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개의 노래를 들으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겼다.

그 내용을 잠깐 나누고싶다.

얼마 전 '슈퍼맨'이란 노래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들었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굳이 '접하다'는 표현을 쓴 것은 이 노래를 원래 가수인 '노라조'의 목소리를 통해서 듣지 않고 노래방에서 우리 회사 동료 직원의 목소리를 통해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워낙 노래를 잘하는 직원이다보니 처음 들은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뻑 가서' 이 노래의 애호가가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원작자(라고 해야 하나?)인 노라조의 노래를 제대로 듣고 나서야 비로소 '들었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결벽증이 작용했던 것이다.

암튼 이 노래의 최대 매력은 가사인 것 같다. 리듬도 경쾌하고 좋지만 가사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좀 길긴 하지만 소개한다.

<슈퍼맨>
아들아~ 지구를 부탁하노라
아버지~ 걱정은 하지마세요

바지 위에 팬티 입고 오늘도 난 길을 나서네

아들아~ 망토는 하고 가야지
아뿔싸~ 어쩐지 허전하더라

파란 타이즈에 빨간 팬티는 내 charming point
오늘도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돌아라 지구 열두바퀴                      
올빽머리 근육빵빵 난 슈퍼맨
지구인의 친구 난 슈퍼맨

멋지구나 잘생겼다
대인배의 카리스마 사이즈가 장난아니지

어쨌거나 근육빵빵 난 슈퍼맨
지구인의 친구 난 슈퍼맨
유사품에 주의해요
오각형에 S자야
위아래로 스판 100%

아들아~ 아침은 먹고가야지
아버지~ 빈속이 날기편해요

서울대전대구부산 찍고나서
독도 한바퀴

오늘도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돌아라 지구 열두바퀴

올빽머리 근육빵빵 난 슈퍼맨
지구인의 친구 난 슈퍼맨
멋지구나 잘생겼다
대인배의 카리스마 사이즈가 장난아니지

어쨌거나 근육빵빵 난 슈퍼맨
지구인의 친구 난 슈퍼맨
유사품에 주의해요
오각형에 S자야
위아래로 스판 100%

오늘도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돌아라 지구 열두바퀴

올빽머리 근육빵빵 난 슈퍼맨
지구인의 친구 난 슈퍼맨

위기때면 나타난다 밤하늘의 박쥐모양
아참 그건 배트맨이지

어쨌거나 근육빵빵 난 슈퍼맨
지구인의 친구 난 슈퍼맨

위험할땐 불러줘요 언제든지 달려갈께
나는야 정의에 슈퍼맨

http://www.youtube.com/watch?v=giiw2rLX3DY


인터뷰를 보니 이 노래를 부른 노라조 멤버들은 원래 록 가수들인 모양인데, 처음에는 이 노래를 듣고 한 명이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한다. 한마디로 천박하다는 것이겠지.

이 노래가 천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음에 든다. 아니, 어쩌면 그 천박함이 바로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진짜 요인인지도 모른다.

이 노래를 처음 들으면서 나는 아침에 출근하는 월급장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월급장이를 향해 "지구(실은 가정 아니 가정 경제 또는 생계겠지)를 지켜달라"고 부탁하는 아버지. 왜 어머니가 아니고 아버지일까? 어머니는 어디 갔을까?

망토는 하고 가야지... 아뿔사 어쩐지 허전하더라... 이 부분에서 '직장인의 비애'는 더 분명해지는 것 같다.

아들아~ 아침은 먹고가야지... 아버지~ 빈속이 날기 편해요. 이 부분도 마찬가지다. 아침을 못 먹고 출근하는 21세기 대한민국 직장인의 전형이다.

이 노래 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헐리우드 영화 슈퍼맨의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미지와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직장인의 '누추한 일상'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조하며 풍자의 효과를 얻어낸다.

'바지 위에 팬티 입고'라는 부분도 범상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바지 속에 입어야 할 팬티를 바지 위에 입는 것은 영화 속 슈퍼맨의 모습에서는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그 모습을 오려서 스크린이 아닌 현실 속 번잡한 출근길 버스나 지하철의 인파 속에 삽입해보면 비로소 그 환상적 이미지의 비극성이 드러난다. 감추어야 할 은밀한 모습을 바깥에 드러내면서, 그 모습을 과시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일상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런 현실의 모습 속에서는 그저 영화 속 슈퍼맨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폭소가 되고, 풍자가 되고, 신랄한 비틀기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원래 예술이 하는 기능이다. 설명할 필요없이 그저 어떤 상황 속에 대입하고 드러내 보여주기만 해도 사람들의 격렬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

올빽머리 근육빵빵, 사이즈가 장난 아니지, 멋지구나 잘생겼다, 대인배의 카리스마...등등

내 수준이 워낙 바닥을 기기 때문인지, 나는 이 노래와 가사에서 감동을 느꼈고 정말 오랜만에 우리 속에, 우리 현실 속에서 풍자의 정신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원래 대인배란 말은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소인배(小人輩)란 말은 있어도 대인배라는 말은 없다. 무리 배(輩) 자가 그다지 좋지 않은 의미를 가진데다가, 소인에 반대되는 개념의 대인이나 군자가 그렇게 무리를 이룰 정도로 다수인 경우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인배'란 말은 비속어이고 엉터리 표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사에서 대인배라는 표현은 너무 적절하다. 풍자가 갖는 효과 때문이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이 노래가 처음 나온 것은 아마 월남 파병이 한참 이슈이던 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린 시절 처음 들은 이 노래의 인상은 기묘했다. 정말 상스럽기도 했고, 정말 어린 생각으로도 너무 뻔하게 보이는 남녀간의 수작을 이렇게 추잡하게 표현할 수 있나... 이런 생각도 했다.

김상사... 내 맘에 들었어요... 너무 얄팍하고 유치했다. 군가풍의 그 북소리도 거슬렸고.

하지만 몇 년 전 친구와 함께 지방에 내려가다가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노래 자체도 옛날에 들었던 것보다 훨씬 좋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노래를 부르는 김추자의 그 목소리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저렇게 요염한 색정(色情)이 저렇게 농밀하면서도 저렇게 내밀(內密)하게 사람의 목소리로 표현될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유혹하면서도 가냘프고, 농밀하면서도 어렸다.

문득, 옛날에 읽은 <금병매>에서 난봉꾼 서문경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자의 얼굴이나 몸매보다 그 목소리에 끌려서 크나큰 사건을 저지르는 그 에피소드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 나도 이제 저런 목소리에서 뭔가를 충전하게 되는 나이가 된 것일까?

신중현은 당시 애국적인 분위기 조성을 요구하는 군바리들의 강요에 못이겨 단 하루만에 이 노래를 작곡하고, 나중에까지도 이 노래를 자신의 작품으로 여기지 않을만큼 수치스럽게 여겼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노래가 좋다.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과도 묘하게 어떤 일치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다름이 아니라 신중현의 노래에는 과거 '곡마단(서커스단)'의 정서가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그것이다. <김상사>의 가장 앞부분과 가장 뒷부분에서 아련하게 들리는 그 나팔 소리... 우렁차게 울리면서 전의를 부추기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트럼펫 소리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연약하고 구슬프게 들리는 그 나팔(다른 악기 이름보다 그냥 '나팔'이 더 적절하다) 소리가 나에게는 어쩐지 '곡마단'으로 상징되는 그 시대와 그 무대와 그 배경과 그 사람들과 그 분위기를 순식간에 떠올리는 그런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8fkJgTCg0C4&feature=player_embedded


옛날에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고 했다는데, 다른 노래는 몰라도 이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만은 다른 어느 가수도 흉내내지 않으면 좋겠다. 얼마 전 <님은 먼 곳에>라는 영화에서 수애가 불렀다는 이 노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정말 노래 실력이라는 것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구나, 가수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