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에 대해서 쓰려는 글은 기본적으로 푸코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즉, 서구의 근대성은 어떻게 형성 되었는가의 문제. 혹은 서구의 근대 과학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의 문제. 좀 더 구체적으로, 이곳에서 문제되고 있는 현대의학의 문제와 관련하여, 서구의 근대 임상 의학은 어떻게 탄생하였는가의 문제.  전근대적인 의학을 극복하고 어떻게 근대적인 임상의학이 탄생하였는가의 문제. 단적으로, 유럽에서 18세기 중반까지는 인간에 대한 해부가 금지되었었죠. 18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해부학이 탄생하고, 근대적인 임상의학이 탄생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었는가의 문제. 서구에서조차 불과 200년 전에서야 인간의 신체를 열어 "볼 수" 있었죠. 물론, "현대 의학"은 그렇게 형성된 근대 임상 의학을 넘어서겠죠. 끊임 없이 근본 전제들을 의문에 부치면서, 자신의 분야를 갱신하는 역사였겠죠. 저는 모르는 분야이니, 별다르게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근대에서 발생했던 근대 임상 의학의 문제들은 여전히 현대 의학에서도 풀지 못하는 숙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생명(life)은 어디에 있는가? 과연 생명이란 무엇인가? 서구인들이 인간의 신체를 해부하기 시작하면서, 즉 죽음을, 주검을 마주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러니컬하게 생명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죠.

서구인들에게 "생명"의 문제란 우리에게 "기"라는 문제와 동일하지 아니한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생명을 마주하면서 생물학적인 어떤 실체를 밝히려고 했던 서구인들처럼, 기라는 것 또한 생물학적인 어떤 실체, 생명이 운행하게 하는 어떤 실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따라서, "기"라는 것은 지극히 생물학적인 것이고, 과학적인 것이어야하죠. 기를 정신의 영역으로 격상시키려는(기에 대한 어떤 이해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결국엔 격하시키는) 모든 시도를 굴북시켜야하죠.

기는 무엇보다 피를 포함한 신체에 있는 물질들의 흐름이죠. 혹은 우리 신체에서의 어떤 자극들이죠. 하나의 기억을 만들기 위해, 뇌에서 일정 정도의 전기 자극이 필요하고 이것에 의해서 기억을 담은 단백질이 뇌에서 형성되게하는 어떤 전기 자극들. "기가 허하다"라는 말은 무엇보다 뇌에서 발생하는, 혹은 신체에서 발생하는 전기자극들이 약하다는 문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기일원론이든, 이기이원론이든, 기라는 신체, 물질의 문제를 정신과 관련시키는 것으로부터 그 논의를 시작하겠죠. (역시 이것 또한 모르기 때문에 여기 까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동양의학의 "과학성"이 의문에 부처져야만 하는 만큼, 서구의 현대의학, 근대 의학, 과학, 인간학, 등등의 "과학성"의 문제 또한 의문에 부처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서구 근대성의 문제 설정). 이런 문제와 더불어서, "우리 자신"의 전근대성(이 또한 서구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겠지만...)이 서구의 근대성에 의해 어떻게 폭력적으로 거세되었는가의 문제. 즉 전근대성이 근대성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 자체가 거세되었는가의 문제 등등등... (이는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이론들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이곳에서의 "과학주의"에 대해 진절머리가 납니다. 저의 눈에는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은 논의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가능한 논의들을 폭력적으로 잠재우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무엇인가를 얼마나 쓸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한 번 하나의 모험을 해보기로 하죠. 써가면서 써 보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