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부친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억

필자의 부친은 중학교때 평양에서 혼자 월남하셨다. 당시 해병대에 몸담고 계신 고모부를 따라 묵호와 진해에서 청소년시기를 보내셨다. 대부분 이북 출신 청년들처럼 부친도 서북청년단에 가입을 하셨고 약주를 하실 때면 가끔씩 묵호와 진해에서 고등학생 신분으로 좌익 인사들을 색출하고 때려잡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는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게 해주에서 배를 타고 개성에 도착하자 장택상씨가 마중나와 격려해 주었다는 말씀도 기억이 난다. 이후 625 개전과 함께 비슷한 친구분 10명이 함께 학도병으로 낙동강 전선에 자원해서 부친과 다른 친구 한분만 남기고 모두 돌아가신 얘기를 하실 때면 무척 쓸쓸해 하신 모습이 떠오른다.

전쟁이 끝나고 대학을 마치신 다음 해병장교로 군을 마치신 부친은 국방과학연구소에 들어가셔서 필자가 초등학생시절까지 근무하셨던 기억이 난다.

우리집안 분위기는 간단히 말하자면 '극우'라고 보면 별이상이 없을 거다. 필자가 대학교 2학년때 신검을 받고 왔는데 '1급-수' 판정을 받았다고 말씀 드렸을 때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이건 부친만 그러신 것이 아니라 고모부 역시 당시 국내에서 내놓으라 할만한 권력핵에 계셨는데도 미국 하바드대학에 유학중인 사촌형을 국내로 불러들여 국방의 의무를 마치게 한 집안이다.

필자 역시 석사장교로 군대를 가게 생겼을 때, 입대 전날 고모부께 인사를 드리러 가니 고모부 역시 많이 아쉬워하셨다. 꼭 해병대가야되는데.... 그런 생각이셨던 것 같다. 주위에선 6개월간 장교훈련만 받으면 되니 다들 좋겠다며 부러워했지만 정작 부친과 고모부는 해병대로 군대를 가지 않은 것이 많이 불편하셨던 것 같다.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어땠을지 감이 잡히는가 모르겠다. 필자가 대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는 김대중은 정말 빨갱이였고 박통손에 대한해협에서 죽었어야 될 인물이란 인식밖에는 없었다. 필자가 대학에 들어가 소위 운동권 물이 들어가며 부친과 이런 저런 세상얘기를 나눌때에도 부친께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식을 별로 바꾸시지 않으셨다.

그런 부친께서 김대중 전대통령과 이회창의원이 대선에서 붙었을 때, 김대중 전대통령에 표를 던지셨다. 부친만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표를 던지신 것이 아니라 당시까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던 해병장교학교 동기들 대부분이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표를 모아주셨단다.

부친이 가지고 계셨던 '국가제일주의' 가치관으로는 대법원장이나 되는 사람이 멀쩡한 아들을 두명이나 군대를 보내지 않은 것이 용납이 되지 않으셨던 거다. 반복하지만 당시 부친의 해병장교학교 동기분들 역시 비슷한 생각들이셨고. 부친과 해병장교학교 동기분들에겐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는 행위가 빨갱이(?)짓 보다 더 참을 수 없는 일이셨나보다. (^^)


필자 기억에 남아 있는 김대중 전대통령은 과천에서 투표참관단으로 일할 때 이다. 필자 부친께서 이회창대신에 김대중 전대통령을 밀어주시기 10년전쯤.. 그러니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맞붙었던 대선때이다.



당시 필자는 대학원생이었고 열혈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만히 실험실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마침 과천 성당에 다니는 후배소개로 과천쪽 투표참관인으로 투입되기로 됐다. 당시 김대중후보의 평민당쪽은 이미 투표참관인 자리가 모두 찼다고 하며 김영삼후보의 민주당쪽은 자리가 좀 남았단다. 필자처럼 부친이 평양출신에 모친은 서울출신인 사람에게 김영삼이던 김대중이던 민정당만 아니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해서.... 투표일 아침 일찍 집앞 동회에서 투표를 마치고 과천으로 버스를 타고 나섰다. 민주당 당사에 들러 신부님 소개로 왔다고 알리니 사무장이란 분이 서랍에서 하얀봉투를 하나 준다. 점심값이란다. 봉투에 3만원이간 2만원인가 들어 있었다. 참 지금와서 생각하면 세상에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데 그렇게 나눠지는 돈이 어디서 나왔을테고 그런식으로 선거에서 뿌려지는 돈이 얼마나 나라 경제를 좀 먹을지는 생각을 안했던 것 같다. 알게 모르게 세상이 그렇게 바뀐거다. (그나저나 김영삼의 민주당 참관인이 2-3만이었으면 노태우의 민정당 참관인은 얼마였을까? 참고로 평민당 참관인으로 다녀온 후배들말로는 한푼도 못받았단다)

아무튼 필자는 기쁜 마음에 역사의 한장면에 동참한다고 생각을 했고 투표가 마무리되었을 때도 노태우와 민정당이 승리하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노태우가 1등이란다... 2등 김영삼, 3등 김대중...

한동안 김영삼과 김대중이란 필자에게 정치적 욕심때문에 다 따놓은 민주주의를 군사정권에게 넘겨준 악당 이미지였다. 그리고 둘중에서 김대중에게 조금은 더 욕을 했던 것 같다.


필자와 필자 집안에 남겨진 김대중 전대통령에 얽힌 이미지는 사실 이게 전부다....

그런데 사람은 변한다. 특히나 자기개발 노력이 각별하고 학습능력이 뛰어난 경우는 그 속도가 더 빠르다.

이제 필자 기억에 남은 김대중 전대통령은 IMF를 극복하고 남북관계에 큰 진전을 일군 나라의 거목이다. 특히나 김대중 전대통령의 마지막 공식일정 대부분이 소위 강경노빠와 강경 호남난닝구의 화해를 위한 행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생물학이 전공인 필자 눈에 진화론 개념을 통해 보자면, 원래 환경이 살만하고 풍족하면 종의 다양성은 증가한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보수세력들 봐라. 한나라당.. 그 안에서 친이, 친박으로 나뉘어서 치고 박고... 한나라당 밖에 친박연대, 이회창당... 통털어서 원내 2/3 정도를 차지할 정도가 되니 보수의 다양성이 증가한다.

이렇게 환경이 좋을 때 다양성을 확보해 놓은 종은 환경이 열악해지면 그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는 일부만이 살아 남는다. 즉 환경이 악화되면 종의 다양성이 대폭 축소된다는 말이다.

필자 눈에 보이는 민주세력은 지금 한가하게 네편 내편 나뉘어서 종(?)의 다양성을 늘릴 판이 아니라고 보인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한데 뭉쳐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남는 것이 우선이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이 살아계신 마지막 순간에 내뱉은 수많은 발언들 하나 하나가 금과옥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의 기억에 최종적으로 남은 김대중 전대통령은 정말 한 인간이 마지막까지 조국을 향해 바칠 수 있는 모든 지혜와 경험을 짜내 헌신한 그런 정치인으로 남아 있을 거다. 그나저나 강경노빠들과 호남난닝구들은 김대중 전대통령의 마지막 행보에서 뭔가 좀 배웠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래야 돌아가신 김대중 전대통령의 마지막 투혼(?)이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