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블로그에 끄적여둔 글..

 여성과 같은 관능미를 소유하고 있지 못한 남성은, 자신의 정신적인 능력을 관능적으로 보이고 싶어한다. 타인이 자신의 정신적인 자산에 대해 관조적인 찬탄을 취할 때 그가 느끼는 감정상태는, 최초의 쾌락에 몸을 맡기는 여인의 첫경험과 비슷하다. 시인의 호칭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은 자신의 삶의 우연한 파도 위에 어떻게 신의 숨결이 입혀지게 되었는지를 자기보다 남들이 먼저 알아내어 주기를 원하는 자이다. 자아의 생산품에 타자의 감수성이 숭배적으로 머무는 그 배타적 장소- 그는 그런 자기만의 장소를 갖기를 원한다.


예술적 엘리트주의는 따라서 시인의 속물 근성을 근저에서 만드는 은밀한 힘으로 자리잡고 있다. 시대는 각기 다른 숭배의 양식을 발전시켜 왔는데, 지식의 숭배와는 달리 감수성의 숭배는 인간이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끈질기게 발전시켜온 감정인 질투심을 이용한다. 감수성 숭배의 양식에 따르면, 재능의 선천성에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은 반대로 어떤 자들에게는 결핍의 선천성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으로 다가온다. 결핍의 선천성을 느끼는 자들이 질투심이라는 이 암울한 연못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질투심은 절대적인 결핍에 놓인 자가 아니라 언제나 상대적 결핍의 상태에 놓여있는 자들 속에서 무한히 팽창한다. 따라서 시인의 적대자는 잠재적인 시인들이며, 당신의 적대자는 지금 당신 주위에서 비슷한 목소리를 낼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