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자선 활동을 하는 이유는 남을 돕기 위해서인가 마케팅 전략인가? 아래와 같은 기사를 보면 후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제공 | KT”라는 구절이 눈에 띈다.

 

KT는 자사의 IPTV서비스인올레tv’에 가입 고객 500만명 돌파를 기념하고 고객들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IPTV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사교육비 절감에 기여하는 사회공헌 캠페인을 진행한다. 사진은 (좌측부터) 서울 서부교육지원청 강영숙 과장, 지역아동센터 중앙지원단 박영숙 단장, KT T&C부문 All-IP 추진담당 고윤전 상무, 명지대 토요행복학교 김태균 교수가 교사와 학생이 함께하는 교육프로그램인올레tv 스쿨이용권 5000매를 전달하는 모습. 제공 | KT

[사진] KT, 올레TV 고객 500만 돌파 기념 사회공헌 캠페인

http://news.sportsseoul.com/read/economy/1304293.htm

 

착한 일을 하는 것 자체는 좋다. 하지만 착한 일을 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뿌리거나 TV 광고나 신문 광고에 실으면 선행의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하게 된다. “그 기업의 사장이 정말 착해서 착한 일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선 활동을 해서 광고에 이용하는 것이 이윤 획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이런 생각이 들 때 아래와 같은 성경 구절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두어라.

(마태오의 복음서 6:3~4, 공동번역개정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마태복음 6:3~4, 개역개정판)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착한 일을 하라는 말 같다.

 

 

 

하지만 이 구절이 포함된 문단 전체를 보면 전혀 그런 말이 아니다.

 

"너희는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마태오의 복음서 6:1~4, 공동번역개정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1~4, 개역개정판)

 

예수는 대가를 위해 착한 일을 하라고 설교한다. 못 되게 살면 지옥 불 속에서 고생하고 착하게 살면 천당에서 호강한다는 얘기다.

 

자선을 마케팅 전략으로 생각하는 사장과 남몰래 하는 자선이 천국행 티켓이라고 설교하는 예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사장은 이승에서 대가를 받으려고 하고 예수는 저승에서 대가를 받으라고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만약 예수가 “남몰래 착하게 살아도 심지어 저승에서도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한다. 그래도 착하게 살아라”라고 설교했다면 더 멋있지 않았을까?

 

만약 예수가 “남몰래 착하게 살면 지옥 가고, 생색 내면서 착한 일 하면 천당 간다. 그래도 남몰래 착하게 살아라”라고 말했다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자선은 천국행 티켓”이라고 떠드는 것처럼 싼티가 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이 구절을 보고 진화 생물학계의 이타성 논쟁이 떠올랐다. 생물은 정말 이타적인가? 만약 개체의 수준에서 본다면 정말로 이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가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식에게 베푸는 경우가 많다.

 

(철중, 비닐봉투 안에서 손톱 쪼가리 하나를 끄집어낸다. 철중이 꺼낸 손톱을 보곤 낯빛이 굳는 규환.)

조규환(이성재): , 뭐야?

철중(설경구): (씩 쪼개며) 매직이다, 이 씹새야. 아줌마 이름이 뭐래드라. 김영순? 자식새끼가 실수로 떨어뜨린 이걸, 그 아줌마가 죽기 전에 먹은 거거든. 왜 그랬다고 생각하냐?

조규환: .....

철중: 부모가 그런 거거든. 자식새끼가 자기를 제낀 씹새든, 자기를 찌른 개새든, 숨겨주고 싶은 거거든. 어떻게 생각하냐?

(영화 <공공의 적> 중에서)

 

조규환의 어머니는 죽어가면서 자신을 칼로 찌른 아들의 손톱을 삼켰다. 손톱이 증거로 남아 자식이 처벌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 개체를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개체 수준에서는 이타적인 행동이 유전자 수준에서는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설교를 들어보면, 이승만 따져보면 이타적으로 행동하라는 이야기지만 저승까지 포함해서 따져보면 이기적으로 행동하라는 이야기다.

 

 

 

남몰래 선행을 해도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정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뿌듯함이라는 보상을 위해 남몰래 선행을 하는 것도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한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천국행 티켓을 위해 남몰래 선행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덜 싼티가 난다.

 

 

 

예수는 사이코패스들만 모아놓고 설교를 했나? 왜 남몰래 선행을 하면 저승에서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해야만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