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는 야만적이고 비도덕적인가

                                                               2010.3.9


헌재의 사형제 합헌 판결로 사형제 폐지 찬성측의 반발이 심한 것 같습니다. 사형제에 대해 개개인의 입장에서 폐지를 주장할 수도 있으며, 헌재의 이번 판결을 비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논리 중에서 사형제를 문명과 야만, 도덕과 비도덕, 양심과 비양심의 문제로 접근하여 사형제를 비난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혹은 개인의 경험이나 가치관에 의해서 사형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하거나 권유하는 것은 수긍할 수 있지만, 사형제 유지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인도적, 비도덕적 그리고 비양심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사형제 유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저는 그러면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 인간이 되는 것인가요?


개인이 사형제를 바라보는 것은 철저히 개인적, 경험적, 실존적 문제이지 이것이 결코 양심이나 도덕의 문제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인간의 생명은 신의 권능의 영역이라 믿는 기독교나 살생을 금하는 불교 등 종교적 이유로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같은 경험을 한 개인들도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오심이나 특히 정치적 이유로 사형을 당한 가족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이유들은 극히 개인적이고 경험적이며 실존적 문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위에 열거한 내용과 다른 경험, 종교(무신론 포함)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사형제를 옹호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개인적이고 실존적 문제일 뿐이지요. 따라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양심과 도덕, 문명과 인도주의를 갖다 대는 것은 사형제 유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공지영의 “우행시” 같은 경험도 있지만, 영화 “세븐 데이즈”의 김미숙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봅니다. 김미숙은 자기 딸을 살해한 범인이 구치소에 수감된 것을 변호사(김윤진)의 딸을 유괴하여 범인을 7일 내로 석방하도록 변호하게 만든 후, 범인이 석방되자 마자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사적으로 보복하지요. 저는 김미숙의 심정도 이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 딸이 만약 유영철이나 강호순, 그리고 의정부, 안양, 최근의 부산에서 일어난 강간 살해범에 의해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면 저는 김미숙의 방식을 선택할 용의가 있습니다. 하물며 사형제가 폐지된다면 아마 더욱더 그런 생각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형제의 폐지로 가해자의 생명을 사적으로 박탈한다 하여도 최소 법적으로 자기의 생명은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극도의 복수심으로 가해자의 생명권을 사적으로 박탈하려는 피해자의 가족들의 시도가 늘어나지 않을까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심리적 위하를 가지고 오는 것은 가해자 뿐만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가족이나 의분에 쌓인 일반인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사형제의 폐지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생명권 박탈의 기회를 사적 영역에서는 더 확대될 여지를 제공하게 됩니다. 사회 시스템(사형제)이 최소 침해를 통해 해결할 문제를 사회 시스템(사형제)가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사적 영역에서 더 큰 (생명권)의 침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형제에 대해 언급한 이야기 중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다음의 말에 감정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살인행위가 아무리 끔찍하고 극악하더라도 자신들은 죽음을 면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서는 아니된다.”

제 가족 앞에서 가해자가 “나는 너희들을 죽여도 내 생명은 보장된다”고 하면서 우리를 위협하거나 실제로 살인행위를 한다는 상상은 제게는 너무나 끔찍합니다.

위하력이 실제로 있든 없든 죽을 정도로 나쁜 일을 하면 죽을 수 있다는 개인의 책임의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 위하력으로 인해 저나 제 가족이 새 발의 피만큼이라도 보호될 수 있다면 저는 사형제를 찬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생명은 천부의 인권이며 인간의 기본권임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 생명권은 상호 존중하는 경우에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에서 적군의 살상행위나 평상시의 정당방위가 정당화되는 것도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시의 살상행위와 정당방위는 생명권을 박탈해야만 하는 긴급성이나 불가피성이 있고 사형제가 행위의 결과에 따른 사후적 조치이기는 하나, 본질적으로 생명권의 상호 존중의 원칙에서 본다면 차별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분들은 헌법 제73조의 “선전포고와 강화“와 관련한 조항을 삭제하는 헌법 개정 청원 운동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전포고“는 상대국에 대해 전쟁을 벌이자는 것이고,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살상을 합법적으로 용인하는 것이며, 더구나 생명권 박탈의 규모가 사형제 실시로 인한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볼 때, 사형제보다도 먼저 대통령의 ”선전포고“ 권한을 삭제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선전포고“는 국가(사회)의 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사형제가 사회의 공익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반론에 무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헌재 판결 중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의 위헌 이유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사형은 응보에 불과하고 살인자를 사형시킨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생명이 되살아 나거나 구원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범죄 종료후의 사후적 조치로 생명권 박탈은 무의미하다는 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후성의 논리를 간과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원인(살인행위)과 결과(살인행위의 응보로 살인자의 사형)가 시간적으로 선후의 관계로 시간의 비가역성에 의해 결과가 원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형제는 결과(응보로써의 사형)가 원인(살인행위에 대한 위하)에 영향을 미치는 사후성의 효과가 작동합니다.

범죄가 종료가 되었기 때문에 피해자 당사자의 생명은 구원되지 못하지만 사형제의 존치는 또 다른 생명권의 보호에 기여하게 됩니다. 전체 생명권의 보호에서 본다면 사형제의 존치가 폐지보다 더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설혹 사형제가 그 위하 효과가 증명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약자(잠정적 피해자)의 심리적 위안과 정당한 응보를 통한 정의의 실현이라는 추상적, 상징적 효과는 있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아직은 사형제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물론 언젠가는 저도 폐지를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입장의 변화는 사회 여건의 변화나 제 개인의 또 다른 경험에서 오는 것이지, 결코 양심이나 도덕이 이유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극악무도한 살상행위를 한 자에 대한 생명권 박탈이 비인도적이거나 비양심적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으며, 그것이 야만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 저는 사형제를 법적으로 폐지할 것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으로는 선택할 수 있는 제도로서 두되, 피해자의 가족의 의사에 따라 그 적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연성을 부여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