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과 진화심리학'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주제, 즉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인간관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맑스주의 경제학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주류 경제학의 '경제적 인간'에 대해서만 다룹니다.  



1. '경제적 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경과 정리  


1) 제가 처음 얘기한 주장입니다 : 주류 경제학이나 맑스주의 경제학에서 인간은 돈에 환장한다는 가정을 세우지 않습니다.

2) 덕하님의 반론 : 저는 "경제적 인간"이라는 가정을 좀 코믹하게 "돈에 환장했다"라고 표현했을 뿐입니다...... 만약 소비자가 돈을 전혀 소중히 하지 않아서 같은 품질인 물건을 살 때 100를 더 요구하는 판매자에게서도 기꺼이 물건을 산다면 수요-공급의 법칙을 비롯한 주류 경제학의 온갖 법칙들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3) 저의 재반론 :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적 인간'이란 사실상 '인간은 뭔가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며, 또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수단을 이치에 맞게 찾아낼만큼 영리하다'는 정도의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즉, (도구적 합리성이라 측면에서) 인간은 멍청하지 않다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후략)

4) 칼도님의 댓글 : 그건 '호모 사피엔스'의 뜻이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인간 정의에 가깝고 '경제적 인간'은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즉 주류경제학은  '자신의 목적'을  self-intrested 로 한정합니다.  





2. 현대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기적(self-interested)'은  일상언어의 '이기적(self-interested)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기적' 행위란 말이 어떤 의미, 용법으로 쓰이는지 직관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상의 예를 몇 개 들어보죠.

 1) 마더 테레사 수녀는 빈민 구호소 운영을 통해 막대한 후원금을 받아 부자가 되리라는 예상을 하며, (오직 부자가 되리라는 단지 그 목적하에) 인도 캘커타 빈민지구에 빈민구호소를 설립하였다. 

 2) 마더 테레사 수녀는 빈민 구호소 운영을 통해 막대한 후원금을 받고, 이 후원금을 모조리 빼돌려 인도의 빈민이 아니라 아사위기에 처한 아프리카 아동에게 후원금으로 기부하기 위해, 인도 캘커타 빈민지구에 빈민구호소를 설립하였다.   

 3) 마더 테레사 수녀는 빈민 구호소 운영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모조리 잃고, 피로와 병에 시달리며, 정신적 스트레스 역시 받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여타 모든 중요한 일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예상을 하며, 인도 캘커타 빈민지역에 빈민 구호소를 설립하였다. 

 
제 언어감각에 비춰 본다면, 1)은 일상 언어적 차원에서 분명히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2)는 어떤가? 지나치게 작위적인 상황설정이긴 하나, 일단 마더 테레사 수녀의 결정이 '이기적'인지 아닌지 판단을 하라면 그게 좀 애매하고 어렵습니다. 다만, 3)이라면 우리 일상언어 감각으로 볼 때 분명 '이타적'인 행동으로 판단됩니다. 칼도님이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목적을 self-interested로 한정한다고 말했을 때, 칼도님이 self-interested로 염두한 상황이나 경우는 아마도 1)과 같은 경우를 말한거겠죠. 그리고 이렇게 오해하는 경우가 꽤 흔합니다 (심지어 학자들이나 교수들 저작에서도!). 


 그러나, 현대 경제학에서 인간은 자신의 효용(Utility)을 극대화하려고 한다고 말할 때, 또는 인간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여러 대안들에 결부된 예상편익과 예상비용을 비교하교 따져보아 어떤 대안들을 선택한다고 말할 때, 또는 그냥 단순히 경제학에선 '이기적 인간'을 가정한다고 말할 때 여기서 말하는 'self-interest'의 개념은 보통 우리가 쓰는 '이기적'이란 말과 다릅니다. 위에서 가상해 본 마더 테레사 수녀의 세 가지 행위 모두 현대 (주류) 경제학에서 본다면 '이기적'인 행위로 규정합니다. 다시 말해, 1)의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2)와 3) 모두 논란의 여지없이 (현대 경제학적 의미에서) 이기적 행위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죠. 일본 유학생 이씨는 어느날 아침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에 치일 위험에 빠질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습니다. 당시 그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면 자신이 100% 죽는 대신, 그 사람을 구할 가능성은 대략 50%는 되리라는 예상 하에 죽음을 무릎쓰고 몸을 날려 그 사람을 구했습니다. 이 때 (현대 경제학 관점)에서 유학생 이씨는 행위를 본다면 이는 순전히 이기적(self-interested) 행위인데, 왜냐하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을 구하기로 행동했다'는 것은 이씨가 그 밖의 다른 모든 대안들보다 그 행동을 가장 '선호'했다는 것을 드러내며,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경제학의 규정한 정의에 따라 자신의 이득을 추구한 행동(이기적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경제학에서 인간은 최대 효용(최대 행복이라고 해도 무방)을 추구한다고 보는데, 여기서 말하는 효용(utility)이란 전적으로 행위자의 주관적(subjective) 관점에서 규정됩니다. 다시 말해, 어떤 의미에서든  특정한 행동으로 만족감을 이끌어낸다면, 이는 효용(Utility)을 얻은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의 얘기로 돌아가, 마더 테레사 수녀는 빈민들의 복지가 향샹에 '만족'을 느낄 수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 수녀가 얻은 만족감은 효용(Utility)입니다. 빈민들의 복지향상이 테레사 수녀의 기분을 전혀 좋게 해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저 종교적, 신앙적 의무감에 따라 빈민을 돕는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테레사 수녀는 종교적 의무를 충족시키는데서 효용(Utility)를 얻고 있는 겁니다. 또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지 유학생 이씨의 경우, 사람을 돕는다는 행위에서 얻는 효용(편익)이 비용(자신의 목숨)보다 더 크며, 다른 어떤 대안들보다 가장 큰 순효용, 순편익을 얻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목숨을 포기하고 사람을 구한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즉, 현대 경제학의 의미에서) 유학생 이씨의 행동 역시 '이기적'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현대 경제학에서 말하는 효용이란 오로지 행위자의 주관적 관점에서 규정됩니다. 

  



3. 경제학적 의미의 '이기성'이 함의하는 바 몇 가지  


여기까지 경제학적 의미에서 '이기적'이다, 자신의 효용극대화를 추구한다, 가능한 모든 행위에 대해 예상편익과 예상비용을 따져 가장 큰 순편익이 예상되는 행위를  선택한다...등등의 실제 뜻하는 바를 알게되면 다음의 의문들이 제기될지도 모릅니다. 예상질문과 함께 간략한 답변을 덧붙입니다. 


 1) 경제학에서 이기성을 그와 같은 용법으로 사용한다면, 도대체 그 말의 정의 자체에 따라 이기적인 아닌 인간행위은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이건 마치 항진명제, 또는 동어반복과 그다지 다를바 없는 얘기 아니냐? 

 ===> 맞습니다. (물론 경제학에서 쓰는 용어의 정의 그 자체에 따라) 극악무도하고 반사회적인 범죄자, 종교적 성자, 부처, 예수, 히틀러, 스탈린, 간디, 마틴 루터 킹 목사, 맑스, 레닌,  마더 테레사 수녀, 모조리 각자 자신이 추구하는 '효용'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이기적입니다.  효용이란 전적으로 행위자 주관에 달린 문제로 보며, 그에 대해 어떠한 가치판단도 내리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강간해서 얻든, 남을 돕거나, 또는 희생적인 애국심을 발휘해 몸을 던지든, 뭘 어찌해서 얻든간에 그로부터 각 개인들이 얻는 효용들은 그냥 각자가 얻는 효용일 뿐입니다. 저게 더 좋다, 나쁘다, 그런 판단은 없습니다. 


       
2) 뭘 하건간에 그 행위가 모두 이기적이라면, 굳이 그런 표현이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 네. 인간이 이기적이다, 굳이 그런 표현을 쓸 실익이 그다지 없습니다.  따지고보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목적성을 띈다는 정도의 의미와 별 다를바 없으니까요. 

그리고 또 실제로 잘 쓰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기성'을 일상언어의 이기성으로 오해하는 주류 경제학 비판자들이 그 말을 애용하는 것 같습니다. 
 


3) 그렇다면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이 (일상적 의미에서의) 이기적 인간이라는 통념은 어디에서 나온거냐? 

이게...스토리를 자잘하게 설명하려면 아주 길어집니다만, 그래도 간단하게 요약을 해보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경우 시장에서의 교환이 사회에 뿌리내리게 됨에 따라, 그 시장에 참가하는 생산자, 소비자는 우리가 일상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이기심'에 따라 경제행위를 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고전파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시장참가자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 '이기적 인간'이 맞습니다.

다만, 인간의 본성을 이기적이라고 보았다고 하면 이건 곤란합니다. 국부론에서 아담 스미스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한 동정심, 선의를 발휘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말합니다. 다만, 그 동정심이나  선의에는 한계가 있으며, 또 서로 익명의 사람끼리 대면해서 상품,노동을 교환하는 시장이란 제도는 그런 인간의 동정심, 공감, 선의가 아니라 (우리가 보통 말하는 그 이기심)의 작용으로 돌아간다고 봤을 뿐입니다. 아담 스미스의 인간관을 '자기밖에 모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보시면 이건 완전히 오류.   

그런데.....근대 경제학의 역사에서 고전파(아담 스미스나 리카도)에서 신고전파(19세기 이후의 한계효용학파)로 넘어오면서 경제학 체계의 한 가지 면, 즉 가치론에서 이론적 단절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신'고전파죠). 고전파가 객관적 가치론을 견지했다면, 신고전파는 이를 버리고 벤담의 공리주의(Utilitarianism)에서 유래한 주관적 가치설을 발전시켰습니다. 거칠게 말해 상품의 가치가 그 상품생산에 투하된 인간의 노동 시간과 같이 어떤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정해진다고 보는 견해를 '객관적 가치설', 전적으로 행위자 주관이 상품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평가(예상)하는 '효용'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견해를 '주관적 가치설'이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다만, 일단 이렇게 주관적 가치론이 자리잡게 되면, 아담 스미스와 같이 인간이 자신의 부와 재화 등의 물질적 복지를 위해 시장에 참가한다는  식의 (일상적 의미에서의) 이기적 동기를 가정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관적 가치론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시장에서의 경제행위를 포함해) 효용극대화를 위한 것인데, 그 효용의 내용이란 고상한 것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컨데 아프리카 기아아동을 돕기위해 인도 빈민들에게 사기를 친다는 그 두번째 경우의 마더 테레사 수녀를 생각하며 됩니다. 이게 (일상적 의미에서) 이기적인 행동인지 아닌지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으며, 그저 자신의 '효용'을 최대화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고, 그것이 도덕적으로 고상한지 어떤지 등의 문제는 경제학자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4. 그럼 경제학에서 명시적,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인간본성론은 뭔가? 


이 질문은 제가 답하기 아주 까다롭습니다. 일단 돈에 환장한 속물이 아니라는건 확실합니다.  일상적 의미에서의 '이기적' 인간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인간관이 뭔지 모르겠습니다만, 거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건 플라톤적 인간관, 공자나 맹자의 인간관이나 불교 및 기독교의 인간관과도 동떨어져 있습니다. 이걸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인간관하고도 별 상관 없을 듯.

아무튼....이하는 그저 제 사견임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보기엔, 현대 경제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또는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 아무런 (또는 거의 아무런) 가정을 하지 않는거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여지껏 알아차리지 못한, 암묵적이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뭔가가 있을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현대 경제학이 인간에 대해 가정을 하는 거라곤, "인간의 행동은 무언가 목적성을 띄며, 자신의 취할 수 있는 행동들에 대해 각각 예상되는 편익(효용)과 비용을 따지면서 가장 큰 순편익이 예상되는  행동을 취하며, 머리가  멍청하진 않아서 자신이 원하는 효용극대화를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취할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이들 외에 달리, 이것이 인간본성이다...라고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바가 따로 있을지 의문입니다.


위 답변에 대해선 별로 자신이 없습니다. 납득이 잘 안되는 부분이 있다면 다시 댓글로 질문을 던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