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편적인 종이 가장 변이성이 크다는 다윈의 주장을 기억하시는가! 현대 생물학자들은 다윈의 이런 주장을 가장 보편적인 종이 가장 안정적인 종이라는 식으로 바꿔 버렸다. (527)

 

가장 보편적인 종 즉 쪽수가 많은 종은 쪽수가 많기 때문에 돌연변이도 많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변이성이 크다. 또한 가장 보편적인 종은 쪽수가 많기 때문에 잘 멸종하지 않는다. 즉 어떤 면에서는 안정적인 종이다. 이 둘은 모순되지 않는다. 뭐가 문제인가?

 

 

 

그러니까 이종 간의 생식적 격리는 절대적인 게 아니며 따라서 생물학적 종 개념은 성립될 수 없다. (553)

 

현대 생물학자들 중에 종 개념이 애매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종 개념이 성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박성관은 절대적으로 칼 같이 구분될 수 있어야만 개념이 성립한다고 보는 것 같다. 박성관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면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도 애매하니까 생물 개념도 성립할 수 없고,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경계도 애매하니까 자본가/노동자 개념도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이중국적자가 있을 수 있으니 국가 개념도 성립할 수 없고, 밤낮도 애매하니 밤/낮 개념도 성립할 수 없고, 뇌사 같은 애매한 경우도 있으니 죽음 개념도 성립할 수 없고 ……

 

 

 

다윈의 주장인즉슨 불임성은 어떤 이유나 목적 때문에 특별히 부여된 게 아니며, 자연선택에 의해서 생겨난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마이어 같은 다윈주의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다윈 자신은 마이어(를 비롯한 현대 생물학자들)와 근본적으로 견해가 다르다. 현대 생물학은 종들 상호 간에 엄격히 분리되어 있는 질서에 어떤 이유나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고, 불임성이 종별로(특별하게) 부여되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종에 관해 창조론적 입장에 선다. 독자 여러분은 하도 질 낮은 창조론에 익숙한 나머지 이렇게 과학적인창조론을 접하면 그 정체를 착각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종별(특수) 창조론(special creation)이며, 종에 본질이나 의미(목적)가 있다고 믿는 본질주의이자 목적론이다. (526)

 

핵심적인 논점을 따지기 전에 현대 생물학자들 중에 종들 상호 간에 엄격히 분리되어 있는 질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어떤 저명한 진화 생물학자가 번식 격리라는 기준이 애매하다는 것을 부정했단 말인가?

 

또 창조론 타령이다. 현대 생물학이 창조론이 되었다는 것이다. 박성관은 마이어와 같은 현대 생물학자들과 다윈이 종 문제에서 근본적으로 의견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다음 두 구절을 살펴보자.

 

이제 종의 의미는 상당히 분명해진다. 종의 격리 메커니즘은 균형 잡힌 조화로운 유전자형을 그 상태 그대로 보전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 격리 메커니즘은 열등하거나 생식력 없는 잡종이 생겨나는 것을 막는다. 따라서 종의 보전을 자연선택이 유지시킨다고 볼 수 있다. (525, 에른스트 마이어의 『진화란 무엇인가』에서 인용)

 

우리는 앞에서 마이어의 주장에 반하는 종의 기원의 문장 두 개를 들었었다.

종이 자연계에서 교잡하고 뒤섞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불임성이 특별히(=종별로) 부여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 아무런 이유도 없다. (p.276)

자연선택이 종들로 하여금 상호불임성이 되도록 작용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을 고찰함에 있어서 …… 깊이 고찰한 결과 내게는 이러한 일이 자연선택을 통해 생겼을 리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4pp.311~312) (550)

 

다윈은 이종 간 교배의 불임성이 자연선택의 결과일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마이어는 종의 격리 메커니즘이 자연선택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박성관은 이 둘을 비교한 후 다윈과 마이어가 서로 완전히 반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다윈 이전의 창조론자들은 신이 세상의 수 많은 종들을 따로 창조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각 종들이 보존되게 하기 위해 즉 자연의 질서가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서로 다른 종이 교미를 하면 불임이 되도록 즉 잡종이 아예 태어나지 않거나 설사 잡종이 태어나더라도 잡종의 경우에는 불임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이런 생각에 도전했다.

 

다윈은 그런 불임이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일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현대 생물학자들은 그런 생각에 반대하나? 아니다. 마이어도 불임 자체가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마이어가 말하고자 한 것은 생물이 다른 종의 생물과 교미하지 않도록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다른 종의 생물과 교미하면 자식을 낳지 못할 가능성이 크며 설사 자식을 낳는다 하더라도 그 자식이 잘 자라지 못하거나 나중에 잘 번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성관다른 종의 생물과 교미했을 때 생기는 불임다른 종의 생물과 교미하지 않으려는 습성을 동일시했기 때문에 다윈과 마이어가 정반대 이야기를 한다고 착각한 것이다.

 

 

 

2010-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