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물학이나 진화 심리학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오래 전부터 결혼이 일종의 매춘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결혼과 매춘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으려는 시도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결혼은 신성한 반면 매춘은 사악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결혼과 매춘 사이에 중대한 공통점도 있지만 커다란 차이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포유류와 조류에 한정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조류와 포유류는 체내 수정을 하며 암컷이 임신한다. 암컷은 자신의 배속에 있는 자식이 자신의 유전적 자식임을 확신할 수 있는 반면 수컷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수컷은 자신의 아내의 자식이 자신의 유전적 자식인지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없다. 만약 아내가 다른 수컷과 성교를 했다면 남의 유전적 자식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체외 수정을 하는 여러 종의 어류의 경우에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아내가 부부의 영역에 알을 낳아 놓은 후에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다른 암컷이 그 알을 먹어 버리고 자신의 알을 낳은 후 사라졌다고 하자. 그 때 남편이 자신의 정자로 그 알을 수정하고 부부가 그렇게 해서 태어난 자식을 키운다면 그 자식들은 남편의 유전적 자식이지만 아내의 유전적 자식은 아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종이 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체외 수정을 하는 종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특히 포유류의 경우 암컷이 수컷에 비해 자식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쏟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왜냐하면 이론적으로 수컷은 정자만 달랑 제공해도 자식을 볼 수 있는 반면 암컷의 경우에는 적어도 임신과 수유를 해야 자식이 자랄 수 있다. 이런 경우 수컷의 정자에 비해 암컷의 자궁이 훨씬 더 귀하다. 그래서 암컷에 비해 수컷이 성교를 하겠다고 더 열성적으로 달려는 경우가 많다.

 

수컷이 더 성교를 원하기 때문에 암컷은 배짱을 부릴 수 있다. 성교의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종에서 수컷이 성교의 대가로 먹을 것 등을 암컷에게 제공하는 일이 관찰되었다. 이런 일이 일회적으로 벌어진다면 그것을 매춘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여러 종의 곤충 수컷이 성교를 위해 먹을 것을 암컷에게 제공한다. 이런 것을 보통 결혼 선물이라고 부르는데 엄밀히 말해 화대가 더 적절한 용어인 것 같다. 한번 성교하고는 바로 헤어지는 것을 결혼이라고 부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결혼은 이런 일회적인 교환은 아니다. 하지만 교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일어난다. 암컷은 수컷에게 독점적으로 성교할 권리를 제공하며 수컷은 암컷과 암컷의 자식에게 자원과 노력을 쏟는다.

 

아내와 독점적으로 성교할 권리가 문명의 산물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동물계와 인간 사회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는 종에서 아내가 다른 수컷과 교미를 할 때 가만히 구경만 하는 남편은 거의 없다. 인간이든 새든 남편은 질투를 한다. 질투에 빠진 남편은 아내를 공격하거나, 아내와 성교한 수컷을 공격하거나, 이혼을 하거나, 자식 돌보기에 소홀해진다. 아내가 독점적으로 성교할 권리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으면 남편은 자원과 노력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점적 성교의 권리가 수컷들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그 이유는 수컷이 유전적으로는 남인, 아내의 자식을 돌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인다면 진화적으로는 망하기 때문이다. 포유류의 경우 체내 수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회적 자식이 유전적 자식인지 여부를 확실히 알기 힘들다. 그것을 확실히 알아낼 수 있는 유전자 검사는 20세기 후반에나 가능해졌다. 일부 어류의 경우에는 그것을 냄새 등으로 거의 확실히 알아내는 메커니즘이 진화한 것 같다. 하지만 포유류의 경우 그런 능력을 진화시킨 경우는 없는 듯하다.

 

아내를 성적으로 독점해야 아내의 자식이 자신의 유전적 자식일 확률이 높다. 그런 경우에는 자식을 돌보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는 것이 적응적이다. 반면 남의 유전적 자식들만 돌보는 수컷들은 진화적으로 파산하게 된다.

 

 

 

매춘의 경우에는 교환이 일회적으로 일어난다. 반면 결혼의 경우에는 관계가 오랜 기간 지속된다. 사랑 메커니즘이 부부가 협동하여 자식을 같이 돌보는 것이 가능하도록 한다. 일회적 교환에는 이런 사랑이 필요 없다. 매춘의 경우에는 성충동만 있는 반면 결혼의 경우에는 성충동과 사랑이 공존한다.

 

 

 

적어도 인간 매춘의 경우 교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의식적으로 안다. 반면 결혼의 경우에는 그것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특별히 진화 심리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부부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어울려 하는 것이며, 아내가 바람을 피우면 남편이 자신도 모르게 질투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 질투의 진화적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차이는 우정과 계약(또는 물물교환) 사이의 차이와 비슷하다. 1000원과 빵을 교환하기로 한 두 사람은 두 가지 물건이 교환된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안다. 그리고 그런 교환은 보통 일회적이다. 반면 우정의 경우에는 관계가 지속되며 교환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서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단지 그들은 자신이 친구를 많이 도왔는데 친구가 자신을 돕지 않을 경우 서운함이나 배신감을 느낄 뿐이다. 또한 친구가 자신을 크게 도와주었을 때 고마움을 느낄 뿐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 고마움과 배신감의 진화적 의미를 모른다.

 

질투 메커니즘은 결혼의 암시적 계약이 위협받고 있을 때 적응적으로 대처하도록 한다. 극단적인 경우 질투는 이혼 즉 계약 파기로 이어진다. 배신감 메커니즘도 비슷하다. 극단적인 경우 배신감은 절교 즉 계약 파기로 이어진다.

 

 

 

결혼의 핵심적 측면 중 하나는 공동으로 자식을 돌본다는 점이다. 포유류의 경우 암컷이 자신의 배속에서 나온 자식을 돌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수컷의 경우에는 자신의 유전적 자식일 확률이 높을 때에만 그 자식을 돌보는 것이 적응적이다. 결혼을 해서 아내를 어느 정도 성적으로 독점하면 그 확률이 높다.

 

반면 매춘으로 한 번 성교를 했다고 해서 나중에 여자가 낳을 자식이 남자의 유전적 자식이라는 보장은 별로 없다. 그래서 동물이든 인간이든 매춘의 경우에는 수컷의 자식 돌보기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매춘과 결혼의 중간 형태를 보이는 종도 있다. 어떤 원숭이의 경우가 그렇다. 그 종에서는 암컷과 수컷이 인간이나 갈매기처럼 결혼을 하지도 않지만 어느 정도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된다. 수컷은 암컷에게 자원을 제공하거나 암컷의 자식을 어느 정도 돌본다. 그 대가로 암컷은 수컷에게 성교 기회를 많이 제공한다. 그것을 영장류 학자들은 보통 우정(friendship)이라고 부른다. 우정이라는 단어가 그리 적절해 보이지는 않지만 더 적절한 단어를 본 적은 없다.

 

그 원숭이의 우정과 인간의 결혼 사이에는 양적인 차이가 있다. 암컷이 수컷에게 성교 기회를 많이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점적이지는 않다. 따라서 암컷의 자식이 수컷의 유전적 자식일 확률이 높긴 하지만 인간이나 갈매기처럼 높지는 않다. 수컷은 암컷의 자식을 돌보기는 하지만 결혼의 경우처럼 열심히 돌보지는 않는다. 아마 그런 식의 우정을 나누는 암컷과 수컷 사이에는 인간의 낭만적 사랑(남녀 사이의 사랑, 연애 감정) 비슷한 것이 있겠지만 인간의 낭만적 사랑만큼 강렬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질투 역시 인간만큼 강렬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0-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