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적이지 못한 태도 - 무소의님께 드리는 질문

오늘 아크로에서 처음으로 무소의님을 뵈었습니다. 그것도 오마담님께서 올려주신 [정운찬 총리내정자 논문 2중 게재 의혹..]이란 포스팅에서 말이죠.

지난 몇년간 온라인 상에서 나름대로 이런저런 이슈로 툭탁대며 의견을 주고 받았던 기억들이 있어서인지... 많이 반갑더군요. 물론 제가 반가웠던 이유중에 하나는 이번에 정운찬 총리내정자 이슈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청와대에 입성한 수도 없이 많은 교수출신 인물들이 꽤나 많은 학문적 부정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언젠가 한번은 꼭 물어보고 싶던 걸 자연스럽게(?) 물어 볼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번 정운찬 총리내정자는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3개의 논문이 서로 4~9 페이지 정도가 동일한 형태랍니다 (기사링크). 그리고 이들 사이에 참고문헌에 인용조차 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2000년 6월과 2001년 1월에 나온 두 논문이 영어와 한국어라는 사용 언어만 차이가 있지 실제로는 동일한 논문이라고 합니다 (기사링크). 뭐 완벽한 번역에 불과하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지만 논문에 실린 도표 5개가 동일했다면 자기표절에 해당하지 않나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에 대해 정운찬 총리내정자측의 해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 내정자 측근은 "2000년 논문이 게재된 이후에 한국경제학회에서 '내용이 좋으니 영문으로 게재하자.'고 제의해 논문을 영문으로 번역한 것일 뿐"이라면서 "이중 게재의 목적이나 고의성은 전혀 없었고, 관련 규정에도 독자가 다른 논문은 이중게재로 보지 않는 관례가 있다."고 해명했다.] - 정운찬 내정자 측근

"독자가 다른 논문은 이중게재로 보지 않는 관례" 라는 말이 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사실 제게는 새로운 사건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적어도 청와대에 들어가려면 부동산 투기나, 논문 표절, 위장전입 정도(?)는 해줘야 대열에 낄 자격(?)이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이니까요.

그러던차에 무소의님의 댓글 일부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자기표절문제는, 당연히 잘못한 것입니다만, 역시 과거에는 별 문제의식 없이 이루어졌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에는 그런대로 눈감아 줄 수 있었던 일이어서 그냥 저냥 하고 살았었는데 세상이 달라져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들 많이 있지요.
어느 정도로 비난을 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본인이 자신의 misdeed를 인정하고 새로운 기준을 받아들여서 행동한다는 약속을 하면,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과거의 것들을 교정한다면 이해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닐까하고 생각은 합니다] - 무소의

저는 무소의님의 저 표현들에 거부감이 없습니다. 저 역시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런 표현을 하시는 이가 무소의님이라면 조금은 얘기가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법 오래전 기억이 아주 강하게 남아 있어서 말이죠.

그러니까.....

만 3년하고 1달전쯤이었을 겁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교육부총리에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임명이 되었죠. 그런데 김병준 교수 역시 제자의 논문을 도용해서 이중 게재했다는 지적으로 결국 교육부총리 자리에서 하마를 하고 말았죠.

그때 무소의님께서는 김병준 교수의 당시 변명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죠.

[(표면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그런 주장을 통해 감추고 덮으려고 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제가 뻔뻔하다고 한 겁니다] - 무소의

아마 정운찬 총리 내정자측에서 나온 [독자가 다른 논문은 이중게재로 보지 않는 관례가 있다]라는 변명에도 동일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할 것 같은데 무소의님은 이제는 "어느 정도로 비난을 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려운 일입니다"라고 하십니다.

사실 이 부분이 참 납득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무소의님께서는 꽤 의연하게 원칙에 대한 주장을 하셨거든요. 당시 무소의님의 발언 전문을 인용해 보죠.

[Crete님이 "그 논문이 나간 시점(80년대인지 90년대인지 잘 모르겠지만)의 한국 학계 상황을 고려해도 충분히 "뻔뻔한" 주장인가 보죠?"라고 하셔서 한말씀 더 드립니다.
동의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런 논리라면 친일파중에 비난할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고, 개발독재 동안의 노동탄압은 당시 상황에 비추어 인정되어야 할 겁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말이지요...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누구를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꿋꿋이 원칙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제에 고개를 숙이기 싫다고 얼굴을 뻣뻣이 들고 세수를 했던 만해가 있었고, 노동탄압에 맞서 불에 타 죽은 전태일이 있었지요.

당시 상황이라... 정말 그런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 무소의

그 당시 무소의님의 저 발언은 저를 참 많이 부끄럽게 한 발언이었죠. 더불어 다음의 발언 역시 무소의님은 진영논리에 갇혀서 이중잣대를 사용하실 분이 아니라는 믿음(?)도 심어 주셨고요.

[(전략)....그리고 위의 글은 화가 나서 쓴 글이라기 보다는 Crete님(과 아울러 김모씨에 대해 동정여론을 보내던 개혁지지자들)의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를 지적하려고 쓴 글입니다....
(중략)....그 동기가 어떠했든 간에 이들에 대한 문제제기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로 발전해나가는데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진정 이 사회가 상식과 원칙이 숨쉬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들의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행동들을 비난해야 한다고 저는 봅니다] - 무소의


대충 제가 무소의님께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다 드린 것 같습니다. 제 눈에는 김병준 교수나 정운찬 교수나 학문적 부정행위를 한 점에 대해서는 거기서 거기의 비슷한 사안이라고 봅니다.

저같이 부실한 윤리의식으로 무장한 인물에게는 김병준 교수나 정운찬 교수나 교육 부총리나 총리로 역할을 수행하는대는 그럭저럭 무난한 정치교수쯤으로만 비춰집니다.

다만 김병준 교수의 경우에는 만해와 전태일까지 들먹이시며 "당연히 이들의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행동들을 비난해야 한다"고 하셨던 무소의님께서 무슨 영문으로 "어느 정도로 비난을 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라고 입장이 바뀌셨는지... 그 점은 좀 많이 궁금합니다.

혹여나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로 비춰지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사족: 무소의님과 3년전쯤 브릭에서 나눈 대화를 중심으로 구성해 본 글입니다. 지식인들에게 일관성이란 쉬운듯하면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란 점을 잘 보여줍니다. 타인에게 일관적이지 못하다고 일갈하기는 쉬워도 정작 자신의 당파성과 정파성이 가미되면 판단이 흐려지기 쉬운 일이죠. 이 말은 이글을 읽고 공감하시는 모든 독자분들께도 그리고 제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세월의 풍파에 휩쓸리면서도 일관성을 가진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