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이전 글에 달아주신 미투라고라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이 부분은 새롭게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나을 거 같아서 본글로 올립니다.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에는 용불용설과 다윈주의가 있습니다. 이 정도는 중학생도 다 아는 상식에 속하니까 자세한 설명은 필요치않고 논의를 위해서 간단하게 언급하겠습니다. 기린의 목은 어떻게 길어지는가를 설명할 때, 용불용설은 기린들이 목을 늘리기위해 애쓴 결과로 목이 길어졌다고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그에 반해 다윈주의는 목이 긴 기린은 살아 남아 후손을 남기고, 그렇지 못한 기린은 도태되어 결국 기린의 목이 길어졌다고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어느 것이 더 과학적이고 정확한 설명인지는 이미 승패가 결정이 난 상황입니다. 바로 다윈주의이지요. 

저는 현실사회주의 국가들(구 소련, 등소평이전의 중국, 동유럽, 쿠바, 북한 등등) 의 구성 원리인 ML주의는 인간 사회의 진보를 설명하는 데 있어 용불용설과 똑같은 논리구조를 갖고 있는 이론에 불과한 것이라고 봅니다. 인간 사회의 진보는 노동자계급의 목적의식적인 투쟁으로 쟁취되는 것이다라는 견해는 마치 기린의 목은 기린들이 목을 늘리기위해 애쓴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게 없는 것이죠. 하지만 기린의 목은 기린들의 노력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냉정한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사회의 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ML주의를 비과학적인 관념론으로 치부하는 것은 그런 맥락의 주장인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과학적 추론과 데이터에 의지해 부르주아 계급의 목적의식적인 투쟁으로 달성된 것입니까? 아니면 근대사회 환경의 변화가 수많은 생산방식들 중에서 자본주의라는 당대에 가장 효율적인 생산 양식을 선택하고 결국 진보를 이룬 것입니까?

인간 사회가 진보의 길을 선택하는 방식은 이렇게 다윈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생물체가 다양하게 출현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들 중에서 자신의 생존에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하여 진화를 이루는 것처럼, 인간 사회 역시 진보를 향한 무수히 다양한 시도들 중에서 가장 진보에 적합하고 유리한 어떤 방식을 선택하여 진보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인간 사회 진보의 구체적인 모습을 미리 예단하고 그 길로 가게끔 만드려는 목적의식적인 노력들, 특히 ML주의 같은 시도들은 비과학적이고 허망한 것에 불과합니다. 기린의 목을 강제로 잡아늘려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겠다는 육종학자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 육종학자가 실패할 것이 분명한 것처럼, ML주의에 기반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도 실패한 것 뿐입니다. 과학적인 태도란 바로 그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주장되는 것이 아니고, 현실에서 증명되어야 만 하는 것이죠. 

기린은 개체의 목을 늘리는 방향으로 생존의 길을 찾았고, 호모사피엔스는 지능과 협동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생존의 길을 찾은 생물입니다. 인간 사회는 그럼 어떤 방향으로 생존의 방향을 찾고 있을까요? 그것은 님이 말씀하신 생산수단의 사회화 집단화 조직화 고도화 대형화라는 원리를 적극 수용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제반 영역을 그런 원리에 적합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방향일거라는데 동의합니다. 또한 제가 주장하는 이전보다 더 자유로운,  더 평등한,  더 풍요로운,  더 인권을 중시하는 방향이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미래의 기린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호모사피엔스의 미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미리 아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입니다. 그것을 미리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미 과학자가 아닙니다.

인간 사회의 미래 모습도 마찬가지이죠. 그저 안개처럼 희미한 어떤 경로만을 예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과학자 또는 진보주의자란 그 안개속에서 발끝에 손전등 하나 비쳐주는 사람일 뿐입니다. 저 멀리 뿌옇게 등대의 작은 불빛이 보이니 그 곳으로 가자고 설득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등대로 가는 길이 아스팔트길인지, 황토길인지, 지름길인지, 아니면 빙 돌아가는 우회로인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그 길을 안다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과학자도 아니고 진보주의자도 아닌 오로지 사기꾼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죠. 

아마도 어쩌면, 기린의 유전자는 더 이상 목을 늘리는 것을 중단하고 혓바닥이나 다리 길이를 늘리기 시작할 수도 있고, 호모사피엔스 역시 더 이상 지능과 협동의 발전을 중단하고 새로운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 사회 역시 마찬가지죠. 때문에 저는 인간 사회의 구체적인 미래의 모습을 예단하고 주장하는 담론들에 회의적입니다. 그저 과거에 이루어져 왔던 진보의 방향을 알 수 있기에, 막연하게 미래에도 그 방향으로 갈 것이다라고만 말할 수 있을 뿐인거죠.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그 소유의 사적 성격 사이의 모순을 최소화해가는 것은 맞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 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진보(progressive)라는 개념은 용어 자체에 이미 '특정한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즉, 진보라는 것은 과학적인 추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반드시 어떤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박스로 인용한 님의 말씀에 결코 동의하기 힘듭니다. 인간 사회가 그런 방식으로 진보한 사례는 제가 알기로 단 한번도 없습니다. 또한 과학적 추론과 데이터로 '반드시 어떤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도출하여 제시한다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도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가능한 정도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석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당장 내일의 일기예보도 그저 수집된 데이터에 기반하여 희미한 확률만을 계산할 수 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보다 더 훨씬 복잡한 인간 사회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반드시 어떤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저 우리는 희미한 경로와 확률만을 어렴풋이 들여다볼 수 있을 뿐인거죠.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 수없는 시행착오속에 반복 실험하다 마침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과학자들 아닙니까? 과학실험실의 조그만 실험 결과도 그럴진데 하물며 인간 사회를 그런 방식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 아닐까요?

인간 사회는 그런거 없어도 이미 수천년전부터 현재에 이르도록 진보를 거듭해왔습니다. 인간이 농경을 발견할 때 과학적 추론과 데이터에 의해 미리 농경사회의 필연성을 제시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습니까, 아니면 배고픔에 주린 어떤 사람이 이런 저런 씨앗들을 심어보다가 쌀의 씨앗이 가장 낫더라는 것을 발견해서 시작된 것입니까? 봉건제도도 마찬가지이고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사회주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수없이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속에서 조금씩 그 형태를 드러낼 뿐인거죠. 그래서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가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인간의 선의나 도덕이 아니라, 현재 진보진영에서 추악하다 비난받고 있는 욕망이라는 것이 바로 제가 주장하는 핵심입니다. 

인간 사회의 미래에 대한 계획과 예측은 데이터가 수집되고 해석될 수 있는 짧은 범위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조차도 의도한 결과가 나올거라는 보장은 결코 없는거죠. 따라서 그 범위 너머의 영역은 오로지 수많은 다양성을 보장하는 가운데 인간들의 욕망이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조정되고 합의되면서 저절로 도출되게끔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입니다. 오로직 그것을 통해서만 진보의 수레바퀴는 굴러갈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기린의 목은 결코 기린들이 원한다고 해서 길어진 것이 아닙니다. 자기도 모르는 새, 왜 그런지도 모르고 그냥 길어진거죠. 기린은 그냥 열심히 높은 가지의 잎사귀만 따먹고, 다양한 배우자와 짝짓기하면서 유전자 풀을 늘리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럼 기린 몸속에 있는 DNA의 의지와 욕망이 기린의 목을 알아서 늘려줄 것입니다. 과학적인 추론과 데이터없어도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인간 사회 역시 욕망이라는 사회의 DNA가 저절로 인간 사회를 진보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할 일은 보다 다양한 의견이 보장되는 철저한 민주주의를 시행하고, 시민들의 욕망이 침해받지 않도록 거대한 탐욕들을 폭로하고 단호히 맞서 싸우면 될 일입니다. 

도리어 ML주의처럼 과학의 이름으로 다양한 시도 자체를 교조적으로 봉쇄하고, 그래서 한번의 시행착오만으로 진보를 향해 가는 인류에게 재앙과도 같은 결과를 안겨주는 어리석고 비과학적인 짓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그런 엄청난 시행착오조차 흡수하여 자신의 진보적인 길을 따라서 전진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극복이 될것입니다. 만약 사회주의가 인간 사회의 미래라면, 이전에 자본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들의 욕망에 의해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걸 믿어야 한다는 말씀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