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전
 

요즈음에는 안 그러지만 예전에 나는 호기심 때문에 남들이 잘 안 가는 곳에 간 적이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종교 모임에도 몇 번 가 봤고,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이 도를 닦는 곳도 몇 번 가 봤다. 증산도 수련 하는 곳에서는 몇 주 동안 같이 수련도 해 봤다. 그런 곳에서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기대에 부풀어서 나를 꼬셔 같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기는 하다.

 

단전 호흡이든 주문 수행(단전 호흡의 경우에는 호흡에 맞추지만 주문 수행의 경우에는 주문에 맞춘다)이든 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사람의 몸에 세 개의 단전이 있다고 주장한다. 상단전은 양 눈썹 사이 근처에 있고, 중단전은 명치 근처에 있고, 하단전은 배꼽 아래에 있다. 그들에 따르면 수련을 할 때에는 단전에 기를 모은다. 나 역시 어설프지만 수련을 따라 해 본 결과 단전에 뭔가가 모이는 느낌이 들었다. 하단전의 경우에는 그와 동시에 뜨거워지는 느낌도 든다.

 

실제로 수련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은 이런 “기가 단전에 모이는 느낌” 때문에 기의 존재를 믿게 되는 것 같다. 내 생각으로는 어느 정도 훈련을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기를 느끼는 경험
 

증산도 모임에서 옆에서 누군가 수련하는 사람이 있으면 뭔가 표현하기 힘든 느낌을 느낀 적이 있다. 시각도, 청각도, 촉각도, 미각도, 후각도 아닌 어떤 느낌이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도를 닦는 사람”이 유독 나를 많이 꼬시려고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사람에게서도 위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느낌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다. 어쩌면 그 사람들도 나에게서 그런 느낌을 느꼈기 때문에 나를 유독 꼬시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알기로는 이런 느낌을 기 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기라고 부른다. 이런 느낌도 기의 존재를 믿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경락
 

경락은 기가 지나가는 길로 그곳에 침이나 뜸을 놓으면 치료 효과가 있다고 한의사들이 주장하는 곳이다. 하지만 침에 대한 과학적 실험에 따르면 침이 통증 완화 등의 효과가 있긴 하지만 아무 곳이나 놔도 효과에는 별 차이가 없다. 즉 한의사들이 경락이라고 지목하는 곳에 놓든 다른 곳에 놓든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침을 맞고 난 후에 통증이 완화되는 것을 경험한 사람은 경락에 침을 놓았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기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된다.

 

 

 

 

 

기체조
 

기체조나 그와 비슷한 것을 해서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아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직접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직하게 자신이 느낀 대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 역시 기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된다.

 

내 건강 상식에 비추어볼 때 기체조를 꾸준히 해서 건강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은 것은 너무 당연하다. 나 역시 운동을 해서 건강이 상당히 좋아진 경험을 했다. 내가 한 운동은 기체조가 아니라 달리기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달리기를 하는 것을 보면 힘들게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달리기를 해서 건강이 좋아졌다면 육체를 움직이는 운동을 했기 때문에 건강이 좋아졌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반면 기체조나 요가를 하는 것을 보면 별로 힘들게 몸을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건강이 좋아졌다면 육체적 운동보다는 기나 호흡법 때문에 건강이 좋아졌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기체조나 요가를 해 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육체적으로 힘든지 잘 알 것이다. 요가나 기체조를 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 육체적인 측면에서는 별로 큰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하는 사람은 땀을 비 오듯 흘리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보기와는 달리 근육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육체적으로 운동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기체조를 하는 사람은 기의 움직임을 중요시하고 요가를 하는 사람은 호흡법을 중요시한다. 만약 건강이 좋아지는 효과를 발휘한다면 그것은 기나 호흡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나 같은 회의주의자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무나 상식적인 설명 즉 “육체적 운동을 꾸준히 해서 건강이 좋아졌다”는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나 호흡의 효과가 전혀 없더라도 그런 식으로 꾸준히 운동하면 건강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꾸준한 운동이 건강에 온갖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현대 의학의 상식이다.

 

그렇다면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이것을 검증할 방법이 있다. 한 집단에서는 기체조나 요가를 제대로 하고 다른 집단에서는 그 동작과 비슷한 운동을 하지만 기의 운용이나 호흡을 엉터리(물론 기나 호흡법의 중요성을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에만 엉터리일 뿐이다)로 하면 된다. 이 때 누가 진짜 기체조나 요가를 하고 누가 가짜를 하는지를 피험자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

 

만약 기나 호흡법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면 두 집단은 똑 같은 정도로 건강이 좋아질 것이다. 반면 기나 호흡법이 매우 중요하다면 두 집단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즉 기체조나 요가를 제대로 한 집단이 건강이 더 좋아질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그런 실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관념 운동 효과(ideomotor effect)와 기
 

허경영이 텔레비전에서 한 초능력 쇼 중에 그래도 오링 테스트(O-Ring Test)가 가장 그럴 듯해 보인다. 오링 테스트란 어떤 사람이 엄지와 검지로 O자 모양을 만들고 힘을 주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붙은 손가락을 떼 내는 검사 방법이다. 오링 테스트가 훌륭한 검증 방법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예컨대 몸에 좋은 음식을 손에 들고 하면 손가락이 잘 안 떨어지지만 몸에 나쁜 음식을 손에 들고 하면 손가락이 잘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할매 바위에게 소원을 빌고 나서 그 돌멩이를 들어올리려고 하면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성인이 충분히 들어올릴 수 있는 무게이며 소원을 빌기 전에는 실제로 들어올렸는데도 불구하고 소원을 빌고 나서는 들어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소원을 빌고 할매 바위를 들어올리지 못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우징(dowsing, 수맥 찾기 등을 말한다)을 하는 사람들은 펜듈럼, 엘로드(L-rod), 와이로드(Y-rod) 등을 사용한다. 예컨대 수맥 찾기를 할 때에는 수맥이 있는 곳에서 도구가 저절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위에서 나열한 것들을 관념 운동 효과라고 하는데 실제로 경험해 본 사람은 자신이 의식적으로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즉 실제로 힘껏 떼내려고 했는데도 O자로 잡은 손가락을 떼어낼 수 없었다는 점, 실제로 힘껏 들어올리려고 했는데도 할매 바위를 들어올리지 못했다는 점, 실제로 자신은 엘로드를 교차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도 저절로 엘로드가 움직여서 교차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옆에서 보면 사기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이 진짜라는 것을 잘 아는 것이다. 즉 진짜로 신기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다우징 등의 효과를 믿는 이유 중 하나다.

 

서양에서 과학자들은 다우징 등에 대해 이중맹검법(double blind test)을 제대로 적용한 대규모 실험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그래서 효과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다. 예컨대 다우징은 수맥 찾기의 효과가 없다. 엘로드가 “저절로”로 움직인 이유는 수맥에서 나오는 어떤 에너지 때문이 아니라 피험자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암시가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관념 운동의 경우에 뭔가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즉 엘로드는 “저절로” 움직인다. 기의 경우에도 뭔가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즉 단전에 뭔가 모이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아직 현대 과학은 엘로드가 저절로 움직이는 과정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아직 현대 과학은 단전에 뭔가 모이는 느낌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다우징과 관련해서는 물리학과 전혀 상관 없는 개념인 “우주 에너지”라는 희한한 개념이 탄생했다. 기 개념도 그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산소와 기
 

산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산소의 존재를 믿고 있다. 그들은 인간이 호흡을 해서 몸을 움직이는 과정에도, 나무가 불타는 과정에도, 쇠가 녹스는 과정에도 산소가 개입된다고 주장한다. 즉 겉보기에는 서로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과정에 산소가 개입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오백 년 전에 그런 말을 했다면 황당한 헛소리라고 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했기 때문이다. 공기 중에서 산소를 제거하면 나무는 불타지 않으며, 사람은 호흡할 수 없으며, 쇠는 녹슬지 않는다.

 

기도 산소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기 개념을 무시하는 이유는 단지 보이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이유로 기를 믿지 않는다면 산소의 존재도 믿지 않아야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여러 현상들(단전에 무언가 모이는 느낌, 하단전이 뜨거워지는 느낌, 남에게서 뭔가를 느끼는 것, 경락, 기체조, 그리고 여기에서 다루지 않은 온간 것들)을 꿰뚫고 있는 것이 기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침에 대한 과학적 실험을 통해 경락의 경우에는 그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워졌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그리고 기체조 효과의 경우에는 아직 대규모 과학 실험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기를 옹호하는 사람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단전 등과 관련된 느낌, 그리고 동양 고서에 있는 기에 대한 애매한 서술 밖에 없다. 이런 정도의 희박한 증거를 가지고 과학적 정신으로 무장한 과학자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

 

물론 기를 단전에 뭔가 모이는 느낌으로 정의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정의된 기는 한의사나 기 수련을 하는 사람들의 정의와는 다르다. 그들은 기가 치료 효과 건강 개선 효과 등과 연결된 무엇이라고 본다.

 


2009-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