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영훈 교수는 화제의 인물입니다. 요 며칠 스켑티칼과 아크로를 뜨겁게 달구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논쟁을 지켜본 제 소감으론 많은 분들이 이영훈 교수의 주장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 성리학 때문에 망한게 아니다.
이영훈 교수 또한 조선이 단지 성리학 때문에 망했다고 주장하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조선초기 성리학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어떤 점에선 지금도 그 영향이 남아있다고 합니다.(저도 살짝 오해했습니다) 그렇지만 후기 들어 조선의 체제 자체가 한계를 드러냅니다. 우선 생산력이 저하하고(산림의 남벌 등등) 반면 기존의 조세 제도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곳곳에서 민란이 발생하여 국가 자체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즉, 외부의 도전 이전에 조선의 문명과 체제 자체가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성리학 때문이 아니라 지배계급이 문제였다'고 주장하던데 이영훈 교수도 크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다만 이영훈 교수는 그 시점에서 성리학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있던 조선의 지배층은 적절히 대응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조선이 성리학으로 불교를 대체했듯 그때 만약 지배층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지배 원리를 성리학에서 서구의 합리성이나 과학 등을 대체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전 이 부분에 대해 이영훈 교수에게 동의하는 편입니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아무리 성리학의 이상에 충실한 국가라도 자본주의 국가와 싸움이 붙으면 그냥 사라집니다.^^  만약 '성리학이 문제가 아니라 지배 계급의 부패가 문제'라고 반박하면 이영훈 교수는 '지배 계급의 부패가 해결되지 않고 점점 더 극심해졌다는 게 바로 성리학이 국가의 통치 원리로 한계를 드러낸 시점임을 보여준다'라고 대꾸하지 않을까요?

2. 일본은 조선을 수탈했다.
이영훈 교수 또한 조선은 수탈당했다고 분명히 적고 있습니다. 즉, 수탈했냐 안했냐는 이영훈 교수를 반박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다만 이 영훈 교수는 수탈 방식에 대해 주목합니다. 이영훈 교수가 주장하는건 일제의 수탈 방식은 흔히 알고 있듯 전근대적 방식으로 이뤄진게 아니라 근대적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료를 제시합니다. 즉, 쌀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공출된 게 아니라 시장 원리에 따라 '수출'됐으며 토지 조사 또한 당시 조선 농민들이 소유 개념에 희박하다는 점을 이용해 40프로 이상을 빼았다는 결과를 찾아볼 수 없더라는 겁니다. 오히려 한해 3프로 넘게 경제 성장하면서 일반 민중의 삶 또한 개선되었다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물론 그러한 경제 성장에서 노른자위는 당연히 일본인 차지였고 그 결과 조선내 한국과 일본인의 빈부 격차는 점점 더 확대됩니다. 즉, 이영훈 교수는 실증 자료에 근거하여 일본의 수탈은 자본주의적 원리를 이식하여 이뤄진 것이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총칼로 협박하여 쌀뺏고 땅 뺏고 노예 노동 시키고 그런 방식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이영훈 교수를 반박하려면 '조선이 수탈당하지 않았다는 말이냐?'가 아니라 전근대적 방식으로 수탈이 이뤄졌다는 증거를  제시하는게 옳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의 경제성장이 계속되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조선의 토지와 자원과 공업시설은 점점 일본인의 소유가 되지요. 바로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식민지적 수탈이지요.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하여 한반도의 자원과 고업시설을 일본인의 소유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동화정책에 따른 실질적인 수탈의 무서운 결과를 보게 됩니다. 이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식민지근대화론이라 하면 사람들은 일제의 조선 지배를 미화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수탈과 차별이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해 벌어졌는지를 제대로 보자는 것이 식민지근대화론이지요. 문자 그대로 식민지적으로 이루어진 근대화였습니다."

3. 자본주의의 맹아가 조선후기에 이뤄졌다는걸 부정한다.
이 점에 대해선 이영훈 교수의 분명한 언급이 없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래의 언급을 보면 완벽히 부정하는건 아니라고 보입니다.
 
"과연 조선왕조의 문화는 우수하였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조선왕조 시대에 이룩된 문명의 성과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현대문명을 절반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가족, 촌락, 단체, 관료제, 시장, 사유재산 등의 여러 문명의 요소에서 조선왕조는 세계적으로 비교적 높은 수준에 있었지요"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토지를 가리켜 ‘사람의 목숨줄’[人之命脈]이라 하였습니다. 소유권 관념이 희박했다니요. 천만의 말씀이지요. 또 조선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500년간 3년에 한 번씩 국가에 호적을 신고해야 했습니다. 신고 절차에 익숙지 않았다니 그것도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식민지의 경제 규모가 커지는 과정에서 일본인과의 차이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만 조선인의 소득도 커지고 있었지요. 원래 그럴만한 문명 능력의 전통이었습니다."

지금 찾아보진 못했습니다만 이영훈 교수도 어느 글에선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토지 소유 개념이 강화되었다고 적었던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조선 후기 자본주의 맹아론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본질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내용이 되긴 어렵다고 봅니다. 왜냐면 '자본주의의 맹아가 있다 하더라도 낡은 성리학적 질서에 집착하던 조선의 지배층은 이를 발전시킬 능력이 없거나 오히려 억압했고 그 결과 일제에 의해 조선은 병합되었다. 그렇지만 그 맹아는 이후 일제가 이식한 식민지적 근대화에 조응하여 빠르게 근대 사회로 이행하는 동력이 되었다.'라고 이야기해도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자...자....이렇게 용감히 떡밥을 던진 아마추어의 용기에 조응하여 다시 뜨거운 토론을 붙여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