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개념의 문제점 – 교권의 문제
 

인문학(humanity)은 과학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개념을 먼저 파헤칠 필요가 있다. 인문학 개념을 파헤치기 위해 보통 인문학으로 분류되는 윤리학, 정치학, 미학의 예를 살펴보겠다.

 

윤리학을 먼저 살펴보자. 이것은 기술 윤리학(도덕 심리학)과 규범 윤리학(도덕 철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기술 윤리학은 과학의 교권에 속하며 규범 윤리학은 도덕 철학의 교권에 속한다. 기술 윤리학에서는 인간의 죄책감, 도덕적 판단 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목표다. 반면 규범 윤리학에서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문제를 다룬다. 이것은 적어도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과학적으로 해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취향의 문제다.

 

정치학의 경우에도 과학의 교권에 속하는 기술 정치학과 도덕 철학의 교권에 속하는 규범 정치학으로 나눌 수 있다. 기술 정치학에서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정치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반면 규범 정치학에서는 “어떤 정치 체제가 바람직한가?”라는 문제를 다룬다. 규범 정치학은 응용 도덕 철학이다.

 

미학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것은 기술 미학(미 심리학)과 규범 미학(미 철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기술 미학은 과학의 교권에 속하며 규범 미학은 예술의 교권에 속한다. 인간이 어떤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있으며 이것은 기술 미학의 목표다. 반면 “어떤 식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다루는 규범 미학은 예술의 교권에 속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동의에 이를 수 없으며 취향이 개입된다.

 

설사 어떻게 해야 대중이 매우 좋아하는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밝혀냈다고 하더라도 예술 창작의 지침으로 그대로 쓸 수는 없다. 왜냐하면 “대중이 좋아하는 식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완벽하게 밝혔다 하더라도 그대로 윤리적 지침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은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야 한다”라는 당위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인문학을 과학으로 분류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이유 중 하나는 하나의 개념이 과학의 교권과 도덕 철학(또는 예술)의 교권을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나는 인문학 개념 그리고 그 하위 개념인 윤리학, 정치학, 미학 개념을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대상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목표와 방법론이 다르다면 서로 다른 학문인 것이다. 신학과 종교학은 같은 대상을 다루고 있지만 서로 전혀 다르다. 종교학은 종교 현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목표지만 신학은 신을 믿는 사람들의 신념 체계다. 마찬가지로 기술 윤리학과 규범 윤리학은 서로 다른 학문이다.

 

인문학으로 분류되는 것들 중 과학의 교권에 속하는 것들 예컨대 기술 윤리학, 기술 미학, 기술 정치학을 보통 인간 과학(human science) 또는 사회 과학(social science)이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들은 규범 윤리학까지도 인간 과학에 포함시키는데 나는 그런 식으로 과학 개념을 남용하는 것에 반대한다. 인문학과 인간 과학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

 

 

 

 

 

자연 과학과 인간 과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같은 자연 과학을 과학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아무도 시비를 거는 것 같지 않다. 반면 인간 과학을 과학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 과학을 경성 과학(hard science)이라고 부르며 인간 과학이나 사회 과학을 연성 과학(soft science)이라고 부른다. 연성 과학이라는 용어는 증거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진짜 과학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비아냥을 암시하는 것 같다.

 

나는 인간 과학의 근거가 견고하지 못한 이유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편으로, 인간 과학의 증거가 부실한 데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인간의 뇌는 우주에서 가장 복잡하다는 악명을 얻고 있다. 따라서 수 많은 인간들이 사회를 이루어서 만들어내는 현상은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인간 과학이 다루는 대상은 물리학이나 화학이 다루는 대상보다 연구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보통 자연 과학으로 분류되는 생물학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 많은 경우 생물학 이론은 물리학이나 화학에서처럼 환상적인 정량 분석으로 검증하기 힘들다. 특히 진화 생물학의 경우가 더 그런 것 같다. 인간 과학의 난점은 이런 생물학의 난점의 한 극단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어떤 생물의 뇌보다도 더 복잡하다. 게다가 인간을 대상으로 잔인한 실험을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기 때문에 검증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실제로 검증을 위해 실험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 과학자들의 무능, 게으름, 뻔뻔스러움 등이 인간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며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자연 과학계에서는 잘 정립된 기존 이론과 정면 충돌하는 가설들은 빠르게 도태되었다(물론 대단한 혁명으로 이어진 경우도 소수 있긴 하다). 반면 인간 과학계에서는 잘 정립된 진화 생물학 이론과 정면으로 충돌해도 별 문제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많은 자칭 인간 과학자들은 진화 생물학 같은 학문은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으며 진화론에 밝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해도 무시했다.

 

인간 과학자들의 뻔뻔스러움은 잘못을 지적하는 진화 심리학자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공격하는 데에서 잘 드러났다. 이것은 “인간이 동물이라고 가르치면 아이들이 동물처럼 행동할 것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이대며 진화 생물학을 거부했던 기독교 지도자들과 비슷한 행태다. 내가 보기에 대중이 진화 생물학을 받아들이면 타격을 받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이 아니라 십일조다. 마찬가지로 진화 심리학이 학계에 퍼지면 타격 받는 것은 인간 사회가 아니라 기존 빈 서판론자들의 밥줄이다.

 

나는 자연 과학과 인간 과학을 가로지르는 건널 수 없는 강은 없다고 본다. 단지 어떤 현상은 더 설명하기 힘들 뿐이다. 현상의 복잡성은 이분법적이지 않다. 그것은 스펙트럼을 이룬다. 즉 자연 과학의 대상은 모두 매우 단순하고 인간 과학의 대상은 모두 매우 복잡한 것이 아니다. 생물학은 보통 자연 과학으로 분류되지만 신경원(neuron)이 수백 개 밖에 안 되는 편형 동물의 복잡성과 침팬지의 복잡성은 매우 다르다.

 

자연 과학과 인간 과학의 방법론이 서로 근본적으로 다를 필요도 없다. 단지 인간의 경우에는 현상이 너무 복잡해서 물리학에서처럼 환상적인 정량 분석에 성공하는 경우가 드물 뿐이다. 많은 경우 정량 분석에 성공하지 못하면 증거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 과학의 이론에 대한 확신은 물리학 이론에 대한 확신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진화 생물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는 앞으로 20세기 인간 과학계를 지배했던 무능과 뻔뻔스러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면 인간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이유 때문에 여전히 자연 과학에는 뒤쳐질 것이다.

 

 

 

 

 

과학과 사이비과학
 

교권이 서로 달라서 과학으로 분류되지 않는 규범 윤리학이나 규범 미학은 과학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다. 단지 분야가 다를 뿐이다. 서로 분야가 다른 학문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반면 과학과 사이비과학(또는 미신)은 우열의 문제다. 왜냐하면 둘 모두 과학의 교권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나는 당대의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과학적 방법론의 측면에서 심하게 한심한 것을 사이비과학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사이비과학과 과학의 구분은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스펙트럼을 이룬다. 하지만 빨강이라는 개념이 애매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저 물건은 빨간색이다”라는 동의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하는 짓이 너무 한심하면서도 과학이라고 우기는 “과학 공동체”에 대해서 사이비과학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점성술뿐 아니라 한의학, 정신분석도 사이비과학으로 분류한다.

 

기존 인간 과학의 경우에도 사이비과학적인 것들이 상당히 많다. 기능론적 사회학자(기능주의자)들의 경우에는 가설 정립 자체가 한심하다. 많은 사회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근친 상간 회피에 대한 진화 생물학적 연구를 그냥 무시해 버린다. 많은 인간 과학자들이 과학의 교권에서 논쟁을 벌이는데 이데올로기를 앞세운다. 많은 “진보적 과학자”들은 인종들의 지능이 서로 다르게 진화했을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 진화를 인도하는 수호 천사에 대한 믿음과 다를 바 없다.

 

칼 포퍼는 반증 가능성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사이비과학자들이 명제를 반증 불가능하도록 너무 애매하게 제시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사이비과학자들도 많은 경우 반증 가능한 명제들을 제시한다. 또한 반증 가능성만 문제 삼는다면 반증 가능한 명제들을 제시하면서 매우 한심한 방식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을 사이비과학자로 분류할 수 없을 것이다.

 

 

 

2009-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