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어찌어찌하여 아크로를 알게 된 사람입니다. 괜찮은 곳이라 생각하여 가입까지 하게 되었는데요, 요즘 담벼락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서 좀 많이 실망하고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엄청 씹어대는 노빠 중의 한사람이고요. 서프에 가끔 글질하고 있지만 그닥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는 못합니다. 오늘 저녁먹고 심심해서 써본 글입니다. 서프에 올렸기로 이곳에도 한번 올려봅니다. 뭐 안주거리 없는 분들에게 제격인 그런 글이네요. 그냥 예쁘게 봐주셨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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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벗는 사회
, 무너지는 극장 - 두 교수의 논쟁에 부쳐

 

대학시절 구문론 교수 한 분은 자신이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의 수재자였다고 항상 자랑을 했었는데, 사실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좀 실력이 있는 것 같기는 했고 촘스키를 엄청나게 신봉하는 일종의 신도와도 같은 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노엄 촘스키를 우리말 식으로 읽으면 촘스키놈, 혹은 쫌스런 놈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었다.

 

언어학 분야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의 신적인 위치에 있었던 촘스키였던 만큼 이를 견제코자 도전하는 학자들이 항상 있어왔던 모양이다. 가끔은 제자들도 촘스키 이론에 반기를 들곤 했었는데, 그럴때마다 촘스키는 아주 탁월한 반증과 논증으로 이들을 제압하곤 했었다는 얘기다. 학회에서 제자들이 반대 이론의 논문을 발표하면 째려보기까지 했다나 어쨋다나.

 

하여튼 구문론 교수 얘기에 따르면 촘스키와 크게 논쟁을 벌였던, 뭐 라이벌 비슷한 모 교수가 있었다고 한다.(이름을 들었는데 당근 까먹었음). 불꽃튀는 대결이 있기는 했지만 이 또한 촘스키의 승리로 귀결되었단다. 역시 당대의 거목을 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논쟁에서 패한 교수는 곧 대학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구문론 교수가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그 교수를 만날 일이 생겼기로 어찌 어찌 소수문하여 그 교수를 찾았는데, 깜짝 놀랐다는 얘기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머리에 밀가루를 허옇게 뒤집어 쓴 채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워낙 우스개 소리를 실실 섞어가며 한 얘기인지라 얘기 전체의 사실성에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믿기로 했다. 적어도 상당 부분은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만 구문론 교수의 얘기만은 귀 기울여 들을 만 했다.

 

논쟁에서 진 교수가 학교를 그만둔 데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한 결코 학교측으로부터의 어떤 압박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해당 교수가 논쟁에서 진 것으로 인해 학자로서의 자존감을 상실한 것 때문도 아니라는 것이다. 요는 논쟁에서 패한 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그동안 후학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가르치고 있었음이 밝혀진 것이고, 따라서 교수로서의 자격이 없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결과하는 것이었다. 결국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학생들을 계속해서 지도하는 것이야말로 학자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자존감을 크게 망가뜨리는 일이기 때문에 아마 그 점이 그를 강단에서 내려오게 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 천안함 사건과 관련, 두 뛰어난 교수가 상아탑에서 발을 반발짝쯤 아래로 내딛었다. 송태호 카이스트 교수와 이승헌 버지니아 대학교 교수, 두 분이다. 모두가 이 분야에서 내노라 하는 분들이요, 적어도 해당분야에서만은 우리같은 일반인들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분들이다.

 

하지만 어쩌랴. 두 교수 중 한명은 분명 더 이상 해당분야의 권위자로 설 수 없는 위치에 있게 됐다. 누구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상반된 두 견해를 모두 포용할 수 있을 만한 물리학적 이론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니 둘 중 어느 하나는 이제 더 이상 권위자가 아닌 것 또한 분명할 터이다.

 

천안함이 폭발여부는 정말 큰 국민들의 관심거리이지만, 나에게 더 큰 관심거리는 논쟁의 결론이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줬을 때, 다른 한 편에게 부여되는 그간 최고 권위자로서의 책무이다. 과연 그는 계속 대학에 남아 제자들에게 자신의 어설픈 지식을 계속 팔아먹을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 자신의 존엄성을 살려 강단을 떠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제에 나는 제안한다. 두 교수 중 어느 누구라도, 혹은 둘 다, 자신있게 이렇게 선언해보길 바란다. “내가 이 논쟁에서 지는 순간, 나는 강단을 떠나겠다. 상대도 그러기를 바란다라고. 아니 정말 논쟁에서 졌을 때 미련없이 강단을 떠나는 시원한 모습을 한번 보여보기 바란다. 그럴 수 있다면, 비록 그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판단과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교수라 할지라도 나는 그에게 인간적인 존경심을 한치의 아낌도 없이 표명할 것이다. 그 교수는 논쟁에 이기고 지고를 떠나 적어도 어느 한 쪽이 말하는 정치적 시류, 혹은 다른 쪽이 말하는 포퓰리즘에 발로로서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한 진실성이나 자신감도 없이 어찌 대학의 교수가 상아탑에서 발을 함부로 빼 속인들의 일에 참견할 수 있으랴.

 

논쟁에 뛰어든 교수들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기실 네티즌은 소위 극장의 우상을 무너뜨리는 존재들이다. 네티즌의 세상에서 그동안 숭앙받아왔던 권위자들의 헛된 말이나 평론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래서 조선은 좆선이 되었고, 동아는 똥아가 됐다. 하필이면 두 교수들은 무너지고 있는 극장의 두 주연배우 꼴이다. 두 교수 중 하나는 필경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키득거리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여전히 스스로를 스타인양 착각하며 배우질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리는 언제쯤 약발 다한 배우가 화려한 배우 옷을 벗고 제 발로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 그런 사회에 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