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825,826    물질에 반대한 그의 논증은 『 힐라스와 필로누스의 대화 』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나는 이 책속의 대화들

                   가운데 첫째 대화와 둘째 대화의 서두만 고찰하려 하는데, 이후 주장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

                   고찰할 부분에서 버클리는 중요한 결론을 지지하기 위한 타당한 논증을 내놓지만, 증명하려던 결론을 지지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그는 실재하는 모든 것들이 정신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가 증명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사물이 아닌 성질을 지각하며, 성질은 지각하는 사람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사실이다.


p648.649    His argument against matter is most persuasively set forth in The Dialogues of Hylas and

              Philonous. Of these dialogues I propose to consider only the first and the very beginning of

              the second, since everything that is said after that seems to me of minor importance. In the

              portion of the work that I shall consider, Berkeley advances valid arguments in favour of a

              certain important conclusion, though not quite in favour of the conclusion that he thinks he
              is proving. He thinks he is proving that all reality is mental; what he is proving is that we

              perceive qualities, not things, and that qualities are relative to the percipient.


*  conclusion 이 두번 나오는데 두번째는 버클리가 의도했던 '결론'이고 첫번째는 버클리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버클리의

   논증에 뒤따르는 '결론'이다. 따라서 'in favour of a certain important conclusion' 을 '버클리는 중요한 결론을

   지지하기 위한' 이라고 한건 오역이다.  이 부분은 물질에 반대한 버클리의 논증에 대한 러셀의 총평이기 때문에 심각한

   오역이라 할 수 있다.


   ‘하일라스’란 ‘물질’ 또는 ‘질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hyle’를 줄기 삼아 만든 이름이고, ‘필로누스’는 ‘누스(지성)를

   사랑한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philo-nous’를 음역해 만든 이름이다. ‘하일라스’는 ‘유물론자’의 대명사이고, ‘필로누스’는

   버클리를 대변하는 ‘비(非)유물론자’의 은유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30701&cid=267&categoryId=1079


제안번역 : 물질에 반대한 그의 논증은 『 하일라스와 필로누스의 대화 』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나는 이 책속의

                   대화들 가운데 첫째 대화 전체와 둘째 대화 앞부분만 고찰하려 하는데, 이후 주장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 고찰할 부분에서 버클리는 비록 자신이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 결론을 도출하는 논증을

                   펼치진 못했지만 어떤 중요한 결론에 도달하는 타당한 논증을 내놓았다. 그는 모든 실체가 정신적이라는 걸

                   자신이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가 증명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사물이 아닌 성질을 지각하며

                   성질은 지각하는 사람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사실이다.




p826  두 사람이 몇 마디 정다운 말을 주고 받은 후, 힐라스는 필로누스의 의견들을 둘러싼 이상한 소문을 듣고 나서 물질적

          실체를 믿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고는 이렇게 외친다. "물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다니, 이보다 공상적이며

          상식에 어긋난 뻔한 회의주의가 또 있을까요?


p649   After a few amiable remarks, Hylas says that he has heard strange reports of the opinions of

        Philonous, to the effect that he does not believe in material substance. "Can anything," he

        exclaims, "be more fantastical, more repugnant to Common Sense, or a more manifest piece

        of Scepticism, than to believe there is no such thing as matter?"


* 너무 황당한 오역이라 말이 안 나온다. 두사람이 토론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하일라스가 토론 상대방 필로누수에게

   백기를 들고 있다!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번역해야 한다. 두번째 he 는 필로누스를 가리킨다.


제안번역 : 두 사람이 몇마디 정다운 말을 주고 받은 후 하일라스는 필로누스가 물질적 실체를 믿지 않는다는 취지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이상한 보고를 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물질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다니

                   이보다 더 공상적이고,  이보다 더 상식에 어긋나며,  이보다 더 명백한 회의주의가 또 있을까요? 하고

                   목청을 높였다.







p826  이제 필로누스는 "실존한다는 것과 지각된다는 것은 별개이다."는 힐라스의 의견에 반대하여 "감각 사물들은

          지각될 때 실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시작한다. 필로누스는 다양한 감각들에 대한 상세한 검토를 거쳐, 감각

          자료는 정신적인 것이라는 논제를 지지한다. 그는 뜨거움과 차가움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극심한 뜨거움은

          고통을 일으키며 틀림없이 마음 안에 있다. 그러므로 뜨거움은 정신적인 것이다.


p649  Philonous now sets to work to prove that "the reality of sensible things consists in being

       perceived," as against the opinion of Hylas, that "to exist is one thing, and to be perceived

       is another." That sensedata are mental is a thesis which Philonous supports by a detailed

       examination of the various senses. He begins with heat and cold. Great heat, he says,

       is a pain, and pain must be in a mind. Therefore heat is mental;




* 버클리는   Great heat is a pain. 이라고 했지 Great heat causes pain. 이라 하지 않았다.

   버클리의 논리는 이렇다. A는 B다. B는 C 속에 있다. 따라서 A는 C 속에 있다. 서교수 처럼 번역하면 버클리의 논리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제안번역 : 이제 필로누스는 "존재한다는 것과 지각된다는 것은 별개다"는 하일라스의 의견에 반대하여 "감각사물들은

                   지각될 때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한다. 필로누스는 다양한 감각들에 대한 상세한 검토를 거쳐

                   감각자료는 정신적인 것이라는 논제를 지지한다. 그는 뜨거움과 차가움을 가지고 시작한다, 극심한 뜨거움은

                   고통이고, 고통은 틀림없이 마음속에 있다. 따라서 뜨거움은 정신적인 것이다.




p827  필로누스는 다음으로 미각을 예로 든다 그는 단맛은 쾨락을 느끼게 하고 쓴맛은 고통을 느끼게 하는데, 쾌락과

          고통은 정신적인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논증이 후각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까닭은 향기도 쾌감이나 불쾌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p649. 650  Philonous next takes up tastes. He points out that a sweet taste is a pleasure and a bitter

              taste is a pain, and that pleasure and pain are mental. The same argument applies to odours,
              since they are pleasant or unpleasant.


제안번역 : 필로누스는 맛을 거론한다. 그는 단맛은 쾌락이고 쓴맛은 고통이며, 쾌락과 고통은 정신적인 거라고 지적한다.

                   같은 논증이 냄새에도 적용되는데 냄새는 유쾌하거나 불쾌하기 때문이다.




p829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감각의 직접적 대상은 어느것이나 사고하지 않는 실체 속에, 즉 모든 마음의 외부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명백한 모순이다." 이는 오류 추론에 해당하는데, 다음의 논증과 유사하다. "삼촌이 없다면 조카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A씨는 조카이다 그러므로 A 씨에게 삼촌이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이다." 이것은

          물론 A씨가 조카라는 사실이 주어진다면 논리적으로 필연적이지만, A 씨를 분석함으로써 발견한 어느것 때문에

          필연적으로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만약 어떤 것이 감각의 대상이라면 마음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그것이 감각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걸론이 도출되지 않는다.


p652 He says: "That any immediate object of the senses should exist in an unthinking substance,

       or exterior to all minds, is in itself an evident contradiction." There is here a fallacy, analogous

       to the following: "It is impossible for a nephew to exist without an uncle; now Mr. A is a

       nephew; therefore it is logically necessary for Mr. A to have an uncle." It is, of course, logically

       necessary given that Mr. A is a nephew, but not from anything to be discovered by analysis of

       Mr. A. So, if something is an object of the senses, some mind is concerned with it; but it does

       not follow that the same thing could not have existed without being an object of the senses.


* given that ~ : ' ~ 라면' 이다. 위의 논증은 논리 차원의 논증으로 사실 관계를 따지는게 아니다.


제안번역 : 그는 말하기를 "감각의 직접적 대상은 어느것이나 사고하지 않는 실체속에 또는 마음의 외부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명백한 모순이다. 이는 오류 추론에 해당하는데, 다음의 논증과 유사하다. "삼촌 없이 조카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A씨는 조카이다 그러므로 A 씨에게 삼촌이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이다."

                   이것은 물론 A씨가 조카라면 논리적으로 필연이지만, A 씨를 분석함으로써 발견한 어떤것 때문에  필연적으로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만약 어떤 것이 감각의 대상이라면 마음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그것이 감각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걸론이 도출되진 않는다.





p830 앞의 주장을 논증 형식으로 구성하면 버클리의 논증은 이렇다. "감각의 대상은 반드시 감각될 수 있어야 한다. A는

         감각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A는 반드시 감각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반드시 무엇이어야 한다'란 말이

         논리적으로 필연성을 가리킨다면 앞의 논증은 A가 반드시 감각될 경우에만 타탕하다. 이 논증은 A의 속성들 가운데

         감각될 수 있다는 것 이외의 속성으로부터 A의 감각가능성을 연역적으로 입증하지 못한다. 예컨대 우리가 보는 색들과

         본래 구별되지 않는 색들이 우리가 보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다. 생리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을 수도 있지만, 이는 경험적인 문제이다. 논리적 관점에서 보면

         눈이나 뇌가 없다고 해서 색이 없으란 법은 없다.


p653 Schematically, the argument is as follows. Berkeley says: "Sensible objects must be sensible.

       A is a sensible object. Therefore A must be sensible." But if "must" indicates logical necessity,

       the argument is only valid if A must be a sensible object. The argument does not prove that,

       from the properties of A other than its being sensible, it can be deduced that A is sensible.

       It does not prove, for example, that colours intrinsically indistinguishable from those that we

       see may not exist unseen. We may believe on physiological grounds that this does not occur,

       but such grounds are empirical; so far as logic is concerned, there is no reason why there

       should not be colours where there is no eye or brain.


* 우리가 보는 색과 본질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색은 봐도 봤는지 알 수 없고 안 봐도 안 봤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unseen 을 "우리가 보지 않는다면"  이라고 번역할 순 없다.




제안번역 : 버클리의  논증은 도식적으로 다음과 같다. " 감각 가능 대상은 틀림없이 감각 가능하다. A는 감각 가능한 대상

                  이다. 그러므로 A는 틀림없이 감각 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틀림없이 어떠하다" 가 논리적 필연성을 가리킨다면

                  이 논증은 A가 틀림없이 감각 가능한 대상이어야만 타당하다. 그런데 이 논증은 A의 속성들 가운데 감각 가능성

                  이외의 속성으로부터 A의 감각 가능성을 연역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이 논증은

                  우리가  보는 색과 본질적으로 구별할 수 없는 색이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주장을 입증하지

                  못한다. 생리학적 근거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을 수도 있으나 그러한 근거는 경험적인 것이다.

                  논리적 관점에서 보면 눈이나 뇌가 없다고 색이 없으란 법은 없다.





p831 경험적인 논증들 가운데 첫째 논증은 기이하다. 열이 대상속에 있을 리가 없는데, 왜냐하면 "극한의 열은 극한의

         고통" 이고, 우리는 "지각하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이든 쾌락과 고통을 일으킬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버클리는 '고통' 이란 말을 애매하게 사용한다. '고통'은 어떤 감각의 고통스런 성질을 의미하거나 고통스런

         성질을 가진 감각을 의미할 수도 있다. 우리는 부러진 다리가 아프다고 말하지만 다리가 마음속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열은 고통을 야기한며, 이것이 우리가 고통이라는 말을 쓸 때 의미해야 할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버클리의 첫째 경험 논증은 빈약한 논증이다.


p653 The first of the empirical arguments is an odd one: That heat cannot be in the object, because

       "the most vehement and intense degree of heat [is] a very great pain" and we cannot suppose

       "any unperceiving thing capable of pain or pleasure." There is an ambiguity in the word "pain,"

       of which Berkeley takes advantage. It may mean the painful quality of a sensation, or it may

       mean the sensation that has this quality. We say a broken leg is painful, without implying that

       the leg is in the mind; it might be, similarly, that heat causes pain, and that this is all we ought

       to mean when we say it is a pain. This argument, therefore, is a poor one.


* 완전히 틀렸다. 버클리의 논리는 이렇다. "뜨거움은 고통인데 지각하지 않는 것은 고통을 느낄 수 없으므로 지각이 없는

   것에 뜨거움은  없다."  " unperceiving thing capable of pain or pleasure " 를  서교수처럼 번역해서는

   버클리가 어떤 논리로  대상속에 뜨거움이 없다는 주장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제안번역 : 경험적인 논증들 가운데 첫번째 것은 이상하다. 뜨거움은 대상속에 있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극심한 뜨거움은

                   극도의 고통인데 지각하지 않는 것이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통이란 단어엔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애매함이 있는데 버클리는 그걸 이용하고 있다. 고통은 어떤 감각의 고통스런

                   성질을 의미하거나 고통스런 성질을 가진 감각을 의미할 수도 있다. 우리는 부러진 다리가 아프다고 말하지만

                   그 다리가 마음속에 있다는 걸 뜻하며 하는 말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뜨거움은 고통을 야기하며 이것이

                   우리가 뜨거움이 고통이라고 말할 때 의미해야 할 전부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 논증은 빈약한 논증이다.




p831  맛에 대해서도 쾌락과 고통에 의한 논증이  반복된다. 단맛은 쾌락을 일으키고 쓴맛은 고통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둘 다 정신에 속한다. 또 내가 건강할 때는 단맛을 내는 것이, 병에 걸렸을 때는 쓴맛을 낼 수도 있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냄새에 대해서도 흡사한 논증을 제시한다. 냄새는 쾌나 불쾌를 일으킨 뒤부터 "지각하는 실체, 즉 마음속이

          아닌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


p653, 654  In regard to tastes, the argument from pleasure and pain is repeated: Sweetness is a

              pleasure and bitterness a pain, therefore both are mental. It is also urged that a thing

              that tastes sweet when I am well may taste bitter when I am ill. Very similar arguments
              are used about odours: since they are pleasant or unpleasant, "they cannot exist in any

              but a perceiving substance or mind."


*완전히 틀렸다.  since 는 "~ 이래로" 가 아니고 이유를 나타낸다.


제안번역 : 맛에 대해서도 쾌락과 고통으로부터 끌어낸 논증이 반복된다. 달콤함은 쾌락이고 쓴 것은 고통이다. 그러므로

                  둘 다 정신에 속한다. 또한 내가 건강할 땐 달게 느껴지던 것이 아플 땐 쓰게 느껴질 거라고 역설한다. 냄새에

                  대해서도 아주 비슷한 논증을 제시한다. 냄새는 유쾌하거나 불쾌하기 때문에 "지각하는 실체나 마음외의 어떤

                  것에도 존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