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가문이 특정 사조나 파당하고 엮인건 잘 알꺼야..

조선의 세력은 대략 훈구파 ->동서분당->북인->서인, 남인-> 노소 분당 -> 노론 -> 시파, 벽파 ->복고 -> 세도정치

뭐 대략 이렇게 가는데 말야..분당 시기에는 서로 주도권을 뺏다 뺐겼다 하곤하지..후기 주도권 시기에는 왕을 필두로 뒤섞여서 나오기도하고..

김해김씨나 광산김씨 전주이씨 처럼 사람이 많고 널리 퍼진 가문에서는 이쪽 사람도 있고 저쪽 사람도 있고 한 경우도 많아, 말하자면 광신김씨 한 문중에서 어느 파는 남인이 되고 어느 파는 서인이 되고 한 경우가 많다는 거지, 그래서 개들은 오늘 이야기 거리가 못 되겠고...

대략 어느 한쪽에 강하게 예속된 가문이 있지 주로 규모가 작은 경우 그래..

파평윤씨, 청주한씨, 안동권씨 등은 대표적인 훈구파 가문이지 대표인물로는 권씨쪽에는 권근, 권람 한씨쪽으로는 한확, 한백륜, 한명회 등 윤씨쪽에는 윤필상, 윤여필 등..이 시기에 왕의 부인이나 왕자의 부인 혹은 후궁들중 상당수가 윤씨 아니면 권씨 아니면 한씨지..

장경왕후, 단경왕후, 정희왕후, 장순왕후, 안순왕후, 소혜왕후, 공혜왕후 기타 등등.....셀수도 없이 많고 그 가계도 막 이리저리 통혼하는등 이른바 외척인 동시에 공신이고 또 한편으로는 왕가랑 이리저리 통혼한 가문들이지..한마디로 잘나갔다고 해야할까?

이후 동서분당기를 거쳐서 북인 정권이 스는데 북인은 잘 알다 싶이 경상 우도 지금의 창녕, 고령 일대가 근거지라고 하고...

서인특히 노론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송시열인데, 송시열은 은진송씨로 은진은 현재의 연기, 공주 일대 충청도 곳곳에 남도, 북도 등 곳곳에 송시열의 흔적이나 송시열을 배향한 사원이나 송시열이 머물던 곳, 강연하던곳, 별장 삼은 곳 등등 무수히 많아..송시열이 똘마니 송준길도 같은 은진 송씨고 둘다 나와바리는 충청도 일대.

둘의 성향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서인, 노론의 대한민국 꼴통계의 대부쯤 되는 인물이지...예들이 꼴통짓 벌인 것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북벌론이 되겠고, 정묘, 병자 호란도 마찬가지고...소위 서인을 기호학파라고 하는데 기호지방이라 함은 현재의 충남북 지방을 일컷는 것이니까 뭔가 쫙쫙 꼴통계의 근원이 잘 통하는거 같지 않아?

지금의 역사학자들은 다르게 평가하는 경우도 많지만 소위 예송논쟁이라고 벌어진 것도 보면 예들이 얼마나 꼴통인지 증명하는 것이지, 한마디로 왕도 우리 세도가의 밑바닥에 두겠다는 그런 심상 말야..

송시열의 필생의 라이벌이라면 역시 윤휴를 꼽을 수 있겠는데, 윤휴는 남원윤씨로 파당으로는 남인계이고 남원윤씨가 원래 파평윤씨에서 갈라져 나온 파이며 보다싶이 남원 즉 전라도 지방이 세거지야..윤휴의 백호문집도 전주에서 썼으니까 알만하지? 

근데 사실은 소위 송시열하고 윤휴하고 배틀을 벌여서 송시열이 졌다고 해..배틀이라는게 둘이 싸웠다는게 아니라, 소위 이론상의 토론을 벌여서 송시열이 깨졌다 이거야, 또 둘이 시 짓기 대결에서도 송시열이 졌다는 말이 있써, 즉 윤휴가 엄청나게 뛰어난 인물이라는 이야기지, 근데 윤휴나 그 가문은 성향상은 남인이 아니고 오히려 북인에 가깝다고 해. 정확히 말하면 소북쯤 되겠지..

사실 보면 윤휴는 이른바 조선의 고질병을 깰 수 있었던 어떤 면에서는 큰 인물이고 송시열을 떡실신 시킬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지, 

뭐 근데 역사는 윤휴가 송시열한테 깨지고 남인은 완전히 개박살나는 것으로 끝나지...윤씨는 유독 송시열에 반대파에 선 인물이 많은데 그 중에서 또 한명이 시로 유명한 윤선도 이고 그는 해남윤씨인데 역씨 이름으로 알수 있다 싶이 해남, 강진을 세거지로 하며 위에 윤휴와 마찬가지로 송시열한테 깨져서 그 이후로는 세가 미미...

그이후 노소 분당에서 소론에 선 이들로는 박세체, 박세당, 최석정, 윤증 등이 있는데, 박세채는 반남 박씨로 반남은 현재의 나주고,  나주 등지에 가면 반남박씨 집성촌이 많다고 해..

최석정은 전주최씨로 인조때 삼전도치욕으로 역사책에 이름을 올린 최명길의 손자이지, 최석정은 특이하게 조선시대의 몇 안되는 수학자 중에 한명이고 박세당도 마찬가지로 반남박씨로 역시 소론의 대표인물인데 박세당 역시 주자 꼴통주의에 반기를 든 인물이며 그의 제자중에는 역시 정약용을 들 수 있고, 후손중에 유명한 인물로는 박지원, 박규수(반남박씨) 등이 있어

정약용은 본가는 해남정씨 외가는 해남윤씨니까 대충 알만 하자나 어떤 집안인지...

박지원 역시 반남박씨고, 그 손자인 박규수도 반남박씨고...가만 보면 반남박씨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조선의 진보, 개혁파를 대변하는 가문이 아닐까? 박세채, 박세당, 박지원, 박규수 등...

노론계이면서도 완전 꼴통계는 아닌 인물로는 대동법으로 유명하고, 각종 농학 서적을 많이 지어내고, 경제, 역법등에도 정통한 잠곡 김육은 청풍김씨 대표인물인데, 청풍은 지금의 제천시 일원으로 그 지방에 가면 청풍김씨 종가도 있고, 김육과 기타 유명인물 묘역, 서원, 생가 등이 많아..

잠깐 청풍김씨 일가를 이야기 해 보자면, 김육, 김석주, 김윤식, 김규식, 김종수 등이 있는데, 김육은 서인 그중에서도 굳이 분류하자면 노론에 넣어야 하지만, 대동법 실시 등을 놓고 서인 노론 꼴통계(송시열, 송준길, 김집-광산김씨)등과 정쟁을 벌이고, 성리학 외 학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고 저서가 많지..

참고로 대동법은 남인계인 이원익이 처음 들고 나왔으니까, 말하자면 김육은 위치상으로는 노론에 넣어야 하지만 이론상으로는 오히려 남인, 소론에 가까운 말하자면 지금 형세식의 분류로 치자면 중도우파 ? 쯤 되지 싶다.

그런 성향은 후세에도 이어져서 김윤식은 대표적인 온건개화파의 인물이고, 김규식 역시도 미국에서 공부한 기독교인이지만 비슷한 케이스의 이승만과는 또 다른 길을 가서 김구등과 뜻을 같이하지..

김종수는 정조시절 정승을 한 인물인데 특이하게 문과가 아닌 무과 출신이야, 역시나 노론 중에서도 정조가 곁에 둘 정도로 사상적으로도 완전 꼴통은 아니라는 이야기지..

현대의 대표인물로는 김제동과 김태희가..

정조시절 이야기를 해보면 천주교가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일찍이 북인계열 학자들 허균, 이수광 등이 순수 학문적 관심으로 들여온 천주교 아니 그때 식으로 치자면 천주학은 이후 이가환, 이승훈, 정양용 3형제 등에게 널리 퍼졌지 이들의 공통점은 북인의 일부 아니면 남인계이지...

현재 천주교의 대표적인 성지들을 보면 순교자가 많이 나왔던 절두산, 해미읍성이나 묘소 말고, 천주교인들의 은거지가 배티(충북진천), 배론(원주), 미리내(경기 안성)을 보면 알겠지만 이 지역이 천주교 그러니까 당시로는 상당히 파격적인 반골기질의 학문의 본거지가 되는 거야..

이 사람들이 조선의 꼴통주의에 대한 반기는 여러 방식으로 일어나지, 정조대의 규장각에 진출한 남인계 실학자들의 활동도 있었고, 조용히 시골에 박혀서 저작에 몰두한 정제두, 최한기도 있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결국에는 현실에 적용되지는 못 했서, 그래서 결국에는 황사영 백서사건처럼 외세의 힘을 빌려야 조선을 개화시킬 수 있다라는 주장까지 나아가지..

황사영 백서사건은 고등학교만 나와도 알겠으니 넘어가고 황사영은 정양종의 제자이기도 해, 정양종은 잘 알다 싶이 3형제중 천주교에 제일 깊에 빠져 있던 인물이고, 사실 정양용은 천주교를 믿었다고 보기는 어려울꺼야 그냥 학문적 관심과 더불어서 천주교 등에서 나오는 '신앞에 모두가 평등하다' 라는 성리학과는 배치되는 사상에 관심이 있었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천주교에 대한 입장은 탄압과 허용이라는 두 갈래로 가는데 탄압파는 역시 정순왕후 (경주김씨)를 위시한 경주김씨가의 인물들이 대표적이지, 청송 심씨의 심환지도 그렇고..

이를 허용하자는 입장이 시파인데, 시파는 노소론중 소론, 남인계인데 특이하게는 김조순, 순조의 장인이자 (신)안동김씨 세도가의 거두인 그도 들어가있지..

김조순은 특이한 인물인데 정양욕 박제가 등과 함께 정조의 총애를 받은 초계문신 출신이고, 부인이 꼴통계인 청송심씨 사람인데다가, 본관이 안동김씨로 보수적인 가풍이지만 그렇타고 꼴통은 아니라고 봐야할꺼 같아. 그와 그 자식 등도 천주교나 서학, 실학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열린 자세를 취하였으니까 

사람들은 안동김씨가 노론벽파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벽파에 선 인물도 있지만 굳이 따지자면 노론 시파에 더 가까워, 일단 그 거두 김조순부터 노론 시파거든...또 사람들은 안동김씨가 조선 멸망의 모든 오욕을 다 쓰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때는 그것도 아닌거 같아, 조선이라는 나라가 유지된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왕권정치가 아니라 귀족정이야, 내가 붕당에 대해서 왜 이야기 하나면 그러니까 말하자면 분당이라는게 하나의 나라가 한쪽으로 독단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상호 경쟁하는 기능이 있었써

거기에 벼슬은 안했지만 명망은 높은 선비들은 각 지방 세거지에서 나름 경제적으로는 몰라도 정신적으로 유지인데, 임금도 이런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을수가 없고 거기서 나오는 상소들에 대해서 귀를 귀울이지 않을수가 없지..

문제는 송시열이 발호하는 시기를 전후해서 대략 헌종~숙족시기인데 이 이후로는 사실상 붕당이 와해되자나, 송시열의 반대편에 섰던 남인이나 소론은 그렇게까지 강경한 인물이 몇 없는데, 서인, 그리고 노론들은 너무 강경해..

 붕당이 와해되니까 남은건 임금 비위맞추려는 간신들하고 외척들 밖에 없는 것이지..영, 정조의 치세를 우리는 탕평책 이라고 치켜 세우지만, 그건 순전히 가져다 붙인거고, 가만히 영정조 시기에 권력 돌아가는걸 보면 왕이 신하들을 자기 친위대 위주로 내걸게 되있지, 이게 왕이 똘똘하고 치우침이 없을때는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왕이 띨띨한 애들이 되니까 나라가 개판이 되는거야..

참고로 여흥민씨, 그러니까 조선조말 명성왕후를 등에업고 등극된 이 집안은 여흥은 현재 여주를 뜻하고 명성왕후도 이쪽 출생이며, 민씨도 비슷하게 여주, 이천, 음성 일원에 많이 살았써, 그래서 임오군란으로 민비가 도방간 지역도 자기 외가 친척이 있던 음성이고..

여흥민씨도 그렇고 안동김씨 (안동김씨라 함은 구안동김씨도 있긴 하지만 세가 미미하고, 별달리 유명인물이 없음 인조시대 세도가 김자점과 백범 김구 정도로 이글에서는 제외..)는 세도가로 조선조 말의 많은 오욕을 뒤집어 쓰고 있지만 사실 보면 그렇게 꼴통 가문은 아닌거 같아 다만, 오랜 당쟁으로 사실상 붕당이나 파당이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니까 결국은 외척이 집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뭐 그냥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보니..조선조는 끝이네..

참고로 노무현은 광주노씨이지..광주가 세거지일 텐데 왜 노무현은 김해에 살았을까...

김대중은 김해김씨고 아참 김해김씨 종가에서는 김종필 등은 쳐줘도 김대중은 쳐추지 않고 제사에도 참여 못 하게 했다는데 사실일까? 지금도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