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이명박이가 개각이랍시고 해논 꼴을 보니 확실히 민주주의가 10년인지 20년인지 후퇴했다는 말이 실감은 난다.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제대로 된 국가란 매사가 시스템에 따라서 돌아가는 국가를 말하며 제대로 된 정치란 일반인도 예측이 가능한 정치이다. 일을 잘했으면 누구나 상을 받고 일처리를 잘못하면 합당한 벌을 받는 체제 하에서 누구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점차 승진해서 조직의 장도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반면 후진국일수록 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무리 일을 잘못해도 조직의 대빵에게 아부하거나 잘 보여서 포상을 받고 승진하는 체제에서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할 생각이 들 리가 만무하다.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어디선가 자기 맘에 드는 자를 골라 아무도 예측 못한 인사를 2인자 (아무리 명목상이라지만) 자리에 앉히는 식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후진국 타입의 인사이다.

하긴 좃선일보에서 누군가도 말하긴 했지만 지금은 국무총리라고 국가의 2인자라 봐주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명박이 1인자라 치자면 (비록 대통령 되고 나서 조선일보 기념파티에서 방우영에게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절하는 굴욕을 겪긴 했지만 ^^) 2인자로는 누구를 들 수 있을까? 이번에 김뭐시기라는 얼굴 커다란 듣보잡 친구가 총리가 됐다고 해서 그를 2인자로 봐주는 사람은 아마도 그 자신을 포함해서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박근혜가 한나라당에서 가장 큰 계파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그 여자는 2인자라기보다 이명박의 정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반적으로는 자칭타칭 '왕의 남자'라 불리는 이재오가 2인자로 칭해지는 것 같은데 앞으로의 일은 알 수가 없다.

은하영웅전설에서는 오벨슈타인의 입을 빌려 "정치에서 2인자는 필요없다. 유능하면 유능한대로, 무능하면 무능한대로 말썽을 일으킨다"고도 하던데 난 다나카 요시키의 이 말이 실제 정치공학에서 어느 정도로 타당성을 갖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과거 정권에서 2인자들의 말로가 어떠했더라? 끝이 안 좋았던 경우도 있지만 뭐 그럭저럭 일 잘 하고 물러났던 사람도 꽤 있었던 같은데... 아예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국무총리건 뭐건 일반적으로 역대 정권의 2인자들에 대해 좀 기억을 더듬어 볼까 한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담벼락에서 어떤 횽이 노재봉에 대해 더 자세히 써달라는 요청을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자유당 때는 2인자라면 부통령을 말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고 또 어떤 친구는 명실공히 정권 2인자였지만 공식적인 직책은 없거나 비교적 낮았던 적도 있었던 것 같으니까...

이승만 정권:

조병옥: 보통 이사람은 이승만의 정적으로 알려져 있어서 이승만 정권의 2인자라는 말이 어색하긴 하다. 그러나 해방 직후 친일파 경찰체제를 구축한 이래 그는 이승만의 충실한 추종자였고 그 가운데 선두주자였다. 장택상 등의 라이벌이 있긴 했으나 대중의 지지도나 카리스마 등에서 한참 미치지 못했으며 이승만의 종신집권 야욕만 아니었으면 자연스럽게 권력은 그에게로 이양됐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이승만과의 결별 후에도 과거 "빨갱이들을 때려잡은" 그의 공을 높이 산 바, 우익측에서도 그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사람도 우익테러의 후유증으로 선거를 목전에 앞둔 채 사망한 걸 보면... 확실히 테러는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
그에게는 정치인 아들이 둘 있었는데 그 중 조순형은 깐깐하고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 컨셉으로 나가는 반면 그의 형인 조윤형은 엉뚱하게도 이쪽에서 가서도 형님하고 저쪽에 가서도 형님하며 앵기는 유들유들한 인물이었다. 독재정권과 양김씨가 치열하게 맞붙던 그 험한 시기에 이런 박쥐 이미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기에 (뭐 요즘도 마찬가지겠지만) 그의 정치생명은 그리 길지 못했다. 사실 그래서 나는 조순형이 비교적 잘 나갈 때도 그의 깐깐 이미지를 100% 신뢰하지는 못했다. 혹시 형의 실패를 거울삼아 반대로 나가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에...

이기붕: 정권 말기의 2인자라면 어쩔 수 없이 이자를 들어야겠지.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이 친구에 대해 악마 취급을 하는 것 같다. 이승만 반대파들은 그의 인사 및 정책의 실패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례로 이자를 들먹이는 반면 이승만 지지자들은 당시 정권의 잘못을 모두 이자에게 뒤집어 씌우고는 시침 딱 떼고 "각하께선 모르셨다" 드립을 친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이기붕이 그 정도로 욕을 먹어야 할 이유는 없다. 우선 일제시대의 행적을 보면 그는 어떤 기준으로도 친일파라 불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창씨개명을 거절하고 오직 사업경영에만 몰두하였으며 일제가 반체제 인사들을 숙청한다는 정보에 한동안 숨어 지내다가 광복을 맞았다. 또한 6.25때 아무 문제 없으니 모든 국민은 생업에 종사하라는 녹화방송과 함께 발바닥에 불이 나게 남쪽으로 튄 이승만과 달리 그는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에도 끝까지 남아 자기 업무를 끝마친 후에야 남하했다. 국민방위군 사건 때 관련자들을 엄격히 처벌하려 하다가 모함을 당해 자신이 죽을 고비를 맞기도 했다. 다른 건 다 그만 두고 4.19때 제꺽 하와이로 날라버린 이승만에 비해 일가족이 권총자살을 한 것만 보더라도 뭔가 책임을 지는 자세가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도 천사는 아니었으며 "총은 쏘라고 준 거지 가지고 놀라고 준 건 아니다"는 말이 엄청난 망언인 건 분명하나 대개의 경우 말만 가지고 사람이 다치지는 않는다. 그의 아내인 박마리아에 대한 사람들의 멸시와 증오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원시적 사고방식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박정희 정권:

김종필: 대체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 하에서는 이러니저러니 견제를 받기는 했어도 전체적으로 볼 때 2인자는 이사람이라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5.16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박정희는 그냥 가오마담이었고 실제 일처리는 그를 비롯한 젊은 장교들이 다 해냈다고도 하더군. 그런데 어쨌건 나는 이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는 여러 가지로 보아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나는 머리좋은 사람을 좋아하거든... ^^ 우선 그는 군인답지 않게 (군인양반들 죄송) 교양이 상당히 넓고 많은 책을 읽었다. 생전에 김대중과 폭넓은 대화가 가능했던 유일한 인물이라고도 하지 않나? 그리고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유신 말기 국회에서 김영삼을 제명할 때 반대표가 딱 한표 나왔고 이게 그의 것이었다는 얘기도 있던데 사실인지는 모르나 아직까지 반론이 나오지 않은 걸 보면 꽤 근거있는 얘긴 것 같기도 하다. 정치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자칫하면 주위 사람들의 부추김에 넘어가 무리한 일을 벌이는 경우가 흔한데 그는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거기 맞추어 최대한 자신의 몸값을 올림으로서 아직까지 생존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결점도 있다. 그는 확실히 1인자가 되기에는 뭔가 2%쯤 부족한 게 있었다. 대세에 따라 흘러가는 일은 잘 하는데 정말 목숨을 걸고 덤벼들어 가능성은 작지만 보상이 엄청나게 큰 일을 성공시키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그럼 5.16은 또 뭐냐...? 더이상은 나도 모르겠다. -_-

이후락 윤필용 박종규 차지철 김형욱 김재규... : 난 몰라... 아무튼 내가 아는 건 박정희가 죽은 후에는 공화당에서 일치단결해 김종필을 대표로 밀었다는 것이다. 그들도 바보는 아니었을 테니 뭔가 이사람만이 자신들을 이끌어줄 희망이라는 계산이 있었겠지.

최규하: 정권말기에 외교부장관을 거쳐 국무총리를 지내시다가 어찌어찌해서 대통령까지 역임하신 분이다. 결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의 허우대를 자랑하는 인물이 됐지. (최악이야 당연히 박정희고 ^^) 그런데 이사람에 대한 당시의 여러가지 루머 (당연히 찌질이짓 했다는 얘기들 뿐이다. 1. 장관들이 보는 앞에서 전두환에게 쪼인트를 까였다. 2. 퇴임 후 바로 백내장 치료차 도미했는데 그게 실은 홧병이었다. 등등...)에도 불구하고 실은 예상보다 강한 강단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12.12 사태 때 신군부 세력들의 여러 차례 강요에도 불구하고 국방부 장관을 데려오지 않으면 절대 계엄사령관의 체포를 재가할 수 없다고 선언했으며 그 말대로 시행했음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울러 5공 청문회 당시 증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에 그 약속을 지킨 점만 보더라도 그는 자기가 한 말은 지키는 인물이며 나름의 용기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그 방향이 올바로 되었는지는 논란의 여지도 있지만...)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 나머지는 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