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이덕하님 글 1번항의 비유의 적절성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칸트 해석의 오류에 대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냥 덧붙이는 정도의 말입니다.

1.
"동의보감"을 보지 않고도 한의학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칸트의 저작들(또는 그에 대한 해설서들)을 읽지 않고 칸트 철학을 비판할 수 있습니까? 두 가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한의학의 과학성은 "동의보감"을 읽지 않고도 경험적 실험을 통해 검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칸트는 칸트의 저작들이나 그에 대한 입문서, 개론서를 읽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그 진위를 검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의학과 칸트는 이런 식으로 비교될 수 없습니다.
거꾸로 이렇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1. 이덕하님이 칸트의 저작이나 그에 대한 입문서를 제대로 안 읽고 정확한 이해 없이 칸트는 엉터리라고 비판합니다. 2. 누군가 한의학이 뭔지 정확히 모른 상태에서(그러니까 한의학이 양의학이나 대체의학, 민간요법 따위와 어떻게 구분되는지, 어떤 게 한의학이고 어떤 게 그렇지 않은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한의학이 엉터리라고 비판합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습니까? 칸트의 저작들이나 입문서, 개론서를 읽는 것은 한의학에서 동의보감을 읽는 것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한의학의 구체적인 실천들과 방법들을 아는 것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비판은 자신이 무엇을 비판하는지 그 대상 자체를 확정하는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한의학의 경우에도 한의학을 비판하려면, 한의학이 어떤 의학이고 그래서 구체적인 치료 방법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경험적으로 그 방법들이 옳은지 검증해볼 수 있죠.그 지식을 얻는 길이 꼭 "동의보감"일 필요는 없는 것일 뿐이죠. 이덕하님은 지금 칸트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칸트를 비판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문제는, 한의학과 상대성 이론을 구분하듯이 비과학과 검증 체계를 잘 갖추고 있는 과학의 차이가 아닙니다. 칸트 철학이 합리적으로 논할 만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상대성이론과 한의학이 구분될 만큼 확고하게 학계 내에서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오히려 현 상황은 반대로 칸트의 권위는 학계에서 상당한 편이죠). 따라서 칸트 이론을 한의학처럼 만드는 건 전적으로 이덕하님 본인이 해야 할 작업입니다. 이 작업이 이뤄지기 전에는 지금 이덕하님이 하는 식으로 칸트 철학을 한의학처럼 한 마디로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근거가 없으니까요. 이덕하님은 지금 상대성이론과 한의학을 비교하면서 엉터리로 칸트 철학이 한의학과 같이 헛소리인 것으로 학계에서 인정이 된양 착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에 아울러, 칸트를 읽어야 할 필요성을 자신으로부터 면제해주는 덤까지 누리고 있죠.

(그에 더해서 한의학과 관련해서, 이런 문제를 한 번 생각해보죠.

"하나가 “가짜 약(placebo) 효과를 고려한 이중맹검법(double-blind test)으로 치료 효과를 검증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저는 잘 모릅니다만, 한의학의 내용들 중 일부는 치료 효과를 저런 방법으로 검증해본 것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이중검맹법을 사용한 최신 연구가 있을 수도 있고, 전통적으로 약효를 판단하는 기준들 속에 암묵적으로 그와 유사한 검증 기준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런 게 있는지 없는지 알기 위해서는 저 비판을 무턱대고 옳다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일단 저런 연구가 있는지부터 찾아보아야 하고, 그런 연후에나 내가 찾아본 한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어쨌든 여기는 한의학을 다루는 곳이 아니니 넘어가죠.)

요약하자면, 이덕하님의 비유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비판은 두 단계를 거쳐 시작됩니다. 1. 비판 대상의 확정, 2. 비판 대상의 검증. 한의학과 상대성 이론의 비교는 2 단계에서의 문제입니다. 칸트 철학은 1 단계를 아직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2 단계의 검증까지 가서 칸트 철학은 엉터리라고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결론을 내놓은 학자는 없으며, 따라서 이덕하님 본인이 1단계를 거쳐 2단계로 가야 하는데 이덕하님이 아직 1단계를 통과 못했기 때문입니다.


2.
1) 이덕하님이 칸트를 일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종의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칸트의 도덕 철학이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주의적 오류 개념의 핵심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지만 “공리 수준에서 도덕 규범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도덕은 취향의 문제다”라는 명제로 요약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는 여기에서 이덕하님이 어떤 의미에서 자연주의적 오류를 사용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어떤 규범을 누군가가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취향에 달린 것이라는 점을 얘기하시는 듯 합니다. 따라서 어떤 규범을 누군가가 취향이 아닌 다른 근거에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것이죠. 저는 이게 제대로 된 구분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규범을 누군가는 취향에 따라 받아들이고, 어떤 누군가는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따라 받아들입니다. 둘 중 누가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단 이 질문을 던져두고 이덕하님의 답변을 들어보고 더 얘기해보겠습니다.

* 이 부분과 관련해서 조금 수정하겠습니다. 규범을 이성적 판단에 따라 받아들인다고 한 부분은 이성적 의지로 받아들인다고 바꾸어 표현하는 게 낫겠습니다. "어떤 규범을 누군가는 취향에 따라 받아들이고,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이성적 의지에 따라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이 맥락에서 이성적 판단은 이성적 자유의지의 실행과 같은 의미로 썼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내가 어떤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 여러 손익을 따져보면 오히려 손해이지만, 나는 이 행동이 선한 것이므로 한다"라는 판단입니다. 그러니까 칸트가 선한 행위와 결부시키는 이성적 판단은 이성적 주체의 자유의지에 근거한 판단입니다. 이렇게 해놓고, 취향과 이런 칸트적 이성 판단, 누가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범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질문드리겠습니다.

2) 보다 일반론적으로 자연주의적 오류를 이해한다면 이것은 사실로부터 당위를 이끌어내는 오류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미에서라면 칸트는 결코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행해야만 할 것에 대한 법칙들을 행해진 것에서 끄집어내거나 그걸 가지고 제한하려 하는 것은 가장 배격해야 할 일이다."(순수이성비판, A318=B375. 백종현 역본 543쪽) 이 이상 명백하게 자연주의적 오류를 거부할 수 있습니까?

 이덕하님은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칸트의 독창성은 그가 윤리 규범은 이성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다고 본 점에 있다."

저는 이덕하님이 이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계신지 의심스럽습니다. 칸트는 이성과 지성을 구분하고 이성은 현상계에 적용되지 않는 능력이라고 봅니다. 지성이 범주들을 통해 경험 대상들을 구성해내는 역할을 한다면, 이성은 경험 세계 속에서 자신의 대상을 갖지 않습니다. 이성은 이념을 대상으로 갖는데 이 이념은 영혼, 자유, 신입니다. 그리고 바로 도덕 법칙에서 우리는 자연적 인과관계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의 이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도덕 법칙은 책임을 스스로 질 수 있는 자유로운 주체를 상정할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칸트에게서 도덕법칙과 이성은 단순히 일방적인 도출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칸트는 "자유는 도덕 법칙의 존재 근거이나, 도덕 법칙은 자유의 인식 근거"라고 말합니다(실천이성비판, O5=V4, 백종현 역본 37쪽). 자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 안에 도덕 법칙이 있고, 우리 안에 도덕 법칙이 인식되기 때문에 자유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의 함축을 모두 이해하려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여기에서 칸트 해설을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그냥 이렇게만 말해두겠습니다. 칸트가 도덕 법칙을 이성으로부터 끌어낸다고 할 때, 이는 자연의 인과관계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이성 주체가 자기 스스로에게 도덕 법칙을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칸트는 예지계, 자유 등의 말로 사실의 세계로 환원될 수 없는 당위의 세계를 규정했고 그 어떤 윤리학자보다 더 철저하게 이 안에 머물렀습니다. 이런 칸트에게 이성에서 윤리규범을 끌어내므로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한다고 주장하는 건, 이덕하님이 칸트가 누군지 모르고 있다는 것만 더욱 분명하게 보여줄 따름입니다.


3. 인식론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지만, 넘어가겠습니다. 다만 칸트가 말하는 감각, 지성, 이성, 선험성a priori, 초월적transzendental, 이런 개념들을 이해하지 않고 진화 심리학의 선천론과 비슷하다고 얘기하는 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입니다. 이덕하님이 칸트를 싫어하는 건 이덕하님 자유이고 충분히 알겠습니다. 이렇게 또 논점을 확대하는 글 말고(이덕하님이 이렇게 너무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자꾸 이야기를 하시면 제가 칸트 강의를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초점을 좁혀서 거짓 약속 논의와 관련해서 칸트의 횡설수설에 대한 보충 논의를 기대합니다.


제 논의의 핵심만 간추리면, 칸트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므로 이덕하님의 칸트 비판은 아예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