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구라성인구라성인
전 20대의 특징을 파편화와 전문화로 나누고 싶습니다. 그 외의 진보적이니 보수적이니 하는 말은 그에 따른 현상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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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3 00:17:45
id: montmont

파편화와 전문화는 현대적인 사회의 일반적 현상이지, 20대에 국한된, 그리고 그들에게  특유한 현상은 아닐테구요....


문제는 그들에게도  정치적 니즈는 있다는거죠. 다만 그들이 표현 하는것은 그들의 개인적 파편화된 니즈가 충족되리라는 기대를 전혀 갖지 않고 있기에 정치적 대의 구조에 무관심하고,.... 이 구조가 이어질 경우.... 대의는 완전히 왜곡되어  뒤엎어 버림으로서만 해결 가능하게 되는 상황으로 에너지가 축적될 수도 있다는 거랍니다.

혁명은 단 한마디의 불만족스런 발언의 선동에서도 올수 있고, 북한처럼 억업중에 억압을 받아도 안올 수도 있지요. 이게 인간의 문제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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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3 00:27:07
id: 구라성인구라성인
어느 세대에나 존재하지만 그것이 20대처럼 극대화 된 세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40대와 비교해도 현 20대의 파편화는 심한 수준이고 30대와 비교해도 여전히 상당한 격차가 존재합니다. 하나 더 포함하자면 경향성 혹은 주류를 좇는 성향(유행성?)이 강하다는 것 정도를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혁명이 이뤄질 정도로 불만족이 쌓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분들이 20대인지 30대인지 40대인지는 모르겠다. mont님과 구라성인님은 20대를 한 세대로 묶이기 어렵게 '파편화'되었다고 하면서 동시에 20대가 20대로서의 정치적인 니즈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20대만의 독특한 정치적인 니즈가 있지만, 20대는 파편화되어있어서 그 니즈가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 때문에 충족되지 않기에 혁명의 동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까지 전망한다.

세대론은 한국에서는 <88만원 세대>를 통해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세대론은 한국만의 보편적인 관심사가 아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세대담론이 있었고, 최근에는 저출산 고령화 현상의 결과로 나타난 인구학적 변동을 통해 세대들의 긴장을 분석한 “세대간 투쟁” 담론과. 고용관행의 획기적인 변화(노동사회의 위기)의 결과 나타난 “불안정화”가 세대와 결합되었다(P세대)는 담론이 주목을 받고있다.

세대간 투쟁론은 세대간 투쟁론의 발화주체와 대상이 다르고, 경험적인 연구결과와 그 내용이 잘 맞지 않는다는 점, '탐욕적인 고령자' 때문에 젊은층이 피해를 본다는 관점에서 유럽의 복지국가 시스템의 축소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적인 논거로 활용된다는 점 등의 문제점때문에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세대론에 이 논의를 직접 끌어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P세대담론에서의 P세대는 프랑스의 불안정한 세대(génération précaire)에서 유래한 불안정성(불안정한 고용)의 의미와(독일어로는 prekär) 대졸자들의 인턴제도(Praktikum)의 뜻을 모두 지닌다(P는 위 단어의 앞글자). 인턴세대라고도 불리며, 우리나라에서는 88만원 세대를 인턴세대로도 부르기도 한다  http://terms.naver.com/item.nhn?dirId=108&docId=21190

<88만원 세대>는 20대에게 정치적인 각성과 행동을 통한 체제변화를 촉구한다. 그러나 P세대담론은 그렇지 않다. P세대담론은 현재의 문제(앞 세대보다 못한 사회보장혜택과 생활수준, 고용문제)는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고,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악용하는 '기업'의 문제가 크며, 이러한 문제는 어느 한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대에 걸친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대간 투쟁'이 아니라 '세대간 연대'를 추구한다. 그리고 체제변화가 아니라 체제 내에서의 제도적인 개선을 요구한다.

따라서 <88만원 세대>의 88만원 세대, 20대는 P세대담론의 P세대와 세대투쟁론에서의 젊은 세대를 짬뽕시켜 진보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세대론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론, mont님과 구라성인님이 바라보는 20대의 모습(20대의 정치적 니즈가 존재하나 파편화로 인해 집단화되지 못함) 등 많은 20대론은 20대를 한 세대로 파악한다. 20대는 ‘20대’로서 다른 세대와 구별되는 특성을 띠고 있으며, 그 특성을 대개 ‘파편화’로 파악한다. 이를 ‘다원화’로 파악하여, 다원화된 사회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단선적인 시각도 있지만, 진보적인 의견들은 20대만의 고유한 특성, 정치적인 니즈가 ‘파편화’로 인하여 집단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20대는 정치적으로 무기력하고, 따라서 20대의 정치적 니즈는 대변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mont님과 구라성인님은 이를 혁명적 에너지의 누적의 계기라고도 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20대론은 20대를 한 세대로 묶어서 파악한다. 20대는 다른 세대, 보편적인 사회와 구별되는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동시적인 것의 비동시성처럼, 20대는 30대, 40대, 50대등과 구별되는 다른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6.25세대, 4.19세대, 유신세대, 386세대, X세대와 같은 고유한 특성을 20대‘세대’에게 부여한다. 앞의 세대들이 그러했듯이 이러한 세대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각 세대의 정치적인 태도, 모습이다. X세대담론도 X세대가 그 이전 세대들과 구별되는 자유분방함, 개성, 당연한 물질적 풍요, 당연한 민주주의, 대중문화의 세례 등을 통한 X세대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의 1세대로 파악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20대를 정치적으로 규정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20대가 한 세대로 묶일 수 있을까? 20대가 이 사회에서 현재 20대만의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나? 그리고 정치적인 의미까지 부여할 수 있을까?

20대를 어떤 특정한 ‘20대세대’로 구분되기 위해서는 20대가 ‘세대’로서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세대는 개인들에게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지지대 역할을 한다. 세대는 매우 우연적이 되어버린 사회적 질서에서 개인들의 생애사적인 지향틀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지향틀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문다면 그것은 세대로 발전하지 못한다. 지향틀은 곧 개인들을 집합체로 묶어줄 수 있어야 한다. 사건들이나 삶의 내용들을 동일한 틀로 수용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세대 소속원들이 공통의 해석틀을 통해 경험들을 유사하게 수용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최종적인 세대 형성의 조건은 구체적인 행동이다. 지향틀, 집합적 특성, 공통의 해석틀에 기초한 해석의 공동체들이 자신의 세대적 특성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특별히 ‘정치적인 세대’는 위와 같은 세대의 조건에 ‘사회체제를 능동적이고 전략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역동성을 가진다고 한다.(세대경쟁과 정치적 세대-독일세대논쟁의 88만원세대론 에 대한 시사점을 중심으로, 전상진, 한독사회과학논총 제20권 제1호(2010. 3), 여기서 그대로 인용)

그렇다면, 지금의 20대가 저러한 ‘세대’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탈산업사회와 세계화로 인한 고용없는 성장에서의 고용문제, 경제문제를 20대가 부모의 품 안에서 사회로 나옴으로써 힘겨워하는 것 이외에, 어떤 세대로서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리고 비정규직, 정리해고와 같은 고용불안, 무한경쟁에 따른 스트레스 등이 20대만의 문제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20대가 20대로서의 정치적인 니즈를 가지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를 ‘파편화’되어 있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무슨말이냐면 원래 20대들이 20대로서의 정치적인 니즈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분적인 사안마다 20대가 공통의 목소리,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을때도 있겠으나, 그것을 가지고 한 세대로 20대를 엮기는 부족하다. 현재 나이가 20~29세인 사람들의 개별적인 특성들(유행에 민감, 대중문화에 밀접함, 인터넷에 친화적) 역시 그 나이 또래들의 일정한 경향에 불과하지, 어떤 세대로서의 세대적인 특성이라 하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원래 20대가 20대로서 집단화되어 그들만의 구별되는 정치적인 니즈가 존재한다는 시각에도 동의할 수 없다. ‘파편화’되었다는 것에는 어느정도 동의할 수 있으나, 그 파편화가, 원래는 그렇지 않은데 ‘파편화’되었기 때문에, 다시 하나로 묶어내야한다는 관점에서의 파편화라면 틀렸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재의 20대를 하나의 세대로 묶어낸 관점에 따라 20대의 현재상황이 훗날의 혁명적 에너지가 누적되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그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