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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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이념은 숭고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는 사회주의의 이념을, 인간 정신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야심적인 것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 이념은 고상하고 대담하기 때문에 당연히 엄청난 찬사를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만일 우리가 이 세상을 야만에서 구하려고 한다면 사회주의를 논박해야만 한다. 우리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것을 그냥 제쳐놓을 수 없다.」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오스트리아 태생의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사회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국가에서 모든 생산요소와 자원을 통제하고 분배하는 계획 경제 체제". 한 세기에 걸쳐 추진된 어찌보자면 화려한 그러한 시도는 거대한 실패만 불러일으키고 끝나버렸다. 불합리하며 모순점이 많고 빈곤과 착취가 심한 자본주의 사회를 때려부수자(!)는 숭고한 의도로 시작된 사회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자신이 그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마오쩌둥이 시작한 대약진 운동은 수많은 사람들을 빈곤에 빠뜨렸고 3천만명이 넘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스탈린 치하 아래에서 강제 노동과 착취에 시달리던 많은 사람들 또한 희생되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함으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실험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자본주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붕괴하고 사회주의가 필연적으로 도래하리라 예측했던 마르크스의 예언은 틀린 것으로 판정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자유시장경제는 이념 전쟁에서 승리했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불완전성을 지적하고 대안 경제니 공동체 경제니 하는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가진 경제체제를 주장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시도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식적인 대안으로 채택된 바는 없다. 우리는 1990년대에 이루어진 사회주의의 몰락을 직접 눈으로 지켜본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왜 사회주의가 실패했느냐 그리고 왜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없느냐에 어느정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경제에 침투하는 것에 대비하고 지나간 공산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적어도 필자의 생각은 그러한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가? 

 

사회주의적 요소를 쫓아내야 하는 진정한 이유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보자. 그것이 단지 인간의 본성이 선하거나 또는 악하거나 하는 문제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강조하건대 사회주의 중앙계획경제냐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인간이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라는 문제로만 결정지어질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 본성에는 악한 측면도 있고 선한 측면도 존재한다. 사회주의가 인간의 이타적인 면을 부각시키든 자본주의가 인간의 이기적인 면에 호소하든 간에 우리가 진짜로 고려해 봐야 할 점은 우리가 "자연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 세계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러가지 법칙들(중력의 법칙 등등)이 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체제 가운데 어떤 체제가 이러한 자연 세계의 법칙을 고려한 체계인가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은 자연세계의 법칙에 의해 제약된다. 아무리 우리가 중력을 무시하고 하늘을 날고 싶어도 공중 부양을 할 수는 없다. 만약 중력을 무시하고 높은 건물에서 "나는 할 수 있다!"고 소리치며 뛰어내린다면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참혹할 정도의 개죽음만 연출될 따름이다. (혹시 해보고 싶은 사람 있으신가?) 

 

그것(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의 문제)은 "정보의 문제"이며 자연에 존재하는 법칙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간에 이타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행동 조정을 위한 "정보"가 필요하기에 마련이다. 그러한 정보를 모으는 일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그 행동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필연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는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중앙에서 정보를 모으는 것이 자연법칙 상 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사회주의가 실현 가능한가 아니면 불가능한가가 규정된다. 

 

사회주의는 과연 가능한 이상인가? 사회주의의 이상, 그러니까 모든 것이 포괄적으로 계획되고 조정되어 불평등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원을 어디에 투입해야 할지, 사람들의 필요와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만 한다. 경제 계획을 담당하는 중앙 당국(기관 또는 기구, 위원회 등 뭐라 부르던 간에)이 계획을 세우려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수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가 없고 행동할 수도 없다. 사람들의 수요와 공급이 알맞게 맞아떨어져 가야 제한되어 있는 자원이 낭비되지 않고 적절하게 이용될 수 있기에 수요와 공급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계획 경제를 위해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수요와 필요한 공급은 정확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 따라 변하며 사회 곳곳에 분산되어 있다. 다양한 장소와 시간, 여러가지 사건으로 유발되는 조건들이 끊임없기 변하기에 사람들의 필요와 선호 역시 끊임없이 변한다. 가령 날씨 같은 상황이 조금만 달라져도 그러한 정보는 손쉽게 변한다. 예를 들어 기후 때문에 열대우림에서 목재 생산량이 급격히 떨어진다면 그러한 목재를 수입하여 가구를 생산해서 공급하려던 계획도 당연히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소비자의 필요나 상황이 조금만 변해도 수정된 정보를 가지고 계산을 다시 해야 한다. 나 자신 그러니까 개인의 미래에 대한 한치의 정보도 확실히 모르는 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다. 나 자신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조차 확실한 정보를 모른다면 수백만 아니 수천만명의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정보와 당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고 완벽하게 계획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오늘날은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상호 교류하는 거대한 열린 사회다. 그렇기에 그러한 모든 정보를 중앙에서 수집해서 관리하고 처리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장 경제의 가격 체제는 이러한 정보의 폭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인지적 도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수요와 공급에 의해 저절로 형성된다. 그러한 가격 속에는 생산자가 치러야 하는 비용이나 당시 상황, 사람들의 선호나 생각, 목표 등에 대한 정보가 담겨져 있다. 쉽게 말하자면 시장 속에서 형성된 가격은 정보를 담고 있는 "수정 구슬"과 같다. 그러한 "수정 구슬"은 인간이 분산되어 있는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도 없고 처리할 수도 없는 "정보의 문제"를 해결하게 있도록, 그리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에서는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지 않으며 중앙에 있는 관리자에 의해 수집된(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정해진다. 이러한 가격은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가짜 정보를 담고 있음에 불과함으로 이러한 가격으로는 정보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도 없으며 자원의 낭비만이 초래될 따름이다. 모든 정보를 수집 가공해서 하달할 수 없는 정보의 문제,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의 병폐다. 

 

사회주의 국가의 정부에서는 실제로는 불가능한 목표들(당시 상황이 담겨있지 않은)을 개인이나 단체에 할당하며 그럼으로 인해 할당된 계획량을 채우기 위해 어처구니 없는 일도 많이 일어난다. 통계 수치에 대한 교묘한 조작은 물론이고 "철을 녹여 철을 만드는" 만드는 황당한 사태 또한 적지 않으며 할당된 계획량을 어쩔 수 없이 채우려고 사람들을 강제 노동시키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은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 없는 인간 이성의 한계와 관련되어 있다. 만약 인간이 전지전능하다면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전지전능하지 못하고 그러한 인간이 모인 단체인 정부 또한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하이에크는 이러한 사회주의의 오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로 적절히 표현하였다. "사회주의는 인간 이성의 치명적 자만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회주의 이념은 그것이 설사 숭고한 목적이든 더러운 목적이든 간에 그것은 정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실패했다. 이러한 정보의 문제는 자연에 존재하는 일종의 법칙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경제 체제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혹여나 사람들이 직접 마주치고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소규모 원시 공동체 시대라면 이러한 정보의 문제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인센티브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적어도 정보의 문제에 있어서는 관리하는 리더가 직접 보고 당시 상황과 사람들의 필요를 파악해서 적절하게 자원을 배분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더이상 그러한 사회가 아닐 뿐더러 설령 그러한 사회로 돌아간다고 해도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없기에 당장에 생활 수준이 원시 시대 수준으로 퇴보할 것이다. 그러한 폐쇄된 사회에서는 어떠한 문명의 발전도 기대하기 힘들다. 

 

혹여나 원시시대를 동경하는 사람이라면 자본주의 체제를 내다버리고 원시시대로 돌아가서 공동체를 이루며 "고상한 야만인"으로 살아야 더 행복할지 모르겠다. 그러한 야만인이 되든 말든 간에 그건 개인의 자유이지만 적어도 모든 사람이 그러한 야만인이 되면 행복하리라는 착각은 제발 버렸으면 좋겠다. 기근이 닥치면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재앙에 직면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인지 마음 속으로 깊이 자문해봤으면 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사회주의는 좋은 뜻으로 시작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끝은 공멸으로 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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