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전도시키려는 경향의 근저에는 부정성(negativity) 의 요소가 놓여 있다. 경험이란 무엇보다도 <아님>에 대한 경험이다.즉 경험 대상은 우리가 가정했던 것이 (내가 생각했던 바, 그것이) 아니라는 차원에서 경험된다. 우리의 경험 대상은 서로 다른 빛에서 조명되고 변화된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그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변화된다. 새로운 대상은 낡은 대상을 지양한 진리를 담게 되는 반면에 낡은 대상은 새로운 대상의 시간에만 기여할 뿐이다.

 

 (중략) 가다머는 말한다.

 

...경험은 예견과 기대에 바탕을 둔 다양화된 환멸의 문제이다. 경험은 오직 이런 식으로만 획득된다. 경험이 고통스럽고 유쾌하지 못하다고 해서 경험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험의 고통과 불유쾌함을 통해 우리는 경험의 내적 본성을 알게 된다. ('진리와 방법')

 

...부정성과 환멸은 경험에 있어서 본질적이다.

 

                                                 리차드 팔머, 이한우 역.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284-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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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멸은 본질적으로 타자를 향하지 않는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철저하게 자기 회귀적이며, 자기 냉소적이다. 환멸은 경험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을 다시는 되돌리지 못할 형태로 파괴하기 때문에, 그 끔찍한 파괴의 흔적이 구제 받지 못하는 경험들로 되어 자신에게 들러붙어 있는 것일 뿐인 것이다. 인간은 구제받지 못하는 과거의 기억에 의지하면서 산다. 죄의식의 깔끔한 속죄로 이것이 깨끗히 청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진함이란!

 

 그러므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순전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경험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각성을 통해 다가오는 환멸의 형식인 한, 인간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 -그리고 오로지 그 안에서만- 머무르며, 자신의 경험 속에 자신의 과거의 삶과 미래의 삶이 뒤섞여 있다고 느낀다. 자기 환멸과 죄의식은 인간의 자기 부정적인 정신 작용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비슷하지만, 죄의식은 사회와 종교의 가치척도에 의해 타율적으로 부여되는 경험인데 반해, 자기 환멸은 인간의 자기파멸의 가능성을 스스로 자각한다는 점에 존립한다. 죄의식에 빠진 인간과는 달리 깊은 자기 환멸에 빠진 인간은 결코 도망갈 수 없다. 그러므로 깊은 자기 환멸에 빠진 인간은 그 환멸에 직면하거나, 유일한 도망처로서 자살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죄의식이야 말로 자기 환멸에 대한 최고의 청산 감각이 될 수 있다. 자기 환멸을 죄의식으로 대체하면서, 그 인간은 자기 환멸로부터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멸을 죄의식과 바꾸는 댓가는 그만큼 혹독한 것이다. 끝내 자신의 내면의 이카루스를 품어 내지 못하고 포기하는 인간은 그 순간부터 자신의 내면의 신의 빛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바깥에서 군림하는 신의 어둠으로 살아가는 것이리라. 자기 환멸에 대해서는 그러므로 딱 하나의 길이 존재할 뿐이다. 즉 환멸을 미래에 다가올 삶의 운명적인 징표로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