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랫동안 창도 없고 문도 없는 골방에 갇혀있었나 보네요. 들뢰즈가 라이프니츠의 단자(monad)를 설명하면서 비유하는 창도 없고 문도 없는 철학자의 골방 말이죠. 이젠 창도 없고 문도 없는 그 골방에서 나와야겠네요. 그 골방에서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으리란 헛된 믿음으로 타전을 보내는 것에 이젠 지쳤네요.

인터넷에 4년 정도 거의 글을 쓰지 않은 이유로, 또한 눈팅도 하지 않은 이유로, 인터넷 토론 사이트의 분위기를 전혀 알 수 없었던 저로서는 이곳에 첫 발을 딧고 제가 단 댓글과 관련된 댓글들을 보는 것은 어떤 당황스러움 그 이상이었습니다. 모욕감? 이 감정이 정답일 듯하네요.

저의 첫 댓글은 숨쉬는 바람 님의 프로이트에 대한 글에 성(sexuality)에 대한 댓글을 달면서, 정신분석은 주체에 대한 과학이라고 썼던 것이었습니다. 저의 이 글에 대한 댓글은 아니었지만, 어떤 님이 프로이트, 혹은 정신분석학은 문학을 제외하고선 그 어디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라는 몰상식한 댓글에 쪼~옴 충격을 먹었었죠. 사실 그 한 분의 댓글에 대한 충격 보다는 그러한 견해가 이곳에서 다수를 이룬다는 것에 더 놀랐다고 해야겠네요.

옆 동네에서 과학논쟁 관련된 글을 훓다가 링크된 라캉의 글을 읽고, 이글루스에서의 "라캉논쟁"이라는 것을 대충 읽으면서, 인터넷 판에서의, 혹은 인터넷 공론장에서의 라캉이니, 정신분석학이니, 심리학이니, 철학이니 하는 것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대충 감도 잡았네요. 그러니, 위에 언급한 분의 댓글에 대해, 이곳의 "과학주의"에 대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드네요.

사실 "과학주의"라는 용어는 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사랑인가 하는 분의 말도 안되는 글에 대해, 관념론과 유물론을 차분하게 정리하셔서 포스팅했다가 지워진 뤼야라는 님의 글에서 최초로 읽었던 듯하네요. 이곳에서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저 "과학주의"라는 용어와 마주치면서, "과학주의에 대한 불편함"으로 표출이 되었던 것이겠죠. 이 시점에서라면, 저 "과학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쪽이 나을 듯하네요. 이곳에서의 "과학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그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제가 굳이 그것을 비판할 이유도 없을테니 말입니다. 저는 그냥 저의 말을 하면 되지 싶습니다.

라캉이 후기에 정신분석학을 과학의 지위로 승격시키려던 눈물나는 노력을 보면서 "그건 미친짓"이라고 후배에게 말했었죠. 라캉은 정신병환자(psychotic)라고도 말했었죠. 그가 기이한 기호들로, 브로미언 매듭이라는 기이한 매듭으로 그의 이론 체계를 설명하려는 것을 보고, 정신병환자라고 말했던 거죠. 빵상아줌마가 빵상빵상이라는 언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정신병이죠. 그즈음 텔레비전에서 외계인과 소통하는 언어를 만들었다는 어떤 땡중의 이야기도 보았었네요.

프로이트의 사례연구(case study)에서 나오는 슈레버 판사의 정신병과 동일하죠. 항문으로 신의 빛을 받아 온 인류가 멸망한 후에 신인류를 자신이 낳을 것이라는 슈레버 말이죠. 그래서 그도 신과 소통하는 언어를 만듭니다. 좀 더 전문적인 얘기로, 정신병은 언어, 즉 상징계를 배제(foreclosure)하는 것이죠. 이는 빵상아줌마나 슈레버와 같이 신적 언어를 창조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후기 라캉은 정신병환자라고 말을 하긴했으나, 제임스 조이스와 같이 시적 언어를 창조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을 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때 즈음 라캉은 제임스 조이스에 대해 세미나를 진행했죠.

슈레버의 망상증(paranoia, 편집증이라고 잘못 번역되고 잘못 알려진 용어)과 관련해서, 한국의 80년대를 장식했던 "내 귀에 도청장치"라는 우리 시대의 망상증도 떠오르네요. <<살인의 추억>>을 통해 회상되는 80년대식 망상증 말이죠. 다시 문학, 혹은 문화를 말하게 되는군요. "프로이트는 문학 이외에는 어디에도 쓸모가 없다"는 말처럼 다시 문학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ㅎㅎㅎ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70년대의 풍경을 채우던 그 많던 광년이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그 시대에, 정신의학은, 과학은, 실증적 지식은, 정치경제학은, 인간 과학은 어디에 있었죠?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과학주의에 대한 불편함"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권력"의 폭력을 넘어서는, 명박산성을 넘어서는 불가능한 꿈을 꾸는 저에게나 적합한 질문일지도 모르겠구요. 과연 실증적 지식이란 무엇이죠? 실증적 과학이란 무엇이죠? 제가 지닌 해답은, 삶을 비루함으로 추락시키는 권력에 저항하는 지식, 과학, 철학이 아니라면... 혹은 그것이 무엇일지는 모르지만, 대항-과학(counter-science)이라고 부를 수 있을 어떤 무엇이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