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목, 영호남 차별의 '예술'

지난 7월 31일 조선일보 인터넷에 [익산 모자에게 무슨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자신의 어머니를 때려죽인 21세 청년이 알고 봤더니 어머니를 살해하기 전에 성폭행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어머니의 시신에서 청년의 정액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사실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 기사에는 무려 185개의 100자평이 달렸다. 조선일보 관리자가 알아서 지운 ‘베스트’를 제외하고 남아있는 100자평 가운데 가장 많은 32개의 찬성을 받은 것은 [유영철이는 어디였더라. 근처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군.]이었다.

나머지 100자평도 잠깐 소개해보자.

[또야??? 이번엔 친모를 강간살해한 민주투사야?]

[그 에미에 그 자식이구나 에라이 몹쓸 동네의 몹쓸 인간들아 제발 이러한 중생들이나 구제하는 일에 신경써라 부질없는 좌파놀음에 끼어들지 말고 ...되나 안되나 한나라당과 정부에 반기만 드는 몹쓸 사람들아]

[좌우간 이 지역 종자들은 정상인으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패륜아들만 사는 곳인가?]

[윗물이 더러운데 ..국운이 끝났다는 얘기.. 남탓만 하는 정치.오로지 편갈라서 보는 국민. 민주화 이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고 정채성도 헤매는 요즘 알몸으로 뉴스하고. 원나잇하는 세상 책임감 없는.지난 10여년의 결말..휴전일도 모르고...대중이 이래 이꼴이다...]

[사건이 터진 곳이 어디라고요???]
[전라북도 익산 기억하세요!]
[어디긴 어디여 거시기지 ㅋ]

[자기 딸에게 햇볕을 안주는 인권 노벨상의 DJ 영향을 받아서인지,그 동네엔 이 정도는 뉴스가 아닐 지만... 가파 동물의 왕국도 아니고 참으로 개탄스럽다. 명히 사회적 타살이 아닌가? 일간 국장을 성대히 치뤄서 억울한 원혼을 달랬으면 합니다.]

[치졸하고 엽기적인 범죄는 다 전라도에서 일어나지 왜일까??]

[얼마 전 기사엔,,, 절라도 광주에서 고위 공무원인 시아버지가 며느리 강제 성추행으로 고소고발 당햇다는 기사가 났더만..... 절라도 익산에서....어휴~ 끔찍도 하다........하여간 잡스런 동네는 동네야~~~ 주막집 잡부의 사생아가 교주로 모셔지는 곳이니~~~ 하기야~~~~~~~~~~]


이 기사보다 보름쯤 전인 7월 16일에는 [정읍서 이장이 임신 공무원 폭행]이라는 기사가 조선일보 인터넷에 올라왔다. 기사 내용은 제목 그대로였다. 이 기사에는 10개의 100자평이 올라왔다. 몇 개 소개한다.


[우띠 그짝 동리는 아래위도 없고 남여노소도 없고 예의도 없고 꽁짜던 억수로 밝히고(거시기) 시방 국회에서도 하는 거 보시요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네요]

[참으로 몰상식하고 무지막지한 놈이네. "정읍(호남)"이란 글자에서 나도 모르게 눈길이 머무는 이유는 뭘까?]

[세브란스 병원에서 거친 숨을 쉬면서 이 시간 저승길 차를 기다리며 반성하고 참회하려는 김대중이보다는 그래도 덜 나뿐 사람이고 그 동네 이장님 이시네그려,]

이상 예를 든 2개의 기사 제목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지명’을 제목에 굳이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익산과 정읍은 모두 전북 지방의 지명이다. 전남이나 전북, 광주 등 호남 지방의 지명은 특히 조선일보 독자들의 예민한 후각을 자극하는 ‘냄시(냄새의 전라도 사투리)’라도 갖고 있는 모양이다. 마치 식인상어가 멀리 떨어진 곳의 피 한 방울에도 미친 야성이 발휘되는 모양이 연상된다. 위의 조선일보 100자평은 조선일보 독자들이 스스로 그러한 야수성을 적나라하게 고백한 증거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이런 패륜 사건 기사의 제목에 항상 지명을 포함시키는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사례들을 좀더 살펴보자.

장애여동생 성매매 언니 실형

정신지체를 지닌 여성의 친언니가 동생에게 강제로 성매매를 시켜 돈을 챙겼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위의 사건들과 비슷한 시기인 7월 14일 경남 울산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제목에는 지명이 보이지 않는다. 기사를 읽어봐야 어디에서 일어난 일인지 알 수 있다. 이 기사에는 18개의 100자평이 달렸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울산 지역이나 울산이 위치한 영남 지방이나 영남 사람, 영남의 정치 지도자를 욕하는 내용은 없었다.

아버지 폭행 돈뜯은 철없는 10대 강도

이것은 지난 7월 16일 10대 청소년이 유흥비 마련을 위해 친구들과 함께 아버지를 폭행했고 금품을 뺏었다는 내용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지역도 울산이다. 하지만 역시 기사 제목에 ‘지역’은 없다. 이 사건에는 3개의 100자평이 달렸다. 물론 지역을 언급한 100자평은 없었다.

이 정도 사건은 워낙 죄질이 양호(?)하고 경미해서 굳이 지역을 포함할 이유가 없었던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궁금증을 풀려면 아무래도 기사를 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

40대男, 의붓딸 2명 살해 후 자살기도

지난 40대 남성이 의붓딸 2명을 살해한 후 자신도 자살을 기도했다는 내용의 7월 13일자 기사이다. 이 사건은 경남 밀양에서 일어났다. 역시 기사 제목에 ‘지역’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기사의 경우 조선일보가 영남 지방에서 발생한 흉악 범죄 기사의 제목에서 의도적으로 지명을 뺐다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조선일보는 아예 이 사건을 보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조선일보 홈페이지나 기타 포털의 기사에서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

저 기사를 뺀 대신 조선일보는 하루 뒤인 7월 14일자로 다른 사건을 보도했다.

광주 연쇄살인피의자 현장검증 `태연자약'

하루 전 흉악범죄의 보도를 거른 것이 미안해서일까, 이번에는 흉악범이 현장검증을 태연하게 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런데 이 기사의 제목에는 ‘광주’라는 지명이 친절하게 들어가 있다. 어떤 사건은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건은 굳이 지명을 친절하게 제목에서부터 ‘홍보’해준다. 무슨 차이일까? 사건 자체의 경중에 차이가 있는 걸까?

위의 의붓딸 살해 40대 남자 관련 기사는 사건 자체가 처음 알려지는 내용이다. 반면 광주 현장검증 기사는 이미 사건 자체는 알려진 상태에서 현장검증을 했다는 내용이다. 일반적인 보도 관행이라면 당연히 전자를 더 크게 다루는 것이 맞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전자는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고, 후자는 제목에 지명을 친절하게 포함시켜 보도한다.

현장검증 관련 기사가 보여주는 팩트는 딱 하나다. 연쇄살인을 저지른 놈이 현장검증을 ‘태연자약’하게 하더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흉악 범죄를 저지른 놈이 태도조차 끔찍하다는 얘기이다. 그러한 내용은 기사 제목 제일 앞부분에 자리잡은 ‘광주’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조선일보는 왜 이리도 ‘호남’과 ‘흉악범죄’를 연결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다른 기사를 하나 더 보자.

해외출장 친구 아내 성폭행

50대 남성이 해외 장기 출장을 떠난 고향 친구의 부인을 성폭행했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이 기사 역시 제목에 ‘지명’이 없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나무라지는 말자. 조선일보는 이 사건 역시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홈페이지에도 포털에도 이 기사를 보도한 흔적이 없다. 쿠키뉴스, 노컷뉴스 등이 외롭게 이 사건을 ‘제목에서 지명을 뺀 상태’로 보도했을 뿐이다.

조선일보가 영남 지방에서 벌어진 흉악 사건의 보도기사 제목에서 항상 지명을 빼는 것은 아니다. 지명을 넣는 경우도 있다. 아래가 그 경우에 해당한다.

대구경찰, 주택침입 성폭행 40대 회사원 영장

40대 회사원이 새벽에 여성 혼자 있는 집에 침입, 성폭행하고 금품을 훔쳤다는 내용이다. 이건 대구에서 벌어진 사건이고, 조선일보도 제목에 ‘대구경찰’을 넣었다. 그런데, 저 제목은 실은 연합뉴스의 제목이다. 조선일보는 연합뉴스가 뽑은 제목을 그냥 사용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저 기사가 처음 조선일보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떴을 때의 제목은 저것과 달랐다. 어떤 제목이었을까?

처자 있는 평범한 회사원, 독신녀 집 침입 성폭행

기가 막히게도 ‘지명’은 빠졌다. 나는 이 제목을 적어놓으면서도 화면 캡처하는 것을 빠트렸다. 하지만 분명 저 제목이었다는 것은 내 모든 것을 걸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조선일보가 시비를 걸어온다면 얼마든지 법적 책임을 질 자신이 있다.

너무 흉악 사건만 다룬 것 같다. 이른바 ‘미담’ 기사들은 어떨까? 원래 신문 사회면 기사라는 게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이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미담 기사의 제목에서도 ‘호남 지명 올리기’라는 원칙이 일관되게 적용된다면 우리는 조선일보의 선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시민 휴식처를 위해"…80억대 토지 기부

부산에서 최근 숨진 할머니가 80억대 서울 땅을 강서구에 기증했다는 미담 기사이다. 그런데 분명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인데도 제목에 부산이라는 지명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일보, 괜히 조선일보가 아니다. 이 기사 역시 조선일보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떴던 제목은 달랐다. 이것 역시 적어놨다(역시 캡처는 안했다).

숨진 부산 토박이 할머니, 80억대 서울땅 기부

그럼 그렇지. 뭐, 그래도 좋은 일인데, 미담인데, 그런 일을 한 분의 거주 지역을 표기하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이런 원칙이 일관되게 다른 지역 특히 호남에도 적용되면 된다. 그런 점에서 다른 기사도 한번 살펴보자.

KAIST에 300억원 기부한 김병호 회장

17세에 전북 부안서 76원 들고 상경한 김병호 씨가 평생 모은 돈 300억원을 KAIST에 기부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기사 제목에는 전북도, 부안도 없다.

조선일보 편집자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이른바 역지사지를 해볼 필요도 있다.

위의 부산 토박이 할머니 기사에서는 사실 ‘부산에서 평생 살아온 분’이 자신의 고향이 아닌 서울에 사놓았던 땅을 서울에 기증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그래서 제목에 ‘부산 토박이’와 ‘서울 땅’을 강조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을 것이라고 이해해본다. 하지만, 다음 기사는 어떤가?

사고車 돕다 숨진 女 2명 의사자 지정 추진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난 차량을 위해 차를 멈추고 도로에 내려 사고 수습을 돕다가 본인들조차 사고를 당해 숨진 젊은 여성 두 사람을 의사자(義死者)로 지정하려고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의 주어는 ‘김제시’이다. 그런데 제목에서는 주어가 빠져 있다.

신문 편집과 제목 뽑기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문외한이 외부에서 보는 현상만 놓고, 왈가왈부 시비를 걸기는 어려운 점도 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가 저런 제목을 뽑은 데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호남에서 벌어진 흉악범죄 기사의 제목에는 굳이 지명을 넣고, 영남에서 벌어진 비슷한 사건의 기사 제목에서는 어떻게든 지명을 빼는 조선일보의 다른 행태와 연결해보면 조선일보의 저런 제목 뽑기를 선의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우연이 되풀이되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봐야 한다. 왜 조선일보 기사 제목에서 호남은 ‘악의 화신’으로, 영남은 ‘미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우연’이 이리도 잦은 것일까?

조선일보의 저런 편집이 의도적인 것이라면 이것은 엄청난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대표신문이라고 자부하는 매체가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특정 지역에 대한 범국가적인 혐오감을 부추긴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범죄 행위가 성공해서 얻는 이익이 얼마나 될까? 몇백억? 몇천억? 몇 조? 몇십조? 또는 돈으로 따지기 어려운, 대통령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드는 그 영향력?

어떤 이익을 얻는다 해도 조선일보의 범죄 행위가 끼치는 그 민족적 해악의 크기와 비교할 수는 없다. 하룻밤 계집질에 쓸 요량으로 집문서와 문전옥답을 모조리 사창가에 갖다 바치는 패륜아 난봉꾼의 행위도 이보다는 덜 추잡할 것이다.



http://teralux.egloos.com/



딱히 팬은 아닌데 연속해서 구오스 님의 글을 퍼오네요. 이건 저도 생각하던 부분이었는데
다른 분들도 이런 내용을 염두에 두고  확인해 보셔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밑에 달린 꼬리도 같이 가져왔네요.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09/08/13 11:54
<우연이 되풀이되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봐야>

이 부분을 소설 링에서는

[우연이 되풀이되면 그것은 누군가의 <의지>가 있는것이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 했던 적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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