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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랑 링크만 걸기 뭐하니까 아직까지는 마지막 댓글인 제글:


1. 진화론이 과학 내부에서 얼마나 반론에 직면해 있든지 간에 진화론은 아직도 쿤적인 의미에서 정상과학입니다. 

2. 진화론은 생명의 탄생에 대한 과학적 설명의 한 사례가 아니지만 생명의 탄생을 과학적 설명의 시도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하는 타당한 이유는 없습니다. 

3. 생명의 탄생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4. 창조론은 생명의 탄생에 대한 과학적 설명도 아니고 과학적 가설도 아닙니다. 즉 창조론은 과학적이지 않고 따라서 과학자가 과학자로서 관심가질 만한 론이 아닙니다.

5. 과학은 존재론적 자연주의가 아니라 방법론적 자연주의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개개 과학자는 원칙상 과학적 설명이 시도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끝까지 과학적 설명을 시도하려드는 존재입니다. 생명이 탄생할 확률이 아무리 극소하더라도 그 극소함은 과학적 설명이 시도될 수 있는 대상에서 생명의 탄생을 제외시킬 수 있게 해주지 않습니다. 

6. 과학자는 동시에 창조론자, 즉 일종의 관념론자 일 수 있습니다.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고 과학은 존재론적 자연주의를 함축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자인 창조론자는 형용모순이 아닙니다. 

7. 창조론이 신화라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라면 신화이고 신화를 헛소리의 일종으로 정의한다면 신화가 아닙니다. 

8. 창조론은 과학적 설명은 아니지만 논증의 한 사례입니다. 철학, 특히 서양철학은 플라톤 이래, 더 특히는 중세 이래 신의 존재증명이라는 타이틀 아래 창조론을 논증해왔습니다.

9. 창조론의 기본개념에는 그것을 철학적 논증의 대상이 될 수 없게 만드는 어떤 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창조주로서의 신이 필연적으로 기독교의 신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다 하더라도 그 주장은 논쟁적입니다. 

10. 철학적 논증은 합리적 활동의 한 유형입니다. 과학의 입장에 서있다고 자처하면서 창조론을 헛소리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과학, 합리성, 철학적 논증 셋 모두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가진 이들, 본질적으로 지성 수준이 창조과학 운운하는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이들입니다. 

11. 창조론을 한 요소로 하는 종교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쇠퇴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은 과학이 자꾸 자꾸 더 파헤쳐 보이는 자연의 광대무변함과 복잡정교함이 오히려 창조론을 이전보다 더 그럴듯한 것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서구세계에는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고 현대과학에 대해 전문적 식견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창조론을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는 석학급 철학자들 적잖게 있습니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철학자들은 설사 철저한 유물론자라 하더라도 창조론을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12. 창조론에 그럴듯함의 무게를 더해주는 것은 무기물질에서 생명이 탄생할 확률의 극소함이 아니라 왜 무가 아니라 존재인가, 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대신 인간을 포함한 이 세계/이 우주/이 자연이 존재하는가라는,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물음입니다. 존재의 경이와 신비를 느끼는 만큼 신의 존재에 대한 요청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 늘어날 수 있음은 논리적 함축이 아닙니다. 유물론은 존재의 경이와 신비를 느낄 수 없는 이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다만 존재 자체가 이미 경이롭고 신비하다면 그 존재에 신 의 존재를 그 존재의 원인으로 끼워 넣는 것은 비약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럴듯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물질적이지 않은 물질적인 것의 의지적 원인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물질적인 것만 (우연하게) 존재한다는 주장보다 오컴의 면도날 원칙에 """덜""" 부합하는 주장이, """쓸데 없이 더""" 심오한 주장이 아닙니다. 양자는 동일한 추상수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