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과 개혁이 서로의 실제적 필요에 의해 연대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면 호남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호남이 규범을 좇아 개혁세력을 지지하게 되었다는 논리는 흔히 호남이 더 진보적이고 더 개혁적인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의무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일단 의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 그것은 한계를 모른다. 모든 선거에서 모든 정치 계파는 자신들의 정치적 필요를 완전히 채워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호남을 비난하는데, 그 진의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지역주의가 활용된다. 진보 정당은 호남이 충분히 좌파적이지 않으므로(즉 자기들을 찍지 않았으므로) 지역주의라고 비판하고, 친노는 호남이 충분히 탈지역주의적이지 못하므로(자기들을 찍지 않았으므로) 지역주의라고 비난한다. 물론 한나라당은 호남이 충분히 친한나라당이 아니므로 지역주의라고 비판한다.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결론은 지역주의로서 동일하다.

평소 호남을 진보 개혁의 성지라고 빨아대다가 선거에서 호남이 자기네들 장단에 춤추지 않으면 "알고 보니 호남도 다를바 없다"는 말로 협박한다. 하지만 애초에 호남에게 의무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때 호남이 다를바 없다는 명제는 전혀 협박거리가 될수 없다. 호남의 범속함을 지적하는 것이 호남에 대한 협박이 될수있다고 생각하는 사고의 저변에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만족시켜 주지 않는 호남의 정치적 움직임에 대해서는 인정할수 없다는 일종의 반호남 인종주의가 깔려있다. 즉, 호남의 결집된 표심이나 정치적 결사의 행태가 추상적인 진보주의/개혁주의의 틀을 벗어나, 영남 패권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본질을 드러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지역주의의 본질을 정면으로 응시할때 닥쳐오는 막대한 부채의식과 죄의식을 감당할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라고 할수 있다.

5.18에 대한 과도한 추상화는 5.18의 본질인 영남 패권에 의한 호남 압제를 외면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이다. 5.18이 탈색될수록, 5.18의 본질에서 영남은 제거되고, "위대한 호남인"만 남는데, 이것은 만약 호남인이 위대해지지 않는 경우 곧바로 똥꼬 빨아주기가 철회된다는 점에서, 교묘한 형태의 반호남주의라고 할수 있다. 자칭 진보 좌파 경상도인들이 5.18의 이념적/계급적 부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은 많은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5.18의 본질에서 영남을 제거한뒤, 호남에게 진보 개혁의 면류관을 씌워놓고, 호남이 면류관에서 이탈할때마다 호남을 걱정해주는척 하면서 비난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결국 모든 영광은 그 존재가 불분명한 "위대한 호남인(그들 상당수는 죽었다)"에게 씌워지고, 지금 현실을 사는 호남인은 위대한 호남인을 충분히 계승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듣는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생존한 극소수의 "위대한 호남인"의 실제적 복지에 대해서는 물론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자기들 머릿속에 있는 위대한 호남인은 ptsd나 빈곤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기 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