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문님이 참 나를 찾는다는 발제를 하였는데 참 나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불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흔히들 선사들의 이야기중 마음을 물어보면 마음이 어디 있느냐 마음을 보여다오

나를 말 하면 어느것이 나인가? 이런 선문답 이야기는 흔합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나라는 존재 자체가 허상이고 허상을 실체로 알고 있는데서 오는 분별심 때문으로 보고 있지요

이 분별심은 오온으로 나타나고 

결국 불교가 지향하는 깨달음은 나라는 존재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데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추구하는 최종 목적지는 니르바나이고 이것을 적멸이라고 합니다.


물론 불교에도 여러측면이 있어 하와중생 보리상구를 말하기도 하는데 좌우간 수행의 최종 목표는 열반에 드는 것입니다.

흔히들 성불하십시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결국 부처가 되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실재하지 않으며 지금 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존재는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뭐 새상의 어느 종교 어느 철학 어느 이론이나 꼬리를 물고 질문하면 모순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완벽한 대답은 있을 수 없으며 모순이 있습니다.

기독교나 불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참 나란 무엇인가?

기독교에서 참 나는 자신의 죄와 무능력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얼마나 부족하고 부조리하고 무능한지를 알고 그 초라한 모습이 바로 참 자기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초라하고 무능력한 존재가 하나님의 은총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고 창조때의 영광스러움을 회복하는 것이 참 자기라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두 종교의 참 자아라는 개념만 보아도 얼마나 다른 것인가를 알 수 있는데 레드문님은 이게 두개가 같거나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니 참 어렵습니다.


두 종교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죄와 고입니다.


기독교는 죄의 문제에서 부터 출발합니다.

불교는 고의 문제입니다

예수와 석가모니가 출발한 문제의 근원이 바로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고 부처는 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출가하여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다른가요?

죄와 고

기독교에서는 죄로 인하여 고가 시작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인간 존재 자체가 고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에서 고가 나오는 것은 인간이 허상을 실체로 알고 살기 때문이라고 보지요

고를 행하고 고를 인식하는 인간 존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하기에 고인 것입니다.


좌우간 죄는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혼자는 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관계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과 관계 인간과 관계 이 부분에서 죄가 성립이 되고 구원 역시 이 부분이 잘 되어야 가능합니다.

그런점에서 한국 교회가 사회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무례하고 독선적인 것은 신앙의 수준이 유치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