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는 정당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바로 그 정당이 비민주적이라면 민주주의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3김보스정치 청산 등을 내세우며 정당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정치세력이 도덕적 정당성과 이론적 정당성을 '대중적'으로 획득했습니다. 지금도 당비내는 당원, 혹은 일반 당원의 정당의사결정에의 참여를 정당의 성립의 결정적인 요건으로 생각하는 정치세력이 현존합니다. 민주주의체제 속에서 정치를 주도하는 정당이 비민주적라면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겠나라는 질문과 정당의사결정에의 참여가 정당 성립 요건에 있어서 결정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해보려면 정당 내부가 민주적일 수 있는가, 그리고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무슨 관련이 있는가에 대해 논의한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헬스는 '과두제의 철칙'을 내세운걸로 유명합니다. 어떤 집단이든 소수의 지배집단과 다수의 피지배집단으로 나뉘어지게 된다는 이 이론은 특히 정당 내부의 권력관계에 적용됩니다. 미헬스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당원이었고 바로 그 사회민주당을 집중 연구했다고 합니다. 사회민주당 안에서도 다른 집단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엘리트, 즉 과두가 당의 자원과 소통수단을 장악, 통제하는 현실을 들며, 사회 민주주의 정당도 그러하기 때문에, 보수우파정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판단내립니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정당이든간에 소수 엘리트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두고 미헬스는 "민주주의의 품안에서 과두정이 발전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미헬스의 주장에 대해 반기를 든 사람도 있기는 있었으나 그리 큰 영향력을 얻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미헬스 말대로 존재하는 유의미한 거의 모든 정당이 과두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반론의 현실적인 의미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개 그 비판점도 과두제가 '철칙'은 아닐거라는 식의 비판이었습니다.



미헬스의 생각대로, 정당 내부가 비민주적이고 과두적으로 운영될수밖에 없다면, 그렇다면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 체제는 슘페터 식의 '경쟁적 엘리트 민주주의'나 파레토식의 '엘리트 순환론'에 불과한 것인가에 대해 사르토리(이탈리아 정치학자)는 "그렇지 않다"라고 합니다.

그는 미헬스가 바라보던 관점을 넘어섰습니다. 사르토리도 정당 내부 권력구조가 '과두제'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미헬스의 주장을 받아들입니다. 다만 민주주의를 정당 내부의 질서에 제한해서 바라보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즉 여러 정당들 사이의 경쟁의 결과 민주주의가 창출되는 것이지, 정당 자체가 민주주의적이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정당 자체가 완벽한 내부 민주주의를 구현하지는 못하고 있더라도, 그 정당이 다른 정당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지지 기반으로부터의 요구를 수용해야 합니다. 흔히 경영학에서 사용되는 조직-공중의 관계성 이론을 정당-유권자에 적용한 <관계성 이론을 통해 본 한국의 정당 PR, 배미경 지음>에서 정당이라는 조직이 유권자라는 고객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상호통제성, 신뢰성, 만족성, 헌신성 등이 요구된다는 합니다. 즉 유권자와 정당의 상호관계는 조직으로서의 정당이 정치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요소라는 것입니다.
특히 계급정당과 같은 대중정당보다는 '포괄정당'(catch-all party, 계급균열이 약화됨에 따라 특정 계급이나 고정된 사회집단으로부터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일반 유권자의 지지를 통한 국가와 사회의 전체 시스템의 이익 관점에 따라 작동하는 정당, 따라서 계급에 기반한 당원의 역할이 약화되므로 정당은 당의 생존을 위해 선거승리를 중시하게 되고, 따라서 구체적 문제 해결능력이 중시되며 정당의 지도자와 같은 인물이 중시되는 정치가 행해지며 바로 그 정당 지도자와의 매스 미디어를 통한 유권자와의 접촉이 증가된다고 합니다)이나 '선거 전문가 정당'(포괄정당의 선거승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포괄정당을 '선거 전문가'가 주도하는 정당, 선거전문가란 사회의 구체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전문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의 형태를 띠는 현대 정당정치에서는 정당의 구성원, 당원들의 요구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일반 유권자의 지지를 반영하여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정당의 '과두'들도 자신들의 정당 내부에서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반 유권자의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에서 이기기 어려울 것이고, 선거에서 정당이 지면 정당 내부의 권력자들이 그 권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이처럼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큰 상관관계가 없는 현실과 더불어 대중정당에서 포괄정당으로 정당이 변해가는 현실 때문에, "당내 민주주의가 안되면 민주주의도 안된다. 따라서 당내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당내 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두는 정당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논리는 그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유럽은 현재 기존의 우파정당과 좌파정당의 구도에서 특히 좌파정당의 경우에 정당분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계급이익에 기반한 계급정당, 대중정당으로서의 사회민주당과 노동당 등의 정당들이 포괄정당화 되면서 정당과 계급간의 기존의 관계가 약해졌기 때문에, 계급 구성원으로서 정당에 참여함으로서 반영되던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광범위한 유권자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을 더 추구하는 포괄정당형태의 정당에 의해 잘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면서, 녹색당, 좌파당과 같은 새로운 정당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기존의 계급관계가 약화되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계급의 이해관계를 더 잘 반영하는 마이너리티 정당의 탄생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럽의 이러한 정당분화를, 계급이라는 기존의 사회균열이 균열로서의 기능이 약화됨에 따라 환경운동, 여성운동, 기타 사회적 이슈들(신정치 이슈)이 구정치적 분열양상-계급, 물질주의적 가치-과 큰 관련성을 느끼지 못하던 사회집단들(젊은층, 신중산층,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 비종교적인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기성 정당들이 이런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녹색당 등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시민정치론-선진 산업민주주의 국가의 여론과 정당, 러셀J. 달톤 지음). 그러나 어느 경우든간에 유럽의 정당분화는 계급정당에서 포괄정당으로 변해가는 과정 혹은 사회의 균열의 변화에 정당과 정치세력의 대응에 따른 결과이지, 당내 민주주의와 같은 정당 내부의 권력구조 결정방식과 같은 문제에 따른 정당분화가 아닙니다.

따라서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의 정도가 정당분화의 주된 요건이 된다는 것이 납득될 수 있으려면,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의 정도'가 '사회균열'로서 기능한다는 것이 논증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은 현재 없다고 보여집니다. 오히려 유럽의 자연스러운 정당형태의 변화(계급정당에서 포괄정당으로의)를 역행하는 것을 정당 선진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큰 형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