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올린 식민지 근대화론을 놓고 활발한(가?) 토론이 벌어지고 있네요. 보다가 문득 장난기와 상상이 발동해서 두서없이 써봅니다. 주제는 '운좋게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대전제
 당시 제국주의 열강들이 모여 "야, 조선은 석유도 없고 운하 파야할 지정학적 요소도 없으니 우리 다 내비두는 걸로 하자. 조차나? 외부의 자극만 있는 상태에서 과연 내재적 근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인류학적, 역사적 위대한 실험을 해보자구' 기적적으로 에블바디 오케이. 

1. 운양호 사건 등을 경험한 조선 왕조 정신 바짝 듬. 양반 및 지배 계층도 적극 협조. 백성들 또한 자신들의 권리와 경제적 부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에 적극 협조. 근대적 교육과 군사, 문화 착착 진행. 여기에 발맞춰 조선 왕조또한 단계적으로 권한 이행. 대략 30년(한세대)가 지난 후 조선은 세계 최고의 근대적 복지체계를 갖춘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탈 바꿈.

결론 - 판타스틱!

2. 1)과 비슷하나 구지배계층의 반발과 '군구제 폐지'를 요구하는 지식인계층의 시위로 어수선한 시절을 보냄. 그렇지만 워낙 또이또이한 세종 2세와 정조3세의 영도아래 큰 전쟁이나 내전없이 그럭저럭 입헌군주제로 안착. 대략 50년 걸림.

결론 - 실험에 동조했던 제국주의 열강과 구 식민지 국가들에서  '한국 따라 배우기' 열풍 붐. 

3. 존나 힘쎈 제국주의의 실체를 본 조선 왕조, 위기감에 근대적 교육 및 군사, 과학 기술 정책 실시. 버뜨, 유교 이념에 물든 지배계층은 개화파와 위정척사파로 분열.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 못한 기층 대중들의 불안감 고조. 근대적 교육을 받은 학생들 사이에 '조또 왕조가 있다니, 이거 존나 이상한 거였어'란 불온한 사상이 널리 퍼져 나감. 이에 따라 사회적 혼란 극한으로 치달음. 급기야 불온 사상(?)은 군대 일부에도 퍼져나가 학생 및 군 일부가 동조한 폭력 시위 발생. 사망자 다수 발생.

위정척사파 : 내가 말했자나여. 근대화는 우리 뿌릴 흔든다고. 기본적으로 핏줄이 안된 애들까지 교육 받는게 아니라니깐여. 어제까지 눈깔고 살던 백정들이 공부 좀 했다고 왕이랑 지랑 똑같은 인간이라고 나서는게 말이 되나염?
왕: 띠불. 지들 처지 불쌍해서 교육 시켰더니 은혜를 모르고 날 없애자고 나서? 저거뜨리 안되겠어. 다 쓸어 버려.

결국 근대적 교육은 왕가 및 지배 계층 자제로 한정됨. 반발하던 지식인 계층은 죽거나 망명. 그럭저럭 국가 돌아감.

결론 - 인도를 비롯한 일부 회교 국가 스탈.

4. 근대적 사상에 물든 시민 계층과 일부 군대가 합세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혁명을 일으킴. 조선의 황제 이종의 목이 광화문 네거리에 매달림. 유교 이념이 아직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지방의 반발은 진압당함. 특히 이때 을릉도 출신 포병 장교 나본옹의 활약이 커졌음. 심지어 그때까지도 전근대적 천황제도를 갖고 있던 일본까지 영향권 아래 들어옴. 근대 이념에 투철했던 나본옹은 일본원정하여 천황제를 위기에 빠뜨림. 그렇지만 수십년만에 닥친 일본의 폭염에 그만 막대한 인명손실만 안고 그런데 어렵쇼? 나본옹, ''평민도 왕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하며 황제로 등극, '띠불, 실험대상으로 가만히 두고보려했더니 이제 우릴 가르치려 들어?'라 반발한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으로 나본옹, 황제에서 쫓겨나 안배0섬으로 망명. 다시 복귀. 그렇지만 원철로 전투에서 대패한 뒤 새인봉섬으로 유폐되어 사망. 이후 조선의 수도 한성에선 경제적 피폐와 제국주의 열강에 반발하여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사회주의를 내건 '서울 코뮌' 발생. 수십만명이 죽은 뒤...여차저차를 거쳐 2010년 무렵엔 복지국가로 바뀜.

결론 - 프렌치 스탈.

5. 근대적 교육이 실시된 후 자본주의에 빠르게 적응하여 막대한 부를 쌓은 중인 혹은 양반 계층 몇이 사실상 국가의 부를 나눠가짐. 중인 이첨지 가문은 전라도 땅의 50프로 소유, 양반 김안동은 경상도 상공업의 40프로를 좌지우지. 사실상 국가는 이러한 몇 가문의 과두 지배 체제로 들어감. 기층 민중의 발발을 우려하여 역설적으로 유교 이념 교육은 더 강화됨. 과두 지배 가문의 영향력에 반발, 혹은 동조한 군부 쿠데타가 끊이지 않고 산맥지대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내건 게릴라들 활동 활발해짐. 그리하여 한때는 경제 규모상 아시아 최대를 자랑했던 조선, 20세기 후반엔 세계의 빈국으로 전락. 가까스로 정치가 혼란을 벗어난 21세기 초입엔 조금 살만해짐.

결론 - 남미 스탈.

6. 1부터 5까지 검토한 조선의 왕조는 경제 및 과학 교육은 서구적 근대화를 지향하나 이념적 혼란을 막기 위해 새로운 스탈의 유교 이념 교육은 강화. 버뜨, 일찌기 외부와 접촉이 많았던 평양을 중심으로 근대적 공화국 수립의 분위기가 형성됨. 드디어 1935년, 평양을 중심으로 세를 넓혀오던 '인민전선'이 선거에 승리하여 급격한 진보 정책 추구. 이에 반발한 조선왕조 및 구 지배계층은 중국에 파병나가있던 부란구 장군을 끌어들여 쿠데타를 일으킴. 조선은 평양을 중심으로한 '평함 인민전선 정부'와 서울을 중심으로한 분열. 그렇지만 때마침 일본에 수립되어있던 파시스트 정권의 도움을 받아 부란구 장군이 전국 통일. 이후 청적 줄무늬 FC 평양과 흰색 유니폼의 왕파서울 간의 축구 경기는 항상 만원을 이룸. FC 평양에서 뛰었던 네덜란드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는 '독재 정권에 협력한 왕파 서울에서 뭘 제안하더라도 난 관심없다'고 발언하여 FC 평양 팬들을 눈물과 환호의 도가니로 빠뜨려 버림. 1980년이 저물 무렵 부란구 장군은 '날 용서하삼'하며 후계자로 조선 왕조의 후계자 '이태세'를 지목. 이후 '이태세'는 입헌군주제 수립.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자 '날 밟고 가보지?'하며 강단을 보여주어 국민적으로 존경받음. 그렇지만 최근엔 경제 위기로...IMF 간다는 소문 있음.

결론 - 스페인 스탈.

7. 근대적 교육을 받은 젊은 것들이 '왕 필요없삼' '유교 조까라 하삼' '우린 청바지와 코카콜라가 좋삼'하는 사태에 격분한 구지배계층, '이 모든건 서구 이념 및 아무 생각없이 추종하며 부패 타락한 왕가 탓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유교 원리주의'에 입각한 '단리반' 결성, 타락한 서구 이념 및 문화 싹쓸이. 심지어 불교 문화재까지 몽땅 소각시켜 버림. 뭐 부정부패없고 나름 평등한 국가를 만드는 것엔 성공했으나...문제는...'돈이 없어, 돈이' 이후 유교 원리주의에 입각하여 미국의 오두막을 자전거로 공격한 빈라돈씨를 숨겨줬다가...미국의 침략 받음.

결론 - 아프칸 스탈.






후...쓰다보니 지치네요. 예.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조선이 위의 몇번으로 갔을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식근론에선 '아무도 모르므로 전제 자체가 무효'라는 입장이죠. 더 쓰고 싶은데 지쳐서 이만...나중에 좀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런데 쓰고나니 갑자기 이런 걸로 소설써도 재밌겠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