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이 놓치고 있는 것들 
-민주당 대의 구조가 진짜 문제다-
2010년 08월 12일 (목) 20:18:01 [조회수 : 1182] 김대호 itspolitics@naver.com

韓信인가 무뢰배인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이자, 현재 민주당의 맹주의 한명인 정동영의원이 반성문(http://v.daum.net/link/8689288)을 발표했다. 반성문은 과거 자신의 정치행위에 대한 반성과 향후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주요하게 담았다.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공감을 유보하는 사람도 대체로 반성과 비전의 적확성을 문제 삼기보다는 말한 대로 실천할지, 한마디로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진정성은 관심 밖이다. 정동영의 진정성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보다 반성과 비전의 적확성과 깊이가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반성문은 참여정부의 우클릭 내지 불충분한 좌클릭(민노당, 진보신당, 복지국가소사이어티로 경도)이 범진보 동반몰락의 근원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 온 사람들의 비판을 거의 그대로 수용했다. 여기에는 자신의 정치행위에 대한 부정만이 아니라, 자신을 따랐던 사람, 자신이 실력자로 관여했던 참여정부의 많은 정치행위에 대한 과감한 부정 내지 지나친 폄하가 있다.

정동영의 반성문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지간한 정치인은 결코 할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한 유연함(?)과 과감함과 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좋게 보면 漢나라 건국의 일등 공신 韓信이 젊은 시절 동네 무뢰배들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수모를 참고 그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지나간 행위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토록 집요하게 추구하는 가치가 공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의 행위는 한신에게 수모를 준 무뢰배의 행위가 된다. 정동영은 한신인가? 무뢰배인가? 나는 한신이 되었으면 한다.

흑백만 구분하는 눈으로 총천연색 세상을 보다

어쨌든 
정동영의 반성문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좌클릭이냐, 우클릭이냐, 복지/분배냐 경제/성장이냐는 시각에서 문제의 근원, 혹은 비전의 대강을 찾는 사고방식이다. 이 사고방식의 사촌 중에는 향후 한국이 채택할 경제사회 모델은 유럽형이냐 미국형이냐의 택일로 보는 사고방식도 있다. 어쨌든 이런 유의 사고방식은 거칠게 말하면 흑백만 구분하는 눈으로 총천연색 세상을 재단하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뒤에 밝힐 것이다. 몇 안 되는 그럴듯한 반성 중에도 3선 의원에, 통일부 장관에, 한때 여당의 최고 실세에, 여당의 대통령후보를 쟁취한 사람의 2010년 시점의 반성치고는 그 깊이가 너무 얕다고 볼 수밖에 없는 비판도 여럿 있다. 예컨대 분양원가 공개 관련 자신의 처신에 대한 반성이 그것이다.

비판과 반성의 수준

정동영의원의 말대로, 분양원가 공개와 관련한 노무현 전대통령의 언급은 적절치 못했고, 정동영의원의 처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반성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문제다. 사실 당시 분양원가 공개는 부동산 문제를 진정시키는 처방 중에서 아주 후순위 처방이었다. 실효성 있는 선순위 처방이 많았다는 얘기다. LTV(주택 담보 인정 비율)와 DTI(총부채 상환비율) 규제로 대표되는 금융규제의 도입, 판교 신도시 공급 주택의 공공전세 주택화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오세훈의 시프트(장기 전세)주택이나 이명박이 생색내고 있는, 그린벨트를 까고 지어댄 보금자리 주택도 적어도 분양원가 공개나 반값 아파트 정책 보다는 나은 처방이라고 생각한다.

 복기해 보면 ‘분양원가 공개’나 ‘공개 반대’나, ‘반값 아파트’나 ‘반에 반값 아파트’나 공히 정치인의 생색내기(반응하기)로는 괜찮았을지는 몰라도, 당시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 있는 처방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부동산 폭등/투기 심리라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인 혁신도시, 기업도시, 수도권 신도시(검단) 정책도 주요한 반성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관료 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막지 못한 것 보다는, 관료 사회를 중심으로 추진되어 온 토건족 살리기 정책, (BTL 사업으로 대표되는) 재정 약탈 정책, (6.2 지방선거로 출범한 혁신 지자체를 허탈하게 하는) 정치 무력화-관료 천하를 꾀하는 불합리한 법,제도,시행령, 행안부 지침 등, 너무나 많은 관료(행정) 편의주의 정책, 그리고 검찰공화국, 사법 엘리트 공화국을 만든 불의한 법과 제도 등을 막아 내지 못하거나 혁파하지 못한 것이 진짜 중요한 반성지점이 아닐까 한다.

정치인의 비판과 반성 수준이 나라의 수준과 진보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봤을 때, 너무나 힘센 정치인인 정동영의 반성 수준은 심히 실망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동영의 반성문에는 이 외에도 수긍할 수 없는 비판=반성이 많지만, 현재적 의미가 상대적으로 적고, 자칫 소모적인 ‘과거사 시시비비’로 보일 것 같아서 시시비비를 자제 하겠다. 하지만 이 보다 훨씬 오래된 사건이라 할지라도 현재적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 향후 비전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시시비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진짜로 아쉬운 것

내가 반성문에서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정동영이 뱉어 놓은 말 중에 있는 현저히 틀린 말이 아니다. 그것은 아예 언급을 회피한 주요한 정치행위이다. 완전히 빠져있는 반성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도 만들어 주었고, 지금도 자신을 민주당의 맹주로 만들어 준 상식 이하의 민주당 대의 구조에 관한 것이다. ‘민주’라는 간판을 부끄럽게 하는, 전북과 호남의 과잉 대표성을 보장하는 상식 이하의 대의 구조에 대한 혁파 의지이다. ‘박스 떼기’라는 극성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창당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당원이 누군지도 모르고, 당연히 대의체계가 건실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전체 민심이나 지지자의 표심의 반영을 막는 경선규칙을 고집하여 가장 큰 혜택을 보고, 그로 인해 당에 엄청난 손실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성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사실 전북과 호남의 과잉 대표 체제는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경선 전후해서 줄기차게 지적된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동영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이를 반성하는 사람도, 혁파하려는 사람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5명의 대선 후보들이 다 동의했고, 이미 한참 지난 일을 왜 새삼 들 먹이냐고? 정동영이 대통령후보가 된 것이 그리 배가 아프냐고? 나는 당시로는 민심이 잘 반영되는 경선규칙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정동영이 후보로 뽑힐 가능성이 적지 않았고, 설사 다른 사람이 뽑혔다 하더라도, 게다가 범야권 후보 단일화까지 추가했다 하더라도 이명박을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선 후보 등 각종 공직후보자를 뽑는 경선 규칙에 지지자들의 표심이 반영되는 구조(제도)를 잘 만들어 놓았다면, 하다못해 지역위원장이 대의원을 지명하는 희한한 구조라도 바꿔놓았다면, 유력 정치인의 탈당도, 민주당 계열의 군소정당 창당도 없었을 것이고, 새로운 세력과 리더십도 많이 충원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민주당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세력이 모여들어 가치, 비전, 정책, 매력 경쟁의 향연을 벌이는, 매우 활력 있고 지적이고 매력 있는 정당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썩은 벽에는 글씨를 쓸 수가 없다.

확신컨대 민주당의 공직후보 선출제도를 포함한 대의구조를 상식에 맞게, 지지자의 표심이 많이 반영되게 확 뜯어 고치지 않으면 민주와 개혁을 열망하는 재기발랄한 젊은 사람들을 민주당이 담을 수 없다. 직능 기반이 있는 전문가들이나 직능지도자들도 끌어올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수도권 화이트칼라와 영남 민주, 개혁 세력을 끌어올 수가 없다. 호남 향우회 출신 60~70대 늙은 특무상사들이 허리와 다리와 손발로 기능하는 정당이 '담대한 진보'나 '새로운 진보'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니 소심한 진보, 온건한 중도개혁도 어불성설이다. 썩은 벽에는 글씨를 쓸 수가 없는 법이다.

 정당의 조직 기반이 지금과 비슷했던 김대중 총재/대통령 시절에는 왜 문제가 되지 않았냐고? 김대중 총재/대통령 시절에는 그의 제왕적 권능으로서 집권을 위해 당의 대의 구조를 누르고, 현재 민주당이 결여한 것을 다 끌어왔기 때문이다. 불세출의 큰 정치인 김대중은 ‘김대중 슨상님’을 위해 청춘을 바친, 호남 출신 동생들(?)과 제자들(?)을 누르고, 지금 민주당의 차세대 주자들이 된 386을 끌어왔고, 영남 민주세력(이수인, 김중권, 신국환, 노무현 등)을 끌어왔고, 한국노총위원장, 약사협회장, 간호사 협회장 등을 끌어왔고, 유능한 관료와 전문가들을 끌어왔다. 심지어 개혁적 교회 세력들도 끌어안았다. 그러나 지금은 젊은층, 전문가, 직능, 영남민주 세력을 위해 지분을 떼 준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아니 떼어줄 수 있는 큰 지분을 가진 맹주 자체가 없다. 김대중의 차세대 육성 및 젊은 층 교감 프로젝트의 산물인 민주당 386들 조차도, 이젠 김대중의 큰 구상을 계승발전 시킬 나이와 지위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도통 그런 조짐이 없다. 솔직히 우리 386이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는 김대중을 우습게 봤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김대중이 정말 대단한 정치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늬만 진보, 본색은 반민주

김대중 같은 계몽 군주가 재림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더 더욱 소수파나 신진정치세력이 올바른 노선으로 질기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다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주는 대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정동영의 반성문에서 보듯이 이런 생각 자체가 없다. 반성문에 없다면 곧 있을 출마선언문에라도 있어야 할 텐데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요컨대 지금 민주당과 범진보에게는 좌클릭-우클릭, 유럽형-미국형, 보편적 복지-선별적복지, 사민주의-진보적 자유주의 등이 각축하는 정치 노선(정강, 정책) 이전의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정책 노선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당의 대의 구조(당헌, 당규) 문제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주대환(사민주의 연대 대표)의 말대로 현대 사회의 ‘왕’이나 다를 바 없는 정당의 리더십과 조직 기반과 문화와 능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호남 기득권과 지역위원장 및 대의원들의 기득권의 합리적 조정(전면 포기는 가능하지도 않고, 공평하지도 않겠지만)을 담대하게 주장하지 않는 주자가 있다면 단언컨대 ‘입 진보 혀 개혁’이고, ‘무늬만 민주 본색은 반민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무슨 놈의 진보를 주장하든지 간에……

양극화의 근본 원인

이제 정동영이 주창하는 비전을 보자. 정동영이 담대한 진보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역동적 복지국가와 보편적 복지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줄기차게 주장했고, 사회디자인연구소가 역시 줄기차게 비판했기에 길게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비전을 떠받치는 현실 인식은 의외로 많은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처럼 보여서 언급을 하려고 한다. ‘담대한 진보’를 떠받치는 역사/현실 인식의 핵심은 1997년 말, IMF가 요구한 ‘신자유주의 개혁 이행’ 각서가 오늘날의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정동영은 이렇게 말한다.

“(1997년) 당시만 해도 저는 그 각서 한 장이 초래할 우리 사회의 재앙을 제대로 알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종이가 양극화 문서가 될 줄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결국 자유화, 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유연화의 10년을 거치면서 비정규직은 850만 명으로 늘어났고, 600만 명의 자영업자와 400만 명의 농민들이 몰락의 위기에 내몰렸습니다. 400만 실업자가 집집마다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현실 인식은 결국 자유화, 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유연화에 대한 총체적 반대와 보편적 복지를 대안으로 내세우게 된다. 그러나 결론만 먼저 말하면 이는 친북좌파를 만악의 근원으로 여기는 보수우파의 인식만큼이나, 미국을 만악의 근원으로 여기는 NL파의 인식만큼이나,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자유주의, 시장주의 개혁을 양극화의 근원으로 여기는 담대한 진보파(?)의 인식도 단순무식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정동영 식 통찰의 얕음을 증명하는 내가 가진 통계도 적지 않지만 아무래도 지겨우니까 양재진(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의 논문을 인용할까 한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복지재정”에 대한 토론문, 2010.6.5,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2010년 춘계학술대회)

“소득분배의 악화가 신자유주의적 개혁 (특히 노동시장의 유연화 조치) 때문인가? 물론 신자유주의적 개혁 때문에 가속화된 측면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근본 원인은 아님. 원인에 대한 정밀한 진단이 나와야 올바른 해법이 나옴. 근본 원인은, 대기업-중소기업 격차임. 즉,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문제 그리고 동일 산업내 노동계급이 연대하지 못해 연대임금(solidarity wage)의 정신이 부재한 게 근본 원인임. 정규직-비정규직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대기업-중소기업 격차 문제를 소홀히 하는 오류 발생.

아래 <그림 3>을 보면, 우리나라 소득분배는 1992년을 기점으로 악화일로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음.

<그림 3> 한국의 절대적/상대적 빈곤율과 중산층 규모 추이

 

   

 

Note: Absolute poverty is based on poverty gap ratio; the middle class is defined as households earning from 50% to 150% of median income.
Source: Yang, Jae-jin. 2010.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Korean Welfare State (unpublished manuscript).


- 노동의 연대가 없는 상황에서, 임금과 기업복지의 격차는 정규직-비정규직 균열보다, 대기업-중소기업 균열선을 통해 확대됨.

<그림 4>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 추이
                                                                                                                                (단위: 1,000 원/월)

 

   

 

Source: Yang, Jae-jin. 2010.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Korean Welfare State (unpublished manuscript).

<그림 5> 기업규모별 자발적 기업복지 격차 추이
                                                                                                                               (단위: 1,000 원/월)

 

   

 

Source: Yang, Jae-jin. 2010.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Korean Welfare State (unpublished manuscript).

1997년 경제위기와 노동시장의 유연화 개혁으로 소득분배 악화와 중산층 감소가 일시적으로 가속화된 것처럼 보이나, 원인이 아닌 것은 분명. 왜 1992년인가? 1990~1년부터 시작된 재벌의 신경영전략이 본격화 된 시점임. 핵심은 고용인원의 감축 대신, 자동화와 내부노동시장의 적극적 형성임. 내부노동시장의 형성을 위해 임금인상 기업복지의 확대 등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함 (이를 통해 자동차산업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산업의 대기업노동운동을 잠재울 수 있었음). 이러한 흐름은 1997년 경제위기 후 기업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서 강력한 트렌드로 자리 잡음. 따라서 대기업과 공기업 부문의 안정된 내부노동시장의 근로자가구와 그 밖의 부분 (중소기업, 자영업)의 격차가 심해짐.

따라서, 비정규직 보호나 복지지출만 가지고는 소득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움. 기업별로 분산된 대기업노동운동을 대기업이 함께하는 산별노동운동으로 결집시키는 문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동종산업내에서라도 임금격차를 조금이라도 해소해 나가는 노력이 사회보장 확충 노력과 함께 병행적으로 이루어져야 함“

한국판 양극화의 원인

나는 양극화가 '노동자는 약자고, 단결하면 힘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는 철학으로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1987년부터 약진한 한국 노동운동의 그늘이 짙어지기 시작하던 ‘1992년을 기점으로 시작됐고’ 그 근본원인은 ‘대기업-중소기업 격차와 연대임금(solidarity wage)의 정신의 부재’라는 통찰은, 양극화가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시작됐고’, ‘신자유주의’가 근본원인이라는 통찰에 비해서는 분명히 진일보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역시 여전히 일면만 본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혹시 연대임금 정신(自助, 公平)과 연대투쟁 정신(단결의 확대, 강화로 자본에게서 더 많은 잉여를 가져오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이 만든 것이 있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시장과 국가가 만든 것도 있다. 다시말해 세계화, 자유화, 지식정보화 흐름을 탄 시장(자유로운 소비자 선택권)이 만든 것도 있고, 불공정과 불공평을 방치, 조장하는 불의한 법, 제도, 관행이 만든 것도 있다는 얘기다. 전자는 개방 경제를 취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히 일어나는 양극화로, 길게 말 안해도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후자는 '공평‘ 또는 ’정치경제적 지대=자리세‘라는 프레임이 있어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한국 특유의 양극화다. 이는 대학 정교수/교직원과 시간강사의 격차, 자격증 부문과 (실력은 그에 못지않지만 단지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차별 받는) 비자격증 부문의 격차, 도심요지 부동산 소유자와 비소유자의 격차, 공무원, 공기업 직원 등 공공부문 종사자와 힘없는 민간부문 종사자의 격차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현대.기아자동차 관련 가치생산 사슬을 보면 두 개의 양극화가 겹쳐져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모기업은 세계화, 자유화에 힘입어 정말 잘 나간다. 하지만 하청 중소기업은 매출은 늘어나지만 이익은 저공비행을 면치 못한다. 삐끗하면 바다에 처박힌다. 원청의 노사가 담합하고, 공정거래위가 이들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방조하여 그 이익을 부당하게 빨아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볼 때 훨씬 가치 있는 노동을 하는 하청중소기업의 기술관리직의 처우가 모기업의 단순직에 한참 못 미친다.

사실 같은 가치생산 사슬에 있는 모기업과 하청 중소기업의 이익률 격차 어느 나라나 다 있긴 하지만 한국이 유독 심한 편이다. 원하청 상생정신, 연대임금/공평임금 정신, 정부의 공정거래 감독 의지의 부재 탓일 것이다. 이는 사실상 독과점 기업인 통신사, 방송사-정동영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금융기관 관련 가치생산 사슬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므로 한국판 양극화는 불공정과 불공평을 방치, 조장하는 무능한 정치, 행정, 사법, 언론과 강하고 몰염치한 이익집단과 바닥 현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모른채 하는 자칭 진보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잘나가는 수출대기업이나 내수 독과점 기업과 연결된 하청 중소기업(종사자)은 좀 나은 편이다. 그 보다 못한 존재가 중국산 값싼 제품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영세기업(종사자)과 넘쳐나는 외국인 노동자에 의해 거의 15년 이상 처우가 답보 상태인 임시.일용 노동자와  대형 마트/할인점과 SSM에 무너지는 동네 슈퍼 종사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은 너무 취약하다. 패자부활전을 담보하는 장치도 취약하다. 이들이 한쪽 극이고, 다른 쪽 극은 1인당 GDP 수준과 노동의 양.질을 감안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처우를 누리는 대기업, 공공부문, 금융업, 부동산 부자 들이다. 이들이 미국과 달리 좁은 공간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심리적 격차와 억울함이 얼마나 커겠는가! 

단순화하면 한국의 양극화가 유달리 극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한쪽은 세계화, 자유화, 민주화, 지식정보화, 저금리, 대형화 등으로 인해 대박을 치고, 다른 한쪽은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쪽박을 차는 구조에서, 다른 나라와 달리 대박 부문의 고용 유연성은 없고(따라서 고용 확대가 지극히 곤란하다), 처우는 한없이 올라가고(연대임금, 공정임금 개념 자체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세금을 왕창 내는 것도 아니고, 자본도 노동만큼 화전민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쪽박 부문을 떠받치는 사회안전망은 취약하고, 패자부활전 장치도 취약하고, 정부는 외국인 단순 노동력 수입에도, 불공정 거래에도 너무 관대하고, 곳곳에 실력있는 약자의 도전을 원천봉쇄하는 자리세가 그득하기 때문이다.

손가락 세 개는 자신을 향한다

정동영을 포함하여 민주당 유력자들이 자신의 부당한 정치적 기득권을 내 놓는 것이 지극히 힘들 듯이(내 놓기만 하면 오래지 않아 집권이 유력시되는 정당으로 변모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힘 있는 자본, 노동, 공공부문, 지대가 큰 기득권자들도 자신의 기득권을 내 놓는 것이 힘든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친북좌파, 미국, 신자유주의에 독박을 씌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어떤 대상을 가리킬 때 검지가 대상을 향한다면, 엄지는 하늘을(불가항력의 상징), 나머지 세 손가락을 자신을 가리키는데서 보듯이, 양극화의 원흉 중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친북좌파나 신자유주의나 민주정부 10년을 성토하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는 청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직장인 관료, 대기업, 공기업, 방송사, 금융사, 변호사, 교수 출신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자신이 속한 가치생산 사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과거에 무엇을 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진정한 진보나 진정한 보수를 자임하려면 자기 자신의 편안한 삶을 떠받쳐 온 자기 직장, 직능의 부당한 기득권(자리세)에 대한 혁파 내지 적정화 의지가 핵심이 아닌가 한다. 전대협이 이름을 날리던 시절, 대학생들이 자주 부르던 노래 가사 중에 식민지에서는 '풀 한포기 하나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가사가 있었다. 이처럼 가치생산 사슬이 건전하게 형성된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사회적 강자나 기득권자 전체가 사실상 화전민질과 도적질을 하는 상황에서는 양극화로부터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장이 과잉인 곳에는 적절한 규제와 복지를, 시장이 과소한 곳에는 시장과 경쟁을, 반칙과 특권이 난무하는 곳에는 상식과 원칙을, 각종 불의가 난무하는 곳에서는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심 진보가 문제인가? 無腦, 無恥 膽大진보가 문제인가?

검찰의 엄청나게 과도한 자의적 권능을 그대로 놔두고(민주적 통제, 견제, 감시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고) 민주정부가 불간섭, 불개입=정치적 중립화를 선언하는 것은 하책은 아니지만 상책이 될 수 없고, 지자체 관련 불합리한 법,제도(행안부의 과도한 간섭, 선출직의 인사권 행사 범위에 대한 지나친 제한, 각종 감시 시스템의 미비, 불합리한 행정체계 등)를 그대로 놔두고 자치, 분권, 지자체 탈환을 외치는 것 역시 하책은 아니지만 상책이 될 수 없듯이 엄청나게 심각한 사회 전반의 몰상식, 무원칙과 반민주적 시스템을 그대로 놔두고 복지를 부르짖고, 좌클릭을 외치고, 당권을 탐하는 것 역시 하책은 아니지만 상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연대정신이 넘치는 따뜻하고 안정된 복지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누릴 사람이 누리도록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적게 누리게하는 억울함이 없는 사회, 공평한 사회, 정의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와 정의의 순서를 바꾸면 안된다는 것이다.  진보는 복지를 작은 목소리로 외치는 소심함이 문제가 아니라, 무뇌, 무치 하면서 담대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복지 이전에 정의와 상식이 있다는 것을 진보도 보수도 까먹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민주당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집권을 기대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리터머스 시험지는 역동적 복지국가와 보편적 복지를 당 강령에 박느냐 못 박느냐가 아니라, 당의 대의 구조를 개혁해서 젊은 사람, 영남 민주세력, 전문가들, 직능 지도자 등에게 한번 게임을 해볼 만한 당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탁월한 배우

나는 한국 정치를 영화산업에 비유하면서 배우(선출직 공무원)나 배우 후보는 넘쳐나도 작가나 작가 후보는 너무 적고, 영화 기획사(정당)는 너무 부실하다고 말해왔다. 그래서 나는 좋은 작가가 되는 것과 좋은 기획사를 만드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말해왔다. 또한 자신이 연기하고 싶은 것만 연기하고, 대중이 보고 싶은 연기를 하겠다는 배우 마인드가 없다면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배우를 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노무현이고, 배우에 정말 잘 맞는 사람이 정동영이다. 이것이 정동영의 위대함이자 위험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노무현이 정동영 보다 훨씬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결행한 튀는 반성 행위 하나만 봐도 정동영이 얼마나 배우기질이 뛰어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동영은 좋은 작가를 만나고, 얍삽함을 제거하고, 진짜로 겸손해지면 꽤 괜찮은 정치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잘 될까 의문이지만 정동영은 얼마든지 엄청난 변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니 기대를 완전히 접을 수는 없다.-끝-

사족) 돌이켜보면 노무현은 복지나 좌클릭 이전에 반칙과 특권 해소로 상징되는 원칙과 상식이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안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원칙과 상식이 대한민국의 바닥 현실에서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도 잘 몰랐다고 생각한다. 또한 원칙과 상식을 너무나 비정략적으로 부르짖었다고 생각한다. 분양원가 공개 반대, 당정분리, 대연정, 개헌, 언론개혁 등이 대표적이다. 내가 비판하고 또 아쉬워하는 것은 노무현의 원칙/상식 실현 의지와 김대중의 정략을 결합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략(정치인은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검어야 한다고 했던가?)과 원칙.상식 실현 의지가 결합했다면, 또 바닥현실을 좀 더 정확히 알았더라면 분양원가 공개, 당정 분리, 대연정, 개헌 등이 필요하고 옳다고 해서 대통령이 앞장서서 주창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좌.우 이전에 기본 원칙과 상식이 있다는 것,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기본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히 던지는 것이 한국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발전의 핵심인 줄도 모르기 때문에, 노무현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무현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 노무현을 과도하게 폄하하는 것을 맘 편히 들을 수 없다. 누군가는 나에게도 노무현을 너무 모른다고 동일한 비판을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