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30대 기혼여성이 그날 따라 검은색 정장을 입고 왔다. 특별한 자리에 가기 위해서 차려입은 옷이라는데, 어쩐지 평소 분위기와 다른 생경한 느낌이 들면서 사람들이 "장례식에 가는 것 같다"며 놀려댔다. 나는 거기에 한 술 더 떠 "그거, 미망인들이 주로 입는 복장인데요?"라고 한 마디 했다가 원망을 들었다.

문득, 오래 전 친구 녀석들과 남편이 먼저 죽은 여성들을 부르는 호칭을 놓고 농담을 주고받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이혼이 아닌, 배우자와 사별하여 홀로 된 여성을 가리키는 호칭은 대개 세 가지 정도인 것 같다. 홀어미, 과부, 미망인이 그것이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홀어미가 아닌 '홀엄씨'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홀어미<과부<미망인 순으로 존중의 정도가 강화되는 것 같다. 즉, 홀어미는 신분이 낮은 여성을 낮춰 부르는 호칭이고, 과부는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홀로 된 여성을 일컫는 호칭인 것 같다. 미망인은 사회적으로 상당히 지위가 높은 여성이 홀로 된 경우에 주로 사용하는 호칭이다.

하지만 단어의 원래 뜻을 살펴보면 저 순서는 무의미해지거나 오히려 역전이 되는 느낌이다.

우선, 홀어미. 혼자서 사는 어머니, 여성 등을 일컫는다. 그냥, 남편이 없다는 의미이다. 특별히 존중하거나 치켜세우는 의미도 없지만 비하의 의미도 거의 없다. 물론 과거에는 남편 없이 홀로 지내는 여성의 위치가 지금에 비해서 훨씬 더 열악했겠지만 표현 자체에서는 그런 뉘앙스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과부는 寡婦라고 쓴다. 과(寡)는 적다, 약하다는 의미인데, 과부에서 사용하는 의미는 '약하다'는 것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홀로 되어 숫자가 적어졌고 또 그래서 약한 입장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는 의미를 배경에 깔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주 비하하는 호칭은 아니지만, 홀어미에 비해서는 상당히 '불리한' 호칭이라고 볼 수 있다.

미망인을 보자. 未亡人이라고 쓴다. 말 그대로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남편이 죽었으니 당연히 따라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못하고(또는 죽지 않고) 버티고 있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남편이 죽고 없는 여인이 계속 살아있어야 할 존재 가치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그 생존 자체를 파렴치한 행위로 비하하는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이것은 물론 과거 순장(殉葬) 풍습에서 비롯된 용어라고 봐야 한다. 높은 신분의 남자가 죽었을 때 그가 생전에 곁에 두었던 여인이나 물건, 시종 등을 무덤에 함께 넣어주는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로 이렇게 높은 신분의 사람의 장례에서 순장 풍습이 행해졌기 때문에, 이후 높은 사람이 죽었을 때 남은 유족 가운데 아내를 일컬어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관습이 생겨났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성을 부르는 표현의 어원을 살펴보면 현재의 일반적인 사용법과 달리 홀어미>과부>미망인의 순서로 존중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지금도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이 죽었을 때 신문 기사나 공식적인 표현 등에서 죽은 사람의 부인을 일컬어 '미망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 더.

요즘은 자신의 아내를 일컬어 '부인'이라고 부르는 푼수들이 너무 많아졌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내 부인이..." 이런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기도 했다. '부인'이란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표현이다. 또는 자신의 아내를 직접 대면해서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아내를 '지칭'하는 표현이 될 수는 없다. "내 부인이..."라는 표현은 자신이 남의 아내를 데리고 살고 있다는 것인지, 자신의 아내를 곧 남에게 줄 계획이라는 얘기인지 헷갈린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아내를 지칭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은 과거에는 내자, 집사람 등이었지만 요즘은 그냥 '아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당한 것 같다. 우리 사무실에서도 젊은 친구가 '내 부인이, 내 부인이..." 계속 얘기하기에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다가 나중에는 도저히 듣고 있기가 괴로워서 단 둘이 있을 때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이 친구가 "내 아내가..." 이렇게 표현을 바꾸어주었다.

어제 저녁에 바람이 많이 분 모양이다. 출근길에 보니 길거리의 가로수도 꽤 쓰러져 있었다. 전철이 다니지 않아 여전히 사무실에 출근하지 못한 직원들도 있다. 일손도 안 잡히고 그냥, 괜히 생각이 나서 잡글을 하나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