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7년도쯤에 개인적인 일때문에 경상남도 진주에 갔다가 경상대에서 하는 유시민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당시 유시민은 대통합 민주신당 후보 경선에서 이해찬 선거 운동을 하고 있었고, 그 일환으로 전국 대학을 순회하며 강연회를 개최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유시민에 대해 호의를 갖고 있던 때라 상당한 기대를 안고 강의에 참석했다. 친노 대표 주자이자 "사회운동으로서의 정치"를 하는 유시민이 과연 어떤 강의를 할것인가?

그런데 유시민을 본 첫 인상은 생각보다 열정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좀 의외였는데, 일반적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에 충실한 정치인은 건강이나 개인적 사정때문에 기운은 없을지언정 열정은 있기 때문이다. 그 열정은 외적 열정일수도 내적 열정일수도 있지만 아무튼 신념을 품는 정치인은 어떤 형태로던 열정을 표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시민에게서는 그런 열정을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열정이 없다고 해서 무슨 우울한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기운이 없는것도 아니었다. 뭔가 설명할수 없는 피곤과 무감(無感)이 그를 감싸 안은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에너지의 소진과는 뭔가 다른 형태의 아주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고갈과 결핍이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굉장한 불쾌감을 느꼈다.

불쾌한 첫 인상은 강연으로 이어졌다. 그는 한국 사회가 처한 위기에 대한 정책 강연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 역시 굉장히 의외였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라는 것이 너무 피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 사회의 위기로 "고령화", "정보화"따위를 들었는데, 그 내용은 여느 정치인이 선거용으로 만든 자서전의 뒷 부분에 대충 구겨 넣을법하게 평범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고령화 때문에 인구 피라미드가 왜곡되고, 정보화 때문에 일자리의 재편성이 일어난다는, 정치학 교과서의 진부한 서문을 그대로 옮겨 놓은듯한 내용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어느 싸구려 팜플렛을 그대로 읽는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이념에 대해서도, 가치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서울대 운동권의 전설이었던, 그리고 그 전설이라는 상징자본에 기대어 정치를 하는 인물로서는, 너무나 의외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이념에서 벗어나 실제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된 노숙한 정치인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아예 이념이나 가치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는 정신세계의 단면으로 느껴졌다.

나는 내가 생각한 유시민에 대해 너무나 배치되는 그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채로 강연장을 빠져나갔다.


2.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유시민이 쓴 많은 책이 표절의혹을 받고 있다. 그런데 나는 표절 의혹보다는 그가 써낸 책들의 주제가 대중이 없다는데 관심이 간다. 그것은 박학다식 보다는 신념의 부재가 낳은 시류에의 영합으로 보인다.

물론 많은 정치인이 신념이 없으며, 시류에 영합한다. 예를 들어, 열린우리당의 실용화에 앞장섰던 정동영이 뜬금없이 부유세를 들고 나오는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유시민은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편의적으로 이것저것을 내놓는 평범한 속물 정치인과는 뭔가 다르다. 거기에는 간단하게 설명할수 없는 위화감이 존재한다.

그는 모든 저서와, 모든 주장들에서, 도덕의 주창자를 대변한다. 마치 자기가 그 논의의 도덕적 영역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있는것 처럼 말이다. 그는 진심에서 우러나온(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도덕적 의분과 현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데, 이를 통해 은연중에 도덕에 대한 권리의식을 살짝 내비친다. 그래서 결론은 흔히 유시민이야 말로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이것은 정동영 같은 사꾸라가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그는 친노에서도 도덕적 중핵을 담당한 "바로 그 사람"이 되고, 정치 개혁에서도 "바로 그 사람"이 된다. 신기한 것은 "바로 그 사람"인 유시민이 실제로 일이 이루어지는 부분에까지는 발을 담그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본 게임으로 들어가 손에 더러운것을 묻히기 보다는, 단지 도덕의 대변자로서 일정한 상징자본을 누리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