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를 유지하지 않을 업체는 인수 자격이 없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힐 얘기

쌍용차 인수에 예상 외로 많은 업체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르노삼성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르노닛산그룹, 인도 최대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제조업체 마힌드라그룹, 인도 타이어업체 루이아그룹, 대우버스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영안모자, 국내 사모펀드인 서울인베스트,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독일계 금융펀드 이렇게 6곳이다.

그 중 가장 주목을 끄는 업체가 르노닛산이다. 르노닛산의 인수 의향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그룹이 현대기아자동차를 능가하는 개발, 생산, 판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강력한 글로벌 자동차 그룹이기 때문이다. 2009년 현재 닛산은 일본, 북미, 중국시장 등을 중심으로 335만대를 판매했고, 르노는 유럽 시장 등을 중심으로 272만대를 판매하였다.

참고로 2009년 현재 현대차는 국내외 총 판매대수가 310만대(이 중 해외공장 생산은 149만대), 기아차는 153만5천대(이 중 해외 공장 생산 39만대)이다. 여기에 더하여 현대․기아 합쳐서 약 20만대 분의 CKD 수출이 있다. 따라서 현대기아차 그룹은 CKD를 합치면 대략 480만대 가량의 차를 판매했다. 이 중 국내 판매분은 111만대 수준이다.

둘째, 르노닛산 그룹의 동아시아, 북미, 기타 이머징 마켓(인도, 러시아, 중동 등) 전략의 중심인 닛산이 글로벌 자동차 기업 중 최고의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고(2010년 상반기 결산 결과 전년 동기 대비 31.1% 증가), 르노닛산 그룹의 한국 자회사인 르노삼성(부산공장)도 국내외 판매 호조로 인해, 제2공장 신설을 포함한 생산능력(현재 연 25만대) 증설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 금융권, 노조, 경기도가 닛산을 구세주로, 0순위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간주하는 징후가 보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쌍용차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부와 매각주간사 쪽으로부터 “한국 자동차산업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기업에 가점을 준다” “현대.기아차 그룹의 일방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국내 경쟁 구도 형성에 큰 의의를 둔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닛산에 가점을 주겠다는 얘기다. 닛산의 인수를 최상의 시나리오로 생각한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결론만 먼저 말하면 닛산의 쌍용차 인수는 쌍용차 협력업체와 판매 네트워크와 중장기적 발전 잠재력에 매우 파괴적인 영향을 줄 것이 확실하기에 결코 최상의 선택이 될 수 없다. 청산보다는 나은 선택이지만 아주 나쁜 선택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당장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생존투쟁을 하는 쌍용차 이해관계자들이 하늘이 두 쪽 나도 결사반대할 사안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피하려고 노력해야 할 사안이다.

닛산이 필요한 것은 쌍용차가 아니라 쌍용차 공장 일 뿐이다.

닛산의 인수 시도는 닛산과 르노삼성의 처지, 전략, 이해관계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닛산과 르노삼성이 필요한 것은 쌍용차 공장 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공장 부지와 유순한 노동력-작년 쌍용차 사태로 확보 되었다고 본다-과 몇 푼 안 되는 낡은 건물 및 설비(라인)뿐이다.(자동차 산업 경쟁력에서 완성차 공장의 차체-도장-조립 설비는 별거 아니다.)

분명한 것은 닛산과 르노삼성이 필요로 하는 것은 쌍용차의 R&D 능력, 쌍용차라는 브랜드, 쌍용차가 가진 국내외 판매네트워크, 쌍용차 협력업체가 아니다. 닛산이 인수하면 당장은 SM3 등 르노삼성에서 생산되는 노후 모델의 쌍용차 위탁 생산이 가능할 것이다. 이 때문에 쌍용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로 시간은 분명히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부품은 르노삼성의 기존 협력업체가 공급하고, 판매 역시 르노삼성의 기존 네트워크가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닛산이 인수하면 현재 쌍용차가 가진 몇 개 모델의 판매도 단기적으로는 늘어날 것이다. 르노닛산의 글로벌 판매네트워크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르노삼성 모델의 위탁 생산 경우와 달리 쌍용차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판매네트워크도 바쁘게 만들 것이다. 아마 닛산에 의한 쌍용차 인수를 쌍수 들고 환영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것을 기대하기 때문 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심하게 말하면 조삼모사 우화를 낳은 원숭이 수준의 머리를 가진 사람들의 한치 앞도 못 보는 환호이다.

당장이 아니라 미래가, 노조원이 아니라 쌍용차 네트워크가 문제다.

1년, 2년, 3년이 지나가면 쌍용차 공장 라인에는 쌍용이 개발한 모델이 사라지고 르노닛산이 개발한 모델 또는 (이를 받아) 르노삼성이 변용한 모델들이 생산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르노삼성 R&D 센터와 달리) 비록 작지만 자신의 힘으로 자동차를 개발, 생산해오던 쌍용차 R&D인력의 상당수는 할 일을 잃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인력은 고급 기술자들이고 숫자도 많지 않기에 계속 자동차 업계에서 일을 하긴 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 자동차 업계인지, 중국, 인도, 러시아 자동차 업계 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렇게 생산된 차들은 당연히 르노나 닛산이나 (국내라면) 르노삼성 브랜드로, 판매망으로 판매될 것이다. 부품도 역시 닛산이나 르노삼성 협력업체들이 공급할 것이다. 요컨대 쌍용차 협력업체와 국내외 판매망이 생산판매 증가에 따른 혜택은 거의 보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것은 자동차 산업을 모르는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이기에 좀 부연하자. 자동차 부품의 품질 향상과 가격 저감을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절실히 필요하기에 오랫동안 거래한 자신의 협력업체에 몰아주기를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다. 품질 좋고, 가격 싸고, 공급 능력이 안정적이라면 쌍용차 협력업체에도 납품 기회를 얼마든지 준다고 얘기하겠지만, 몇 년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쌍용차 협력업체가 이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국내외 판매망도 비슷하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르노닛산의 딜러나 대리점이 없는 곳이 없다. 또한 딜러나 대리점의 대다수는 모기업 또는 지역 총판과 일정지역에서 판매 독점 계약을 맺고 있지 않는 곳이 없다. 따라서 쌍용차의 국내외 판매네트워크는 대다수는 고사한다고 보아야 한다. 쌍용차와 그 협력업체의 수익성은 오로지 기존 모델을 르노닛산의 판매망으로 밀어내는 몇 년일 뿐이다.

공장이 정신없이 돌아가도 수익성과는 상관없다.

기존의 쌍용차 모델이 르노나 닛산 브랜드로 팔린다면 지금 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쌍용차와 그 협력업체의 수익성 향상을 기대한다면 도둑놈 심보다. 르노, 닛산 브랜드에 힘입어 더 받는 가격은 오랫동안 고생해서 그 브랜드를 일궈낸 르노나 닛산의 몫이다. 남의 것을 욕심내면 안 된다. 요컨대 쌍용차와 협력업체의 수익성은 오로지 ‘생산.판매 대수’의 함수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도 사실과는 약간 다르다. 브랜드를 상실하면 가격 결정의 주도권을 상실하기에, 생산판매 대수가 늘어나서, 그야말로 정신없이 공장을 돌려도 판매 가격이나 부품가를 인하하면 수익성이 개선될 리 만무하다. 이는 자체 브랜드(대우, 또는 GM대우)로 수출하는 물량이 별로 없는 GM대우와 그 협력업체들이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돌이켜 보면 대우차의 브랜드 상실은 대우차를 GM에 매각할 때 공장의 소재지와 R&D기능 존치 여부만 따지고, 브랜드와 판매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던, 2000년 전후의 한국 위정자와 금융실력자들의 무지와 부주의가 초래한 비극이다. 이 선두에는 이헌재(전금감위원장)가 있다. 선진국 자동차 업체들끼리 인수합병이 많이 일어나지만, 자동차 회사의 소유권(국적)에 대해서 개방적이다. 피인수 기업(예컨대 스웨덴의 VOLVO와 SAAB)의 국민들도 심하게 반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브랜드와 R&D와 생산능력을 죽이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브랜드가 살아 있으면, 독자적인 판매네트워크도 살아있고, 충성도 높은 고객도 살아 있고, 판매 호조에 따른 수익성 개선도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움직이는 광고판으로서 기능도 살아 있다. 지구촌 사람들은 스웨덴과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디 있는지 몰라도 굴러다니는 자동차 마크(볼보, 사브, 대우)를 보면서, 또 자동차를 타보면서 스웨덴과 한국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동시에 자동차 외에 그 나라産 수많은 상품에 대한 신뢰를 형성한다. 이는 상품 속에 들어가는 부품인 반도체를 아무리 많이 팔아도(세계시장을 독점해도) 형성할 수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인텔이 컴퓨터 마다 "intel inside"마크를 붙이겠나! 어쨌든 볼보와 사브는 포드, GM에 인수된 지 오래지만 브랜드는 살아있고, 세계를 누비며 스웨덴을 팔고 있다. 그런데 대우는 우리의 무지와 부주의로 사실상 죽었다. 수많은 한국 상품 광고판이 사라졌다. 대우 마크가 달려 있어야 할 자리에 뷰익과 시보레 마크가 달려 있다.

선진국의 자동차 회사 간의 M&A에서 국적에 그리 집착하지 않고, 브랜드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고, 한국도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업의 국적이 바뀌면 브랜드도 죽임을 당할 확률이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더불어서 한강의 기적과 현대기아차의 신화를 일궈낸 한국인 특유의 창의, 열정, 억척도 질식할 확률이 꽤 높기 때문이다.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여”라는 말은 틀릴 때가 많지만, “우리의 독특한 처지와 조건, 역사와 문화를 고려한 비전, 전략,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말은 틀릴 때가 거의 없다.

문제는 ‘자포자기 바이러스’ 다!

물론 쌍용차를 인수하겠다는 업체가 오로지 닛산뿐이라면, 게다가 기존의 채권금융기관이 쌍용차의 운영자금조차 대지 않겠다면 닛산에 인수를 구걸이라도 해야 한다. (채권금융기관들은 까무러치겠지만) 그야말로 단돈 1원에라도 팔아야 한다. 그래야 완성차 공장의 몇 천 명의 고용이라도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R&D, 협력업체, 국내외 판매네트워크가 고사하고, 한국 제품에 대한 움직이는 광고판인 쌍용차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다 할지라도......그런데 지금 쌍용차는 그 정도로 대책 없는 상황인가?

자동차 산업을 좀 안다는 사람 중에는 천문학적인 환경안전 기술 개발비용으로 인해, 연산 400~500만대가 넘는 5~6개의 글로벌 자동차 기업만 살아남는다는 괴담을 떠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쌍용차를 르노닛산처럼 생존이 확실한 글로벌 메이커에 무조건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르노닛산을 구세주로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는 1970년대 이후 끊임없이 한국 국적의 자동차 회사 포기를 종용한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사다리로 기어 올라가려는 의지 걷어차기) 논리의 변종이다. 이 논리는 마치 바이러스처럼, 기술이라면 주눅이 들고, 규모의 경제만 아는 한국 위정자들과 금융인들과 언론인들을 감염시켜 1970년대 중반에는 현대자동차 독자적인 가솔린 엔진 개발에 손사래를 치게 했다. 1980년 국보위 시절에는 자동차 산업 포기를 강요했다. 2000년 전후해서는 대우자동차를 대책 없이 방치하게 하고, 그 결과 헐값 매각, 대우 브랜드 고사를 초래하였다. 2000년 전후 하여 맹위를 떨친 이 바이러스는 1990년대 초중반 디트로이트 주변에서 만들어진 변종인데, 환경안전 기술 개발 비용의 급증과 초고연비차(3리터로 100km를 간다는 차)의 등장으로 인해 현대자동차도 2010년을 넘기지 못하고 글로벌 빅 5~6 업체에 인수 합병당하리라고 예측하였다. 물론 보기 좋게 틀려 버렸다.

게다가 우리가 자동차 산업을 접고 싶어 할 때, 중국, 인도 등지의 허접한 자동차 기업들은 약간의 보호 장벽에 기대어, 현대, 기아, 대우차가 만든 신화를 재연해 보겠다고 도전하기 시작했다. 선진메이커와 50:50 합작으로 힘을 축적하기도 하고, 기회가 생기면 영국 로버자동차, 한국의 대우차(상용차)와 쌍용차 등 선진국(?) 자동차 기업 인수에 나섰다.

이래저래 연산 400~500만대가 넘는 5~6개의 기업만 살아남는다는 괴담은 확실히 무색하게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괴담은 이상하게도 쌍용차 처리 문제가 이슈가 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아마도 쌍용차의 규모가 워낙 작고, 국내 판매도 저조하고, 또 환경(연비, 배기가스) 관련 규제가 심한 선진국 시장에 개발비/개발력 부족으로 명함을 잘 내밀지 못하고 있는 사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2010년대 자동차 시장은 선진국 시장이 주가 아니다.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이 시장에서는 쌍용차 수준의 성능, 품질, 디자인, 브랜드, 가격에 매력을 느끼는 고객이 결코 적지 않다. 2005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는 수출 물량이 이를 증명한다. 중국, 인도 업체의 쌍용차 인수 의향의 뿌리에는 현재 쌍용차의 기술, 가격, 브랜드가 그런대로 가치가 있고, 특히 2009년의 가혹한 구조조정 이후 획기적으로 개선된 비용구조와 노사문화가 그 가치를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

뿐만 아니라 자동차 경쟁력의 패러다임 변화도 쌍용차의 미래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서서히 힘차게 밀어낸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의 중심에는 예상외로 급속도로 발달한 전기차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전기차 기술의 핵심은 배터리와 모터와 이를 결합.조정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배터리 기술과 모터 기술은 기존의 가솔린.디젤 엔진, 미션 기술과 달리 완성차 업체가 주도적으로 개발하는 기술이 아니다. 단적으로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엔진이나 미션만 파는 전문 업체는 없다.

LG화학의 배터리를 포드에 이어 GM도 공급받기로 한데서 보듯이 전기차 기술은 배터리와 모터를 만드는 부품 업체가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포드, GM과 도요타, 폭스바겐, 르노닛산, 현대기아가 사용하는 성능 좋은 배터리와 모터를 쌍용차와 중국차, 인도차들도 같이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전기차용 배터리 기술에 관한 한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모터 기술과 결합조정 기술 역시 그 성격상 한국이 세계적 수준을 구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국 땅에 뿌리박은 쌍용차의 큰 강점이 아닐 수 있다. 엔진, 미션을 배터리와 모터가 대신하면 완성차 업체의 경쟁력은 스타일링(외관 디자인)과 각종 부품, 기능의 조립, 조화 기술에 많이 의존하게 된다. 이는 쌍용차 같은 소규모 완성차 회사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쌍용차는 단기적으로 독특한 스타일링 능력과 가격 대비 빼어난 품질 성능을 무기로 한국시장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이머징마켓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중기적으로는 인도, 중국, 러시아 업체들과 대등한 제휴, 합작으로 동반발전하고, 장기적으로는 (전기차가 상용화될 즈음에서는) 세계 최고 성능의 한국산 배터리, 모터와 기술 추격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엔지니어들의 기술력에 의존하여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옥토에 큰 나무 한 그루만 있는 것 봤나?

사실 한국은 자동차 산업의 토양-경쟁력 있는 협력업체, 빼어난 R&D역량, 강고한 조직력과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는 근로 문화 등-에 비추어 볼 때 현대기아 수준의 자동차 회사 2개가 존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2000년 전후한 시기의 대우, 쌍용의 구조조정의 실패로 인해 1개 밖에 없게 되었다. 따라서 독자 모델 개발 숫자나 독립적인 자동차 회사의 숫자에 비해 자동차 R&D역량이 넘쳐난다고 할 수 있다. 대우차, 기아차, 삼성차, 쌍용차 출신 엔지니어들에 의한 중국, 인도, 동남아 업체에 대한 끊임없는 개발 용역은 그 징표이다. 따라서 쌍용차가 독자 모델을 개발하는 독립 자동차 회사로 존재 한다면, 1990년대 엄청난 자동차 관련 투자가 남겨 놓은 빼어난 R&D역량들의 상당부분을 활용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정말 자동차 산업에 관한 한 한국이 옥토가 맞다면 현대기아차라는 큰 나무 한그루만 자라라는 법이 없다. 중간 크기의 나무나 작은 나무가 여러 그루 자랄 수 있는 법이다. 적지 않은 나라에서 쌍용차는 현대차와 더불어 한국의 간판이며, 현대차가 좋으면 쌍용차도 웬만큼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쌍용차의 밝은 미래를 보장해 주는 올바른 통찰이자, 좋은 편견이다.

문제는 수많은 이해관계자와 미래세대의 생존권과 기회다.

쌍용차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신할 수 있다는 비전을 거칠게 제시하긴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보 양보하더라도 쌍용차가 르노닛산에 무조건 떠넘겨야 할 대책 없는 기업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천보 양보하더라도 쌍용차 브랜드와 독자 모델 개발능력을 포기한다는 것은 쌍용차 공장 노동자들의 일시적인 안위를 위해 나머지 쌍용차 이해관계자들과 미래 세대의 생존권과 기회를 빼앗는 역사적 만행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은행이 사회적 책임성을 눈곱만큼이라도 의식한다면 쌍용차 브랜드를 죽일 인수자는 가격에 상관없이 탈락시켜야 마땅하다. 그리고 르노삼성이 연산 25만대 규모의 부산공장으로 공급 물량을 댈 수 없다면, 부산 인근에 신규 투자를 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것이 부산경제를 위해서도 한국경제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일시적으로 넘쳐나는 물량을 소화할 수 없어서, 공장(생산라인) 빌리기 차원에서 쌍용차를 인수한다는 것은 상도의에도 맞지 않는다. 쌍용차 매각의 문제는 브랜드와 수많은 이해관계자와 미래세대의 생존권과 기회의 문제이다. 브랜드를 유지하지 못할 업체는 우선적으로 탈락 시켜야 한다. -끝-

사족)
2000년 전후한 대우자동차 위기 때도 그랬지만, 최근 몇 년간 지속되는 쌍용자동차 위기 때도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역량이랄까 한계를 보는 느낌이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대우차나 쌍용차의 운명의 키를 쥔 실력자들이 너무 무지하고 무책임하고 몰염치 해 보인다. 산업의 특성도 모르고, 한국의 발전 잠재력도 모르고, 이해관계자 전체를 두루 생각하지 않고, 후세대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금융실력자들은 매각 가격과 노조의 반발을 모든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한다. 노조와 자칭 진보는 완성차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노조원)의 고용.임금을 모든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한다. 훨씬 숫자도 많고 근로조건도 열악한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R&D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우리 청년세대와 후세대가 누릴 기회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힘 있는 집단의 무지와 몰염치는 예외 없이 극심한 대립갈등을 부르기 마련. 그런데 지난 여름 쌍용차 노조와 민주노총의 어리석은 대응이 결과적으로 쌍용차를 매력있는 인수대상으로 만드는 "살신성인"적 행위가 되고 말았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힘있는 집단의 무지와 몰염치는 자동차 산업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닐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오십보백보일 것이다. 그러니 민심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스윙하기 마련.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노라면 일본, 독일, 프랑스, 미국, 중국, 러시아와 한국의 정치.사회.경제 리더십의 격차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가 20세기 초에 식민지로 전락하고, 20세기 중반에는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치렀는지 이해가 갈 때가 많다. 다른 한편 밝은 면(?)을 보노라면, 단적으로 똑똑한 청소년들의 꿈이 그래도 축구선수나 패션 모델이 아니라, 국내에서만 통하는 ‘사’자 직업과 공무원이고, 종교, 인종 갈등도 없고, 쿠데타나 군사적 테러 걱정도 없고, 중국, 인도, 일본, 미국 업체가 탐낼 기업이라도 있는 것을 보면,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시아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눈이 위로 향하고 있고, 위로 향해야 하니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