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제가 본 글 중에선 최고네요. 전에 이영훈 교수의 글 소개하며 의도적으로 도발을 했었는데 당시 이교수에 대한 반박들, 솔직히 말하면 제 성에 못미쳤습니다. 딴지에서 누가 퍼온 걸 다시 퍼왔습니다. 다음의 어느 카페 주인이 쓴 글이라는데 무슨 카페인지 알면 당장 가입해서 배우고 싶습니다.

식민지에서 벗어나자마자 근대국가?

일전에도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슷한 토론이 자주 오갔고, 그 때 마다 지적을 한 부분들이 반복되어 거론되는 모습이 보이는군요. 특히,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은, [식민지시절 근대적 구조가 한반도에 도입되기 시작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부터 조선인들이 유리되어있는 한 그것은 '근대화'라고 여길 수 없다] 는 부류의 주장들인데, 말하자면, [근대적인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해도 조선인들은 여전히 수탈당하고 착취당했기 때문에, 우리는 '식민지시절 근대화가 되었다'고 얘기할 수 없다]는 취지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언제 [근대화] 된 것일까요?

 

1948년도에 수립된 "대한민국"은 1910년 전에 존재하던 "조선"이 이름만 바뀐 것은 확실히 아니지요. 옛 조선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나라입니다. 또, 그 때 "대한민국"만이 유일하게 수립된 국가도 아니고요. (일단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었다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당시의 "대한민국"과는 다른 형태를 띄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거의 동시에 수립이 됩니다. 이 국가도 옛 조선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둘 다 "근대국민국가"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근대화가 되기도 전에 [독립이 되면 근대국민국가를 만들어야겠다] 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던걸까요? 그렇다면, 적어도 그 사람들은 그 이전부터 [근대적사상]을 품은 사람들이었다고는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 이전]이면 언제일까요.

 

네. 독립되기 이전이겠지요.

 

어라? 그런데, 독립되기 이전이면 식민지 시절이군요.

 

..

 

자, 이제부터 본론입니다. [식민지 근대화론] 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이죠.

 

물론, 여기서 제가 얘기하는 것은 보통 매체를 통해 접한 [식민지 근대화론] 과는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일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어떤 '버젼'의 [식민지 근대화론] 을 접해왔던 간에, 기본적인 전제는 그 모두 동일합니다. [근대화] 라는 현상의 기본적인 포석은 모두,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였던 시절에 깔리게 되었다...는 것입니까요. 그리고, 그 사실을 직면함에 있어서 어떠한 뽀인트에 방점을 찍으며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 바로 이 글의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닮은꼴 이야기

어떠한 나라의 얘기를 잠깐 해봅시다.

 

이 나라는 조선인들이 36년 간 독립을 위해 투쟁을 해온 것 이상으로 격렬하게, 오래동안 싸워온 나라입니다. 역사상 대체로, 한반도의 국가들이 우위에 있었던 정세가 오래도록 유지되어오다가 최근에 그 관계가 역전된 것에 비한다면, 이 나라는 중세 때 부터 항상 강력한 이웃에 대해 열세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어디보자.. 대충 800년 이상은 그 외세에 맞서기 위해 투쟁을 해왔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도 그 강대한 이웃에 대해서 항상 이빨을 북북 갈아대던 그런 나라입니다. 게다가, 그 이웃은 다른 나라도 아니고, 대충 18세기 부터는 세계 최강대국의 하나로 꾸준히 지위를 유지해왔던 그런 나라입니다. 여기저기 따먹은 영토가 하도 많아서 "해가 지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나라였지요.

 

바로. 아일랜드의 경우랍니다.

 

...

 

1800년, 영국과 아일랜드 의회에서 각각 통과된 통일법을 근거로 아일랜드는 드디어 오랜 숙적인 영국의 일부로 전락하게 됩니다. 1801년, 아일랜드 섬 전체가 대영제국의 공식적인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후, 20세기 중반에 들어와서 독립된 공화국을 선포할 때 까지 150년 가까이, 아일랜드는 대영제국의 속령으로써 좋든 싫든 잉글랜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요. 런던을 중심으로 둥글게 산업도시들이 포진한 잉글랜드 지방과 같은 수준의 산업화와 공업화를 이루지는 못했다고 해도, 대영제국의 일부이자 브리튼 본섬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으로써 잉글랜드의 산업적, 경제적, 제도적 발전상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북아일랜드 얼스터를 제외한 나머지 국토의 2/3 정도는 여전히 농지가 대부분이었고, 친영계 아일랜드 지주와 잉글랜드의 부재지주들이 대부분의 아일랜드 인구를 소작농으로 부리고 있었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아일랜드인들은 대영제국의 공민권의 보호 아래에 있었고, 산업적/금융적 투자가 집중된 북부의 얼스터는 근대적 도시화가 역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상황에 있던 19세기의 아일랜드는 과연, [근대화] 가 이루어지고 있던 곳일까요?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논할 때면 감정적인 트러블로 인해 불투명해보이겠지만, 외국의 얘기가 되면 한결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수월해집니다. 19세기 영국이라면 [근대화] 와 [산업화]의 대명사입니다. 어느 누구도 영국이 근대화의 과정을 이룩했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코틀랜드, 웨일즈 지방과 함께 [잉글랜드와 가장 가깝지만, 잉글랜드는 아닌] 아일랜드가 영국과 함께 근대화의 과정을 겪었다는 사실을 의심하기는 힘듭니다.

 

물론, 각 지방이 실제로 얼마나 산업화를 이루었나와는 별개의 문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보다 큰 [대영제국] 의 일부로써 잉글랜드가 보여주고 있던 근대적 발전상 - 산업화와 자본주의화의 기운, 근대국가의 기본틀을 이루는 제도, 이전 시대와는 다른 사회적 관계 등 - 을 그 지역들에서 공유하면서 (비록, 내부적으로는 잉글랜드의 지배에 격렬하게 저항한다고 해도) 분명한 근대화의 [세례] 를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시기에 있어서 (잉글랜드와 같은 수준은 절대로 아니라고 해도), 잉글랜드의 근대화 과정과 발맞추어 각 지방도 함께 근대화되고 있었다는 결론은 합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일랜드는 1840년, 역사상 전후무후한 대재앙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 역사적 사건을 일컫는 이름 자체가 다른 설명이 필요가 없는 " 아일랜드 대기근 The Great Irish Famine " 입니다. 인구 중 100만 명 가까이가 흉작으로 인한 굶주림, 그리고 영양실조로 인해 찾아온 질병과 전염병으로 굶어죽습니다. 또 다른 인구 100~150만 명은 이 대재앙을 피해 아일랜드섬을 '탈출'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갑니다. 그 결과, 순식간에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일랜드인들이 대세력을 이룰 정도가 됩니다. 아일랜드의 내부의 사회적 인프라는 실질적으로 붕괴되고, 이제까지 영국과의 '합방' 아래 살아오던 아일랜드인들 사이에서 아일랜드 민족주의가 용솟음치고, 섬 전체가 불온한 상태에 빠지고, 폭동과 반란, 독립운동 속출합니다.

 

그렇다면, 1840년의, 아일랜드는 [근대화] 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독한 참상을 겪은 것일까요?

 

굳이 아일랜드의 경우를 예로 든 이유는, 실제적인 경제적 발전의 정도는 [근대화] 라는 총체적 현상의 극히 작은 일부만을 차지할 뿐이라는 것을 얘기하기 위함입니다. 아일랜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한반도와 아주 비슷한 역사를 겪은 나라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잘사느냐 못사느냐] 라는 경제적 지표를 근대화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일제에 의해 한반도에서 수행된 근대화 작업의 수혜자가 한반도의 조선인들이 아니라는 점에 있어서 [식민지근대화] 는 사실이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근대화는 자본주의화와 산업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변화와 함께 (혹은, 그러한 변화로 인해) 찾아오는 총체적인 구조적 변화를 일컫는 것입니다.

 

즉, [근대화의 수혜자가 누구인가]는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느냐] 라는 질문과는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일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그것은 외부세력에 의해 진행된 근대화 [당위성] 의 문제이지 [사실경과] 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세기 내내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잉글랜드는 대영제국의 일부로 분명히 근대화가 된 것이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중반까지 한반도는 일본제국의 속령으로써 (좋든 싫든) 근대국가로 재편성된 일본제국의 구조적 변화에 종속되어 함께 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19세기의 아일랜드와 20세기 초의 조선은 상황이 매우 유사합니다. 두 곳 모두 그 주민이 원치않는 강제적인 합병의 결과 보다 큰 제국의 일부로 종속되었고, 두 곳 모두 전적으로 농업위주의 전근대적인 생산관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종속시킨 제국의 주도로 진행된 근대화 작업에 노출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영제국이 아일랜드에 진행한 근대화작업의 수혜자가 아일랜드인들이 아니었던 것처럼, 일본제국이 한반도에 수행한 근대화작업의 수혜자는 조선인들이 아니었죠. 아일랜드인과 조선인은의 삶은 모두 부당한 억압과 착취에 노출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곳의 사람들 모두, 자신의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근대화에서 배제된 것처럼 보이는 일상을 살아가야 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속령'의 위치에서 '당해버린' 그 근대화가 좋든 싫든, 앞으로 이룰 근대국민국가의 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식민지 시절 '근대화'가 된 것은 무엇인가?

그 단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 하나가 한반도에서 항일운동의 성격의 변화라고 할 수 있지요.

 

1910 년 강제합병 전후의 단계에서 항일저항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조선의 독립] 입니다. 외세를 배격하고, 외국의 사상과 문물이 침입하는 것을 격퇴하여 왕국으로서 조선을 부활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지요. 그런데, 1920년대를 경계로 항일운동의 성격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조선왕조의 부활은 조선인들의 미래의 일부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인가, "외세를 격퇴하고 나라를 보전한다"는 이념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목표는 '나라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변해버립니다. 자강운동이 시작됩니다. 왕조에 종속된 신민으로서 나라에 충성하여 조선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힘을 길러 강한 민족이 되어 독립된 국가를 수립한다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그 시절의 항일운동을 다 같은 '독립운동'으로 생각하고 무의식적으로 넘겨버리지만, 실제로 이러한 변화는 옛조선의 인민들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사상의 변화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강운동과 함께 수행된 것 중 하나가 신분타파 운동인데, 옛신분의 위계에 따르는 것을 거부하고 모두가 같은 조선국민으로써 자신을 위해, 자기 민족을 위해 독립된 국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또, 그와 함께 여성평등 운동도 시작이 됩니다. 이것은 사실, 19세기말 조선에서는 뗄 수 없었던 근대적인 사상변화의 중요한 한 걸음을 식민지 시절에야 비로서 뗄 수 있게 되었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조선의 식민지화와 함께 구체제의 사상과 이념을 수호하던 지배계급이 무너져내린 결과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 국산 물산의 소비를 장려하는 운동, 경제적인 자강운동이 부상하는 것 또한 조선말에는 '행상이나 하는 천한 계층'으로 취급받을만한 신흥계급이, 오히려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위치 중 하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띄게 됩니다. (물론, 이 '민족자본'이라는 것들의 실체는 옛조선의 인민들이 믿었던 것과는 전혀 달랐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격동의 30년대. 이어지는 무장투장과 테러를 통한 노선을 택한 사람들의 이념적 지표에서 이제 [조선왕조의 부활] 같은 것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이제 이들은 단순한 '독립' 이상으로, 새로운 국가의 '수립'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임시정부'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내세우는 강령은 확실히, 옛조선이 국가로써 건재할 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꿈꾸게 됩니다. 일제의 지배가 이어진지 20년이 넘게 되면서, 일부는 일제에 투항하고, 일부는 저항을 계속하지만, 그 어느 쪽이 되었든간에 '앞으로의 세상'이 [전근대적 시대] 와는 전혀 다른 시대일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과연, 조선인들 속에서 무엇이 변한 것일까요?

 

그 변화가 바로 [식민지 근대화] 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식민지근대화: 인과의 역전

식민지 시절, 확실히 조선인들은 무엇인가가 근본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친일에 속하든, 항일에 속하든, 아니면 어느 쪽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할 수 없이 일상을 살아나갈 수 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든간에, 변해버렸습니다.

 

그것은, [독립을 하여 근대적 민족국가를 이루는 것이 민족으로서 생존하기 위해 절대적인 중요성을 띄게 되는 순간]을 조선인들이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에 눈을 뜨기 이전과 눈을 뜬 이후의 차이가 바로 [식민지 근대화]의 본질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제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에 깔아놓은 근대적 구조에 예속되어 있으면서도, 그 혜택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고 유리된 현실 속에서 조선인들은 더욱 강렬하게 [근대적 구조] 의 필요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역설입니다. 이것이 바로 [식민지 근대화] 의 실체인 것입니다.

 

[식민지 근대화]의 정체는 '일제의 근대화 덕분에 조선인들도 먹고살게 되었다'는 둥, '일제 덕분에 오늘날 한국이 생겨났다'는 둥의 너절한  [시혜냐, 가해냐?]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라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이전까지는 여러가지 이유로 (특히, 물리적 기반의 미완성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로) 구조적인 근대화에 미치지 못한 조선이, 식민지라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통해 강렬하게 [민족주의] 에 각성함으로써 [근대화] 에 목적적으로, 거의 강박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인과의 역전인 것입니다.

 

보통 [근대화] 라는 것은 '근대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체제가 변화하는 그 전체적인 과정이죠. 물리적/경제적 변화로 인해 구체제로써는 봉합할 수 없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것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모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강렬한 폭력을 통해 구체제를 깨부수든, 아니면 보다 온건하고 지속적인 개혁으로 구체제를 꼬드겨 변화시키든간에 어쨌든 하나의 [정석적인] 인과관계에 의한 현상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발생하고, 근대국가이념이나 시민개념이 생겨나고, 민주적 제도가 도입되는 것이죠.

 

[식민지 근대화]는 그 인과의 역전입니다. 앞서 근대화를 이룩한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인해 희생이 된 식민지는 그 상황으로 인해 복합적 모순을 경험합니다. 한 편으로는 독립을 상실하고 외세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어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지화가 되는 과정에서 자력으로는 아직 깨부술 수 없었던 구체제가 해체되어 버리는 진보적/해방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식민지 경험이 가혹할 수록 구체제가 사리져버린 이념의 공백을 재빠르게 채우는 것은 엄청나게 가속된 민족주의이고, 자생적으로는 아직 근대화로 나아가기를 기대할 수 없는 물리적, 물질적 기반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인들은 그 의식이 먼저 목적론적으로, 필요에 의해, 생존을 위해 근대화에 도달하게 되는 바, 이것이 바로 [식민지 근대화]의 요체입니다.

 

이러한 생존적 차원에서 근대화의 필요성에 눈을 떴기 때문에, 이후의 과정은 자연적/자생적인 근대화의 코스를 밟지 않고, 엄청나게 단축되고 축약된 형태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에서 근대화가 계획적이고 인위적이고 집약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그 전체의 과정을 뜻한다는거죠.

 

그렇기 때문에 [식민지 근대화론] 은 "식민지 시절에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밝히는 이론이 아니라, "식민지 경험이 어떠한 근대화의 유형을 이끌어냈느냐"에 대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영훈 교수같은 경우에는 그러한 의식적 근대화를 논하기에 앞서, 이미 식민지 시절에 깔린 근대화의 포석 및 물리적 기반이 생각보다 두텁다는 것을 식민지경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얘기하는건데, 이 사람은 이상하게 보수우익의 (특히 구친일계통의 계보를 잇는) 정치적  의식에 동조하여 갈수록 주장하는 내용이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고... 일반 대중들은 뚜렷한 통찰이 없이 단순히 감정적인 반발심으로 인해 "식민지 경험이 우리 나라가 근대화를 이루는데 전혀 도움이 안됐다"는 반대편 극단에 있고, 민족주의 계열의 연구자들은 식민지 시절에 진행된 의식적, 물리적 근대화의 진행상황을 차마 방기할 수는 없어서, '그게 식민지가 되면서 근대화가 시작된 것은 맞긴 맞는데 어차피 근대화의 물리적 기반은 해방 이후에나 완성이 되었고, 그 이전에 식민지 시절에 진행된 근대화가 사실은 몽주리 일제가 한 것은 아니고 우리 손으로 한 것도 있다...'는 쪽으로 주장을 하려다보니 앞뒤가 안맞는게 많아서 곤란을 겪고 있는 편이죠.

 

==;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문제거든요.

 

[한국사회는 아직도 근대화가 진행 중이다] 라는 논의도 있는 판국에, 그 시초가 식민지 시절에 있냐, 그 이전이냐, 이후냐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식민지 경험이 어떻게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것이 다른 국가들의 근대화와는 어떤 차이를 보이고, 현실에 있어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에 대한 것을 직시하고 분석하는 것인데 말이죠.

 

일본이 식민지로 만들어준 덕분에 근대화가 되었다는 둥, 결국엔 대국적인 견지에서는 외려 도움이 된게 아니냐는 둥의 얘기는 애초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결과론에 불과한 것이라, 그것을 갖고 자존심 대결을 펼치는 것은 소모적이고 도움이 안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예 몰역사적이고 비학문적이고요. 그런건, [제임스 국왕의 세금정책이 동부13주 식민지의 독립으로 이어졌으니까 결과적으로 미국은 영국이 독립시켜준게 아니냐] 는 소리랑 똑같은거니까요.

 

 

 

결론: 있는 그대로 보기

 

결론은, 뭐, 별거 없군요.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있는 그대로 보면 되는겁니다.

 

 

Q: 조선은 자생적으로 근대화를 이루었는가? 

A: 아쉽게도 못했습니다.

 

Q: 조선은 자생적으로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을까?

A: 알게 뭡니까. 역사에는 " If " 나 " Maybe " 가 없는데.

 

Q: 식민지 경험은 한반도의 근대화의 영향을 미쳤는가?

A: 네. 분명히 그렇습니다.

 

Q: 식민지가 되는 것이 한반도의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는가?

A: 무의미한 질문입니다. 식민지를 만든 측의 의도도, 식민지로 전락한 측이 받아들이는 방식도, 그리고 양자의 관계 속에서 벌어진 식민지 현실이 어떤 식으로 '근대화'를 낳아버렸는가에 대한 현실도 어떤 뚜렷한 방향성이 없이 난마처럼 얽혀있는 상황에서 말이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라 정답이 없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강간으로 인해 임신하여 아이를 낳은 여자의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그 어머니에게 있어서 고통일 수도 있고, 그저 사랑하는 아이일 수도 있고, 둘 다 일 수도 있고, 그 어느 것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 여자에게 "네게 있어서 그 아이는 어떤 존재냐"라고 묻는 것은, 그 여자가 어떤 대답을 해도, 대답을 하는 쪽도, 대답을 듣는 쪽도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만을 낳을 뿐입니다.

 

Q: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무엇인가?

A: 식민지 본격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그 시절의 경험이 (좋든 나쁘든) 근대화의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이론입니다.

 

Q: 식민지 근대화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A: 의미있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참고로, 식민지가 된 것이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던가, 우리의 근대화는 식민지 시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식의 주장은 양쪽 모두 철저하게 무의미합니다.

 

Q: 의미있다는 것은 뭔가?

A: 식민지라는 특별한 경험이, 구체적으로 근대화의 양상에 어떠한 변화와 영향을 끼쳤는가를 알아보는 일입니다.

 

Q: 그걸로 충분한거냐?

A: 네.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한가요?

 

 

 

-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