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일 관련해서 좀 방문이 늦어졌다. 별로 더 서론으로 늘어놓을 말도 없는데... 뭐 그냥 진행하자. ^^

전두환 정권: 이사람이 이승만 박정희 등 전임자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종신집권여부에 달려있다. 그는 처음부터 종신집권에 대한 욕심은 그다지 없었던 것 같고 (아주 없었기야 했겠냐만은)  집권 후반기 이르러 국민들의 전면적인 저항에 부딪힌 이후 이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서부터 2인자라는 개념이 전과는 다소 양상이 달라진다.  집권자가 종신집권을 생각하고 있을 경우 그 수하들은 2인자이건 뭐건 그냥 죽을 때까지 오야붕의 그림자 역할이나 하면서 숨 죽이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예 편을 가르고 나와서 죽기살기로 맞서든지…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무리 대단한 권력자라도 법에 정해진 임기만 지나면 그냥 물러나는 것으로 시스템이 전환되었다. 이제 2인자로서 잘 버티고만 있으면 1인자가 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5공의 경우 이런 체제에서 가장 이득을 본 건 노태우, 손해를 본 건 장세동이었다.

장세동:  안기부장도 지내는 등 나름대로 경력은 화려하지만 현재 일반인들에게 그는 그저 깡패 세계에서 오야붕 전두환을 충실하게 지키는 똘마니의 위상 정도에 머물러 있다. 내가 보기에도 그는 5공 세계에서 2인자라고 하기에는 비중이 좀 작은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전두환의 정권이양에 의해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가장 손해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종신집권이 성공했다면 그의 위상은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 뭐 너무 세력이 커지거나 국민들의 원성을 해소시키기 위한 희생양으로 제거당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건 전두환의 정치 스타일 같지는 않다.
한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그가 호남 출신이라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신기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수없이 많은 그의 출신배경 가운데 호남 출신이라는 것 하나가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각인된 기본적 요소라고 생각되지도 않거니와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자신의 출신 성분을 배신한 인물이 어디 하나둘인가? 더구나 강준만은 어디선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 장세동이 호남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광주주민들을 학살한 전두환을 충심으로 섬긴 이유는 이러하다. 그는 호남 출신이라서 어디에서도 자신을 받아주는 조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두환은 그의 출신에도 불구하고 그를 자신의 심복으로 대우해 주었다. 그는 감격해서 전두환에게 죽을 때까지의 충성을 맹세했을 것이다. 내가 그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는 강준만의 글을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지만 솔직히 이 부분에선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세상사를 단순화하는 것도 어느 정도가 있지… -_-

노태우: 알다시피 전두환과 노태우는 육사 11기 동기이며 이 해는 해방 이후 사관학교에서 첫 졸업생들을 배출한 시기였다. 따라서 11기생들은 사실상 자신들이 군인들 가운데 제 1기라는 자부심이 강했다고 하며 아마 이것이 사조직을 구성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 육사 성적 및 초기 진급에서는 김복동이 선두주자였지만 정치적으로 줄을 잡고 출세하는 문제를 놓고서는 전두환과 김복동이 경쟁관계였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동기생들끼리 죽기살기로 싸우는 원수지간이었을 리는 없고 겉으로는 나름 친하게 지냈다 하더라도 암중으로 경쟁 역시 치열했을 것임은 명백하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여기서 노태우의 태도이다. 그는 김복동과 처남매부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김복동과 거리를 두었으며 일편단심 전두환의 꼬붕 노릇을 자처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노태우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둘 사이의 경쟁에서 전두환의 승리가 확실하다는 것이 그만큼 누구의 눈에나 빤히 들여다 보였다는 것이 더 타당한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12.12 사태 및 5.17을 통하여 전두환은 정권장악에 성공, 대권을 잡게 되었다. 그 이후 동기생들 가운데서 누구에게나 2인자로 눈에 띄게 된 것은 당연히 노태우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권력을 탐하는 이들은 1인자에게 다른 세력자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아 신뢰를 깎으면서 그곳에 자신의 생존공간을 확보하려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5공 정권에서 노태우에 대한 견제는 점차 심하게 드러났다.
노태우의 경우 전두환 정권에서 2인자로서 주위의 견제를 받던 상황은 박정권하에서 김종필의 모습과 어느 정도 유사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여기서 다른 점은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대하던 태도는 박정희가 김종필에게 대한 것보다 훨씬 더 온정적이었다는 점이고 (이건 박정희와 전두환의 개인적 성격차이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누구를 대하는 태도에서건 싸늘한 냉기가 흐르던 박정희와는 달리 전두환은 적어도 그 눈앞에 있는 상대에 대해서는 호인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또 한가지는 나중에 드러났지만 지도자로서 노태우의 능력은 김종필에 비해 까마득히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아래 노태우 정권 때 다시 이야기하겠다)
결국 6.29선언 당시 겉으로는 노태우가 국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목숨을 걸고 전두환에게 민심을 알리면서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도록 건의했으며 전두환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포장되었으나 실제로 직선제 수용은 전두환의 단독 결정이었으며 노태우는 이 말을 듣고 “나를 죽일 작정이냐”며 강력히 반발했다는 게 훨씬 더 사실에 가깝다는 것은 이제 다 드러난 일이다.

노태우 정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대체로 누구에게건 장점만 봐주는 편이긴 한데 이 사람에 대해선 그게 좀 힘들다. 굳이 찾아내자면 이 정권 때 민주화가 많이 진행되었다는 점인데 여기에 그의 개인적 역할은 거의 없었던 것 같고 스스로에 대한 풍자를 공식적으로 허락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 하지만 그다지 대단한 업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더구나 3당합당 직후부터 노동운동에 대해 상당히 거친 탄압이 시작된 걸 보면 힘이 있는데도 참는 인물 같지도 않다. 북방정책은 러시아에게 30억 달러 빌려줬다가 떼어먹힌 게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지 모르겠고... 

박철언:  노태우 아내의 사촌동생이던가… 아무튼 친척뻘 되는 인물로 6공 초반 제법 활약을 했다. 서울 법대 출신이니 (수석졸업이라는 설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공부는 좀 했겠지. 생김새도 꽤 샤프해 보여서 그런지 이 친구 지적능력에 대해선 좀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가 활동할 당시에는 훨씬 더했다. 마치 천하에 다시 없는 제갈량급의 책사라는 식으로 떠받드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지금 뭐하나? 세상이 다 알듯 김영삼에게 힘 한번 못쓰고 쫓겨난 후 그에게 정치보복 당할만큼 당하고 나서 그 후 자민련 빽으로 국회의원 한두번 해본 후에 재보복도 제대로 못해보고 걸로 정치생명은 그냥 끝났지? (인터넷 찾아보니 현재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군… ㅋㅋㅋ)
난 이사람을 생각하면 현 정권의 정두언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뭐 특별히 실제적인 공통점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집권세력의 책사’라는 딱지가 한번 붙으면 실제보다 엄청나게 과대평가되는 점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전에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아느냐며 정두언이 눈물콧물 다 흘릴 때 (무슨 일 때문에 그랬더라? -_-a) 나는 대략 짐작했던 그의 수준을 확인했다는 정도지 특별히 한심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전에도 한번 말했던 것 같은데 현실 세상에 제갈량은 없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속여 넘기기는 무지하게 힘든 것이다. 더구나 약자가 계략을 써서 강자에게 승리하는 일 따위는 현실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강자가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수단이 훨씬 많기 때문에 소위 계략이라는 것도 대부분 그쪽에서 나온다. (약자는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쓸 수 있는 계략이 없어서 못 내는 것이다) 그런데 밖에서는 강자 밑에 있는 책사들이 무궁무진한 계략을 끌어내는 것을 보고 ‘와… 저런 수단을 쓰다니 정말 머리가 좋다.’고 감탄을 한다. 그리고 저런 친구가 야당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하는데… 물론 아무 것도 못한다는 게 정답이다.
그래서 다른 일도 그렇지만 정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자신이 어떤 일까지는 추진할 수 있고 어떤 일은 무모한 짓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철언의 경우 공부는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나 (그것도 정말 잘했다면 학계로 갔겠지 ^^) 정치인으로서는 자격미달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정치생활을 좀 하다보면 주위에 떠받들어주는 사람에게 둘러싸이기 때문에 자신의 실력에 대해 오판하기가 쉽긴 하다. 이전 시닉스님의 “정치인들은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해 일반대중보다도 판단을 못한다”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유명한 3당 합당이 일어났을 때 그 엄청난 배신행위에도 불구하고 진보세력들에게 김영삼은 한동안 증오보다 한심함과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영남에서건 호남에서건 당시 많은 사람들의 일반적 생각은 “저 돌대가리 김영삼이 얼마 안 있어 단물만 빼앗기고 배신당해 쫓겨날 것이다” 였다. 사실 이 판단은 근거가 없는 게 아니었다. 우선 합쳐진 당에서 김영삼의 민주계파 의원들은 민정계의 절반도 되지 않았으며 기초부터 전혀 이질적인 민정계 및 김종필계가 그를 지지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합당 당시 막후 비화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설령 그들 사이에 “다음번 대통령은 당신 김영삼이다”라고 찰떡같이 맹세를 했다 한들 정치인의 구두약속에 무슨 놈의 구속력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 후 사태는 좀 묘하게 돌아갔다. 박철언을 쉽게 몰아낸 것은 그가 워낙 인덕이 없어 민정계 내에서도 고운 눈으로 보는 이가 없었으니 그랬다 치더라도… 3인이 모여 다음번엔 내각제로 하겠다는 문서가 공개되었는데도 이게 그냥 휴지조각처럼 무시되고 말았다. 분명히 막후 약속이 깨지긴 했는데 그 주역은 민정계가 아니라 김영삼이었던 것이다. 결정적인 건 대선후보를 정하는 전당대회 때… “민정계에서 단일후보가 나오면 나는 경선 포기하고 탈당하겠다.” 도대체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인가? 더욱 어이가 없는 건 노태우가 그 모든 억지를 다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그가 김영삼을 그 정도로 총애했던 게 아닌 건 분명하다. 분명히 사태는 협박에 넘어가 굴복을 하는 형상인데 나는 아직도 그가 무엇을 무기로 삼아 노태우를 이렇게까지 협박했는지 그것을 알 수가 없다. 도대체 노태우에게 최악의 사태는 무엇이었을까? 만약 정말로 그가 김영삼이 탈당하여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사태를 그렇게까지 두려워했던 거라면 그는 정말 인간쓰레기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당연히 김영삼이 대권을 쥐고 나서 전임대통령들을 비롯한 민정계 수뇌부는 대부분 감옥에 들어갔다. 뭐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김대중이 집권했어도 그렇게 했을까?) 하여간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인물이라면 그런 식의 굴복은 정말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당시 김영삼의 땡깡은 정말로 목불인견이었고 그 상황에서 그대로 끌려가기만 했던 노태우의 모습은 5.16 쿠데타 때 수녀원에 도피해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던 장면총리에 버금가는 꼴불견이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전에 담벼락에서 누군가가 호남인들이 가장 바라는 정치판의 형태가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늘 그렇듯이 욕설만 오가고 대답은 없었지만 ^^ 내가 대신해서 대답해 보겠다. (물론 나는 애초에 밝혔듯이 닝구보다 노빠에 가까운 사람이니까 자격은 없다만)  TK와 PK가 완전히 당으로서 분리되는 것이다. 이들이 경쟁하고 서로 필요하면 협력도 하고… 그러면 호남, TK, PK 가 어느 쪽도 특별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천하삼분계… ^^ 반드시 공상만은 아니다. 4당 체제에서는 거의 이런 상황이었으니까… 문제는 3당 합당 덕분에 이 구도는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합당 자체는 한번쯤 해볼 수 있는 실험이라고도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김영삼의 집권 덕택에 PK가 완전히 집권층에 융화되어 버려 그 후 어떤 노력으로도 TK와의 분리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김영삼의 집권은 그 자신에게는 “소수파로서 다수를 이긴” 놀라운 성공이었지만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모습으로는 애초에 많은 사람의 예상대로 그가 민자당에서 쫓겨나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리고 국무총리들…: 초대 총리인 이현재는 청렴이라는 점 하나만 보면 아마도 아마 역대 총리 가운데 최고 점수를 받을 인물 중 하나일 것이다. 그의 낡은 집은 중산층 서민 수준도 될까말까 할 정도라서 상당한 뉴스가 됐을 정도였지. 사람은 좋아 보였는데 서울대 총장으로 있을 때 문교부 장관 권이혁 앞에서 부하직원처럼 부동자세로 서 있었던 일 때문에 자존심 없다고 욕을 먹기도 했다. (권이혁이 전임 서울대 총장이었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

강영훈. 평안도 출신인데 공산주의에 반대하여 월남했고 한동안 군인으로서 활동하다가 정치계에 입문했고… 한마디로 정통 보수세력을 대표한다고 보면 된다. 남북 회담에서 북한측 총리와 몇차례 맞상대를 한 게 눈에 띄는 활동이었는데… 내 생각은 소위 보수세력이라는 자들이 이 정도 수준만 된다면 오죽 좋겠는가 하는 것이다. 심심하면 가스통이나 휘두르는 할아버지들 말고… -_-

노재봉.  6공의 특이한 점 하나는 교수 출신으로 입각한 이들이 유달리 많았다는 것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는 서울대 교수 출신 가운데 이홍구 김학준과 더불어 가장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는데 김학준은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었고 사실 이홍구보다도 권력에 더 가까이 간 사람은 노재봉이었을 것이다. 인맥도 넓은 편이었는데다 학자 이미지에 나름의 강단도 보여 만만치 않은 인상을 구축했다.  문제는 그 강단을 보이느라 한 말이 “광주사태는 김대중이 노련한 정치기술로 유도한 것”이라… -_-; 진짜로 그렇게 믿는 것인지 분위기에 휩쓸려 오버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되 그 후로 호남 및 진보세력에게는 거의 공적 취급… 심지어 친일경찰 노덕술의 아들이라는 유언비어까지 퍼졌다.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타블로의 예에서도 알다시피 의혹이란 게 일단 생기면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는 법. “자신 있으면 노덕술의 아들이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라”는 말이 안 나온 게 다행이랄까?

정원식… 강의하고 나오다가 밀가루랑 계란 뒤집어썼다는 것 이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 뭐 그때 학생들이 잘못하긴 했지. ㅋ

아직 많이 남았는데... 다음엔 몰아서 할까? 아무튼 좀 있다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