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용어

 

유시민이 이 책의 제목으로도 사용한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란 소중한 가치를 얻기 위한 대가를 다 지불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아직도 민주주의를 위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정도의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조숙한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조숙한 민주주의’란 것은 간단히 이야기하면 ‘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된 것이 우리의 주체적인 역량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지만 현실적으로 그에 걸맞는 시민의식과 역량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죠.

남성 투표권의 경우 대체로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전면적으로 시행되었고, 여성의 경우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등 유럽국가들에서는 2차 대전 종전 이후에야 모두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 남부의 흑인이 투표할 수 있게 된 것은 1960년대 말 민권운동 이후에나 가능했다. 이 점에서 볼 때 제도적 수준에 관한 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서구에 비해 결코 늦은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서구의 경우 노동자에게 투표권이 부여되었을 때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조직되었고, 1차 대전 이후인 1920~30년대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집권 정당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중략)…요컨대 서구에서의 투표권 확대 과정은 광범위한 사회 집단과 계급의 정치적 참여의 확대를 동원했다.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73p

 

 이런 점에서 봤을 때,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조숙한 민주주의’와 그다지 다른 것 같지는 않은데…어쨌든 이 ‘후불제 민주주의’ 혹은 ‘조숙한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대해서, 한번 토론해보고 싶습니다. 일단 이 책의 중심개념이기도 하니까요.

 

2. '이라크 파병'에 대하여


유시민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냅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팔레스타인과 중동 지역에서는 석유와 땅과 권력에 대한 탐욕을 종교로 치장한 전쟁이 발생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자유의 이름으로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는 폭격을 감행했다.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137p 중에서

 

 <후불제 민주주의>에 동봉된 CD에 유시민의 출판 기념 강연회 영상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독자 중에 한 명이 이라크 파병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거기서 유시민은 이라크 전쟁을 일컬어 ‘명분 없는 전쟁이었고, 부도덕한 전쟁이었고, 미국 국민을 속인 전쟁이었고, 세계에 수많은 재앙을 안겨준 잘못된 전쟁, 좋은 전쟁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 중에서도 최악의 전쟁 중 하나’라고 책에서보다 한층 더 강도 높은 비판을 하죠.

그런데 정작 참여정부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반성이나 비판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이툰 부대 이라크 파병은 한반도 평화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한미관계가 악화됨으로써 장애가 조성되는 사태를 피하려고 한 '내키지 않는 선택'이었을 뿐이다.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339p 중에서

 

 강연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전투요원으로 하고, 규모도 최소화하고, 주둔지역도 교전지역에서 뚝 떨어진 데로 하고, 이런 것조차도 원칙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평화 애호국가로서 국제사회에 기여한다는 우리 헌법의 요구,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은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말이죠.

 물론, 한반도의 평화는 소중하죠. 그런데 한반도의 평화가 중요한 만큼 이라크 민중들의 평화도 소중한 것 아닙니까?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대한민국 헌법 5조 1항입니다. 이라크 파병이 과연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한 것입니까? 이라크 민중들의 평화를 깨는 데 일조한 것이 아니라요?

 비전투요원으로 파병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명분 없고 부도덕한 전쟁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물론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솔직하게 ‘잘못했다’까진 아니더라도, 이라크 민중들의 평화를 깬 데 일조한 것에 대해서 인정은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더군더나 유시민은 에필로그에서 ‘선한 사람들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선에 대해서 상당히 낭만적으로까지 보이는 시각을 보이는데, 에필로그를 보면서 전 ‘악은 선량한 자의 방관에서 생긴다’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유시민의 입장은 그 이상으로 단호합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악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지 않으면 그것도 ‘악’이다.

 이런 유시민의 입장과 이라크 파병에 대한 그의 평가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3. 장하준 비판에 대하여

 

 음, 원래는 유시민의 장하준 비판에 관련해서 장하준의 주장을 좀 심도있게 논하고 싶었지만, 막상 유시민의 장하준 비판이 좀 허무할 정도의 수준이라 그러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장하준 이야기를 정 하려면, 다음에 그냥 장하준 책으로 독서 토론을 하는 게 어떨...;;

 

 그는 세계를 산업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분할한 다음,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론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봉쇄하는 ‘사다리 걷어차기’임을 치밀하고 집요하게 논증한다. 개발도상국들에게 미국 행정부와 IMF 등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구의 정책 권고를 거부하고 과거 일본과 독일, 한국 등 후발 산업국들이 채택했던 국가의 적극적 산업 정책과 금융 정책, 무역 정책을 활용하라고 충고한다. 실로 훌륭한 학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장 교수의 학문적 주장을 대한민국 정부의 경제정책을 만들거나 평가하는 데 활용할 여지는 별로 많지 않다.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353p 중에서

 

 유시민의 장하준 비판의 일부입니다. 장하준의 주장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별다른 왜곡도 없고, 무난하게 설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장하준의 이론을 경제정책에 적용하기 힘든 이유가 뭔지 제대로 이야기를 안 하죠.

 유시민의 논리는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익을 추구해야 하니까 보편타당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경제학자의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건데, 일견 타당한 면도 있지만, 장하준의 이론 자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런이런 점이 문제다’라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사실 별로 반박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장하준과 같은 학자의 이론을 구체적인 경제정책으로 만드는 건 엄연히 말해서 유시민과 같은 정치인이나 경제 관료의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만...여하튼.

 그리고 장하준의 이론을 한미 FTA 반대의 논거로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차원혼동의 오류’라 생각한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습니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건 좋지만, 정작 우리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반대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뭐, 이런 것도 아니고..;;

 이라크 파병은 그렇다 쳐도, 한미 FTA 관련해서는 솔직히 외교적으로 우리가 꼭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었다고 생각이 안 되는 터라..

 어쨌든 이 부분은 조금 토론해볼 필요가 있을 거 같네요.

 

 여기까지 제가 생각한 세 가지 쟁점이었습니다. 장하준에 대한 건...강력한 요청;이 있다면 간단하게라도 요약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다음에 장하준의 저서로 한번 토론을 하는 것도...

나는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소리에 맞추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