는가?라는 것 등을 기준으로 남매인지 여부를 무의식적으로 계산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죽었다라는 판단을 의식적인 수준과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서로 다르게 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는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아직 죽지 않았다 또는 아직 확실하게 알 수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2010-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