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분은 논쟁 중에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이웃들을 사랑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인간이 인류를 사랑해야 할 그런 자연의 법칙 따위도 존재하지 않으며, 만일 이 땅에 지금까지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연의 법칙 때문이 아니라 당연히 사람들이 영생을 믿었던 까닭이라고 당당히 공언했던 것입니다. 그때 이반 표도르비치는 모든 자연의 법칙이 그 안에 있으므로 영생에 대한 믿음을 인간으로부터 박탈해 버리면 당장 사랑뿐 아니라 인류의 생활을 지속시키는 모든 활력이 고갈되고 말 것이라는 내용을, 내친김에 덧붙였지요. 게다가 그때는 비도덕적인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어서 모든 것이, 심지어는 사람을 잡아먹는 일까지도 허용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우리들처럼 신도, 자신의 영생도 믿지 않는 모든 개인에게서 자연의 도덕률은 과거의 종교적인 것과는 완전히 상충되도록 급격히 바뀌게 되고, 극악안 이기주의조차도 인간에게 인정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필연적이고 가장 합리적이며 가장 고상한 결론으로 인정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말을 끝맺었던 것입니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대우 옮김, 열린책들, 130)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면 인간이 지극히 사악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19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 중에는 설사 신이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해도 종교가 유지되는 것이 사회에 유익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신에 대한 두려움만이 인간의 사악한 본성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진화론자들은 어떻게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어느 정도 밝혀냈다. 이런 설명에 따르면 이기적 유전자가 주조해낸 인간은 그 본성상 어느 정도는 이타적이고 도덕적이다. 따라서 신에 대한 믿음이 없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타적이고 도덕적으로 살 것이다.

 

20세기 들어서 전세계적으로 신에 대한 믿음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한국 같은 나라에는 비종교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절반이나 된다. 무신론자가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나라가 더 이기적이고 부도덕하게 사는 것 같지는 않다. 신이 죽으면 도덕이 완전히 무너져버릴 것이라는 19세기 일부 사상가들의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종교가 악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더 종교적인 주가 덜 종교적인 주에 비해 범죄가 더 많이 일어난다는 통계를 대기도 한다.

 

종교가 악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종교에서 권위주의, 동성애 억압, 여성 차별, 맹신 등을 부추긴다는 점은 명백하며 나는 그런 것들이 악이라고 본다. 둘째, 대다수 사람들이 악이라고 규정하는 것들 즉 강간, 부당한 폭행, 부당한 살인 등을 종교가 부추긴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동성애 억압의 경우에는 무엇이 선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동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반면 강간이 악이라는 점에는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다.

 

이 글에서는 두 번째 해석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과연 도킨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종교는 강간 등을 부추기는 것일까? 아니면 여러 종교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종교는 사람을 착하게 만들어서 강간 등을 줄이는 효과를 발휘할까?

 

 

 

종교가 인간을 선하게 만든다는 주장의 논리는 간명하고 설득력이 있다. 불의를 처벌하는 정의의 신이 진짜로 존재해서 인간의 행동을 감시하면서 잘못을 범한 자들을 처벌한다고 진짜로 굳게 믿는 사람은 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착하게 살려고 할 것이다.

 

<마이 네임 이즈 얼(My Name Is Earl, 2006)>의 주인공 얼 히키는 어릴 때부터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어느 순간부터 카르마(karma, 인과응보)가 자신을 감시하면서 처벌하거나 상을 준다고 굳게 믿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나름대로 매우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얼 히키가 카르마의 존재를 믿는 것만큼이나 강렬하게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종교에서 신은 감시와 처벌을 하는 정의의 신으로 묘사된다. 신의 존재를 굳게 믿는 사람들은 신의 성격(정의의 신)에 대해서도 굳게 믿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종교가 착하게 살도록 강력한 영향을 끼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신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을 착하게 만든다는 명제를 검증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각 주를 비교하는 것처럼 지극히 조잡하게 검증하는 것이 대다수였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는 제대로 검증할 수 없다.

 

우선 연구 대상을 종교인과 비종교인으로 거칠게 분류하면 안 된다. 신의 존재를 강하게 믿는 사람, 신의 존재에 대해 믿기는 하지만 의심을 어느 정도 하는 사람, 신이 없다고 강하게 믿는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 신에 대한 믿음을 0에서 10까지 점수를 매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또한 교리도 중요하다. 어떤 교리에 따르면 신은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을 천당에 보내고 악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지옥에 보낸다. 어떤 교리에 따르면 신은 자신을 믿는 사람을 천당에 보내고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지옥에 보낸다. 어떤 교리에 따르면 신은 사람이 죽은 후에 상을 주거나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몇 시간, 몇 일, 몇 주 안에 상을 주거나 처벌한다.

 

 

 

얼 히키를 감시하는 카르마는 몇 일 이내에 상을 주거나 처벌을 한다. 그리고 얼 히키는 카르마가 존재한다고 강렬하게 믿는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 그는 카르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착하게 산다.

 

만약 죽은 다음에나 상을 주거나 처벌한다면 그 효과는 별로 크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미래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도록 설계되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만약 신이 악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처벌한다면 신의 존재를 아무리 강하게 믿어도 착하게 살 이유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그냥 신을 계속 믿기만 하면 천당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신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을 착하게 만든다는 명제가 유력한 가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그럴 듯하게 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 가설에 따르면, 다른 조건이 같다면 선행과 악행에 따라 상과 벌을 주는 신을 믿는 사람이 신앙의 정도에 따라 상과 벌을 주는 신을 믿는 사람에 비해 더 착하게 살 것이다. 그리고 다른 조건이 같다면 빠른 시간 안에 처벌하는 신을 믿는 사람이 죽은 후에나 처벌하는 신을 믿는 사람에 비해 더 착하게 살 것이다. 그리고 신에 대한 믿음이 강렬할수록 더 착하게 살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연구한 것을 본 적이 없다. 내 짐작으로는 신에 대한 믿음이 정말로 강렬한 사람들은 그 믿음 때문에 상당히 더 착하게 살 것 같다. 물론 이 때 그 착함의 기준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다.

 

 

 

2010-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