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어쩌다 보니 Matt Ridley이타적 유전자(The Origins of Virtue: Human Instincts and the Evolution of Cooperation)』와 제목이 같아졌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 책의 내용과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에서는 이기적 유전자가 어떻게 이타적이고 도덕적인 개체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주로 다룬다. 극소수의 정신병질자들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어느 정도 남을 돕고 양심적으로 사는데 그 이유를 진화론적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반면 이 글에서는 왜 사람들이 어떤 것을 덕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문제를 파고들려고 한다. 덕 윤리학(virtue ethics)에서 덕과 악덕(vice)을 따질 때 윤리학자마다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테마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윤리학을 특별히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그런 테마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공통적인 테마의 기원은 무엇인가? 진화 심리학 또는 진화 윤리학(진화 심리학 중 도덕적인 측면을 다루는 분야)이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까?

 

진화 심리학계 내부에도 이 문제와 관련하여 심각한 이견이 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내용 중 상당 부분에 대해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진화 심리학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나 대표적인 의견을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보기에 가장 가망성 있어 보이는 생각에 대해 쓸 것이다. 내 입장은 진화 윤리학계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선천론과 적응론에 가깝다.

 

 

 

 

 

다른 덕의 기원에도 이기적 유전자가 있다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이타적 행동의 근원에 이기적 유전자가 있다. 즉 이타적 행동의 진화를 개체군 유전학(population genetics)으로 설명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친족 선택 이론 또는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 이론이다. 그 이론에 따르면 해밀턴의 규칙( http://en.wikipedia.org/wiki/Kin_selection#Hamilton.27s_rule )에 따라 친족을 돕도록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gene pool) 내에서 퍼지게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덕의 기원에는 이기적 유전자가 있다.

 

나는 이 글에서 다루는 덕의 기원에도 이기적 유전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친족을 어느 정도 돕는 행위의 근원에 이기적 유전자가 있듯이 인간이 어떤 행위를 덕이라고 판단하는 생각의 근원에도 이기적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친족을 어느 정도 도왔던 인간(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조상)이 그렇지 않았던 인간에 비해 (직계 자손과 방계 자손을 모두 고려할 때) 더 잘 번식했듯이, 예컨대 용기나 정직을 덕이라고 판단했던 인간이 그렇지 않았던 인간보다 더 잘 번식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친족을 어느 정도 돕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듯이, 인간이 용기나 정직을 덕이라고 판단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을 것이다. 이것이 이 글에서 제시하는 가설이다.

 

 

 

 

 

덕의 맥락

 

사람들은 덕이 있는 사람을 칭찬하고 악덕이 있는 사람을 비난한다. 우정 시장에서 덕이 있는 사람이 더 높게 평가된다. 짝짓기 시장에서도 덕이 있는 사람이 더 높게 평가된다. 이 외에도 덕은 온갖 것들에 영향을 끼친다.

 

남자의 덕과 여자의 덕이 어느 정도 다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린이의 덕과 어른의 덕이 어느 정도 다를 수 있다.

 

덕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려면 이 모든 맥락들을 다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빈약한 가설을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이 글에서는 몇 가지만 다룰 것이다.

 

 

 

 

 

여자가 남편을 고를

 

여자가 어떤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는 것이 번식에 이로울까? 가능하다면 부실한 남자보다는 건강한 남자를, 못 생긴 남자보다는 잘 생긴 남자를, 멍청한 남자보다는 똑똑한 남자를, 키 작은 남자보다는 어느 정도 키가 큰 남자를, 늙은 남자보다는 젊은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도덕성과 관련된 것들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정직을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내집단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으로 정의해 보자. 정직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는 것이 유리할까? 아니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남자를 맞이하는 것이 유리할까? 정직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 번식에 이로울 것이다. 왜냐하면 부정직한 남자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아내를 속일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내의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둘째, 어느 정도 용감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 겁이 너무 많은 남자는 자기 혼자 살겠다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험에서 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너무 겁이 없는 남자는 무모한 짓을 하다가 죽거나 부상 당할 가능성이 높다. 양쪽 극단은 아내의 번식에 해를 끼친다.

 

셋째, 관대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 관대한 남편은 아내가 잘못을 해도 어느 정도는 용서해 줄 것이다. 그러면 아내에게 이득이다.

 

넷째, 정절을 지키는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 바람둥이의 아내가 되는 것보다 유리하다. 남편이 바람둥이라면 아내와 아내의 자식을 돌보는 일보다 다른 여자들을 꼬시는 일에 몰두할 가능성이 높다.

 

다섯째, 충성심(loyalty)이 강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보다 유리하다. 남자가 가족이나 아내를 배신하면 아내가 손해를 본다.

 

여섯째, 성실해서 열심히 일하는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 게으름만 피우는 남편은 아내와 자식을 열심히 돌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선택압(selection pressure) 때문에 정직하고, 어느 정도 용감하고, 관대하고, 바람기가 없고, 배신을 안 하고, 성실한 것이 덕이라고 생각하도록 그리고 덕이 있는 남자를 짝짓기 상대로서 더 높이 평가하도록 여자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는 것이 이 글에서 제시하는 핵심 가설이다. 이런 논리는 온갖 맥락에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다.

 

 

 

 

 

남자의 덕과 여자의

 

남자가 갖추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덕과 여자가 갖추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덕에는 공통점이 많이 있다. 남자가 정직한 여자를 높이 평가하듯이 여자도 정직한 남자를 높이 평가한다. 남편에게 거짓말하는 아내는 남편의 포괄 적합도에 해를 끼칠 것이며 아내에게 거짓말하는 남편은 아내의 포괄 적합도에 해를 끼칠 것이다. 따라서 남자도 여자도 상대의 정직성을 높이 평가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남자는 여자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이런 차이가 덕에 대한 평가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보통 용기의 경우 남자에게 더 중요한 덕으로 여겨지며 정절(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교하지 않는 것)은 여자에게 더 중요한 덕으로 여겨진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맹수 등의 위협이 있을 때 가족을 더 잘 구할 수 있는 쪽은 아내보다는 남편이다. 왜냐하면 보통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훨씬 세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자가 용기가 부족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는데 맹수를 만났을 때보다 여자가 용기가 부족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했는데 맹수를 만났을 때 더 큰 손해를 본다. 이런 선택압 때문에 남자가 여자의 용기를 중시하는 정도보다 여자가 남자의 용기를 중시하는 정도가 더 크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성교를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아내가 낳은 자식은 아내의 유전적 자식이다. 반면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교를 한다면 아내가 낳은 자식이 남편의 유전적 자식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즉 남편의 성적 바람(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사랑 바람이라면 다른 사람과 성교하는 것은 성적 바람이다)이 아내에게 끼치는 번식 손해에 비해 아내의 성적 바람이 남편에게 끼치는 번식 손해가 더 크다. 이런 선택압 때문에 여자가 남자의 정절을 중시하는 정도보다 남자가 여자의 정절을 중시하는 정도가 더 크도록 진화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다.

 

 

 

 

 

결혼 시장의 덕과 우정 시장의

 

정직이나 용기는 결혼 시장과 우정 시장에 거의 똑 같이 통하는 덕이다. 부정직한 사람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아내를 속일 수도 있지만 친구를 속일 수도 있다. 따라서 배우자를 고를 때에도 친구를 고를 때에도 정직이라는 덕을 갖춘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유리하다.

 

반면 여자의 정절의 경우에는 결혼 시장과 우정 시장에서 큰 차이가 난다. 바람기가 많은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는 큰 손해를 볼 수 있지만 바람기가 많은 여자와 친구가 된 여자는 그만큼 큰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결혼 시장에 들어선 남자는 여자의 정절을 매우 중시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우정 시장에 들어선 여자가 여자의 정절을 그만큼 중시하도록 진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체 선택과 집단 선택

 

대체로 덕 윤리학자들은 용기, 정직, 관대함 등이 인간 집단에 이득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덕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이것은 진화 생물학계의 집단 선택론과 통하는 면이 있다.

 

반면 이 글에서 제시하는 가설은 철저히 개체 선택에 입각한다. 사람들이 어떤 형질을 덕이라고 보도록 진화한 이유는 그런 덕을 갖춘 사람과 결혼하거나 친구가 되는 것이 자신의 번식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지 집단 또는 인류 전체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덕을 중시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또한 덕을 어느 정도 갖추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덕을 갖추어야 우정 시장이나 짝짓기 시장에서 더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작 암컷이 크고 화려한 꼬리를 선호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공작 수컷이 크고 화려한 꼬리를 만들어내도록 진화한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덕을 어느 정도 갖추도록 진화한 결과 인간 사회의 갈등이 줄어들어서 인간 사회가 덕이 없는 인간들로 이루어질 때보다 더 살기 좋아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가 더 살기 좋아진 것은 덕의 부작용이지 덕의 기원이 아니다.

 

 

 

 

 

덕의 충돌

 

만약 인간 집단을 위해 덕에 대한 평가가 진화했다면 덕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서로 충돌할 일이 적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제시한 가설대로 덕에 대한 평가가 개체의 번식 이득을 위해 진화했다면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자식과 부모 사이에,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젊은이와 노인 사이에 덕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엇갈릴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개체의 이해 관계는 어느 정도 충돌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덕에 대한 평가가 충돌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문화가 바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이해 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예컨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덕에 대한 평가 메커니즘을 다르게 진화시켰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내가 자신에게 순종하는 것이 반항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반면 아내의 입장에서는 남편에게 마냥 순종하는 것이 손해다. 따라서 남자는 여자의 순종을 중요한 덕으로 생각하도록 진화한 반면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정절 문제에서도 이해 관계는 충돌한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지 않을수록 유리하다. 또한 남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바람을 피울 때 아내가 질투를 덜할수록 유리하다. 물론 아내의 이해 관계는 그 정반대다. 이것은 칠거지악 중 음탕한 것(淫行)”질투하는 것(嫉妬)”에 관련되어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바람을 피우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바람을 피울 때 질투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이런 이중 잣대는 서양에도 있었다. 이것은 사냥-채집 사회가 무너지고 어느 시점부터 남자가 여자를 무지막지하게 지배하게 되면서 남자의 덕 평가 기준이 여자의 덕 평가 기준을 압도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010-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