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 학살 단상

오늘 야후 국제뉴스를 보니 뮌헨에서 90살 먹은 전직 나치장교에게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기사링크). 나이 90이나 먹은 파파 할아버지에게 종신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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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할아버지는 요셉 쉰글라베르 (Josef Scheungraber)씨로서 65년전인 1944년 6월 이탈리아에서 10명의 민간인을 살해한 죄목이다. 사건 몇일 전에 빨찌산에 의해서 자신의 병사 2명이 살해되자 그 보복으로 11명의 이탈리아인을 창고에 쳐넣고는 폭발물로 창고 자체를 날려버린 거다. 천운이라고 해야할지... 당시 15살의 지노 마세티(Gino Massetti)씨가 살아 남았고 법정에서 쉰글라베르씨가 현장에 있었다는 걸 증언했다. 물론 쉰글라베르씨가 직접 폭발 명령을 내린 증거는 없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유일한 장교였기 때문에 학살 사건의 최종 책임자라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마침내 정의가 승리했다고 기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피해자 가족 나이가 60이다. 그런데 60살짜리 할머니가 희생자의 손녀다... 대를 2차례나 물려 사건을 추적해온거다.

이 사건은 사실 역사가 길다. 처음 이탈리아에서 궐석재판으로 종신형이 선고된 후에 독일로 재판이 옮겨졌고 뮌헨법원에서도 재판이 지속되어서 결국 이번에 판결이 난 거다. 필자도 이 사건을 쭉 눈여겨 봐왔는데 인상 깊었던 건 쉰글라베르씨가 하도 나이가 많아서 재판도 그의 체력을 감안해 가며 진행되었다. 위의 사진에서 보면 아직도 정정한 것 같지만 동영상으로 보면 한눈에 정말 노쇠한 할아버지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현재 유럽에선 2차세계대전 기간중의 민간인 학살사건이 아직도 재판중인 경우가 몇몇 있다. 65년이 훌쩍 넘은 옛날일인데 말이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 기사를 읽으며 필자 눈에 쏙~~ 박힌 문장이 하나 있다.

The mayor of Cortona, Andrea Vignini, who also attended, said the area's citizens "have waited 65 years to hear this verdict. I think this ruling finally brings peace for the dead and the living."

학살이 있던 동네 시장이 판결에 참석을 했는데 이런 말을 했다. "이번 판결은 마침내 죽은 자들과 살아 있는 자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죽은 자들과 살아 있는 자들에게 평화라....


인터넷으로 한국 신문을 읽다보면 가끔씩 해방직후부터 625기간 사이의 민간인 학살자 집단 매장터 발굴 기사가 나온다. 사연은 비록 가지가지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서 끌려나와 어떻게 학살되었는지 이들의 신원을 대충이라도 밝힐 수 있는 각종 유품들도 나오고... 학살장소 인근 주민들의 증언도 남아 있다.. 또한 학살을 집행한 집단, 그러니까 동원된 병력이 어디 소속인지 지휘관이 대략 누구인지 가늠할 수 있을 충분한 정보들이 널려있어 보인다.

그런데 결정적인 것이 없다. 학살된 민간인들은 분명히 있는데 학살을 명령하고 실행한 자들을 밝혀내고 죄를 따져 묻는 과정이 없다. 그런데도 위령탑이 세워지고 위령제가 거행된다.

만약 학살을 당한 이들의 영혼이 위령제에 온다면 그들은 어떤 위로를 받을까? 그리고 이젠 학살피해자들의 아내는 물론 남겨진 아들 딸들도 파파 할머니 할아바지일테지만... 이들 희생자들의 가족들도 그 위령제에 참석하면 또 어떤 위로를 받을까?

오늘 아침에 그게 정말 궁금해졌다. 한반도에서는 마침내 죽은 자들과 살아 있는 자들에게 평화가 가져다 주었는가?


수십년도 더 지나 낡디낡은 이 비석이 당시 학살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이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위령비 정도 될거다. 저 위령비에는 당시 학살당한 희생자 이름이 한명씩 새겨있다.

학살 희생자:
GHEZZI ANTONIO
LESCAI ANGIOLO
CASCINI LUCA
DONATI LORENZO
PALUDINI AGOSTINO
PETRINI AGOSTINO
TRASENNI DOMENICO
TRASENNI GUIDO
SASSINI DOMENICO
ZAMPAGNI EDOARDO

인근 숲에서 학살당한 희생자:

CANNICCI FERDINANDO
LESCAI SANTI
BISTARELLI FRANCESCA ved CASUCCI
DONATI ANGIOLO

이들 죽은 자들의 영혼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는 건 매년 비석 앞에 바쳐치는 꽃도 향도 아닌 정의가 바로 서는 순간일 거다.

그런데 이런 글도 너무나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필자가 이번 포스팅의 소재로 삼은 사건은 이차세계대전의 전범국인 이탈리아와 독일의 사법공조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다. 즉 서로 가해자의 신분인 두 나라가 민간인의 학살이란 범죄를 밝혀내고 사법조처하는데 협조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5년 진실화해위원회(링크)가 세워진 이래 수 많은 양민학살 사건들이 조사되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수위시절 이미 한번 진실화해위원회를 폐지하자는 논의를 했다가 수면 아래로 잠복한 적이 있고 (출처링크) 올해 4월에는 아예 극우성향의 이재교 인하대 법대 교수를 위원회 위원으로 선출해 버려 위원회 활동을 내부적으로 방해하기도 했다 (기사링크).

최근에는 조선일보가 아예 사설까지 써가면서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예산낭비에

"취미 삼아 과거를 또 한번 뒤집겠다면 국민 세금 쓰지 말고 ‘과거사 뒤집기’ 동호회원들끼리 募金모금을 해서 하는 것이 바른 일이다"

라고 빈정댄다.

과거를 다시 살피는 일은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살아 있는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어두운 역사에서 지혜를 얻고 앞으로 우리 갈 길의 지표를 얻고자 함이다. 이런 문제까지 정치적 놀이개감으로 삼아야 하는지.... 오늘따라 조선일보의 사설이 더 우울하게 다가온다. 이런 신문이 우리나라 최대부수의 신문이란 것이 더욱 더 우울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