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lang27님과의 대화에서 아직 제가 제 문제의식을 명확히 lang27님에게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한 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성경에 담긴 창조론의 경우,

 이 경우는 인간의 기원이라는 동일한 주제에 관하여, 성경의 창조론과 과학의 진화론이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이론 모두 동일한 차원의 진리주장을 하고 있고, 고로 그 진리 주장은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는 관계 (즉 한 쪽이 참이면 다른 쪽은 필연적으로 거짓일 수 밖에 없는 관계) 입니다. 

 2. 성경에 담긴 동성애 금지의 교리의 경우.

 이 경우는 주어진 세계의 사실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인간 행위에 관한 도덕적인 평가가 관건이 되므로, 결국 누가 설득력 있게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설파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됩니다. 즉 1번 사례의 경우에는 (사실의) 진리 주장이 관건이 되고, 이 사례의 경우는 (행위의) 정당성 주장이 관건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당성 주장이 관건이 되는 경우 그 정당성 주장이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식주관의 판단과 독립되어 행위의 정당성에 판단에 대한 테스트지를 제공하는 외부적인 기준을 설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각자의 정당성 주장이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기준이 아닌, 기껏해야 서로 합의될 수 있는, 보다 완화된 상호 주관적인 기준만이 설정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다>라는 가장 강력한, 일반적으로 인정된 사회 도덕률의 경우, 결국 사람을 죽이는 것이 왜 나쁜지는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이 신체적인 고통을 피하려고 하고, 자살등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자신의 생물학적 생존을 어떤 무엇보다도 최우선의 즉각적인 관심으로 둔다는 인간의 자연적인 성향에서 묵시적으로 인정되온 관행적인 규칙에 가깝습니다. (비슷한 예로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죄악이다> 같은 경우, 어떤 학자는 만약 인간이 거북의 등껍질과 같은 견고한 피부막으로 둘러 쌓인 갑각 동물류 였다면 더 이상 폭력을 금지하는 사회적인 도덕 규칙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위의 정당성 주장이 관건이 될 경우,  즉 동일한 행위에 대해 도덕적인 평가가 엇갈릴 경우에, 대개는 그 견해차이에 대해 상호 주관적으로 합의될 수 있는 정당성 평가의 기준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논의는 표류할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문제는 어떤 사람이 성서라는 권위에 의거해서 어떤 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경우, 그 권위를 공유하고 있지 않은 외부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한낮 교조적인 도그마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 권위를 공유하고 있는 내부인의 관점에서는 그 정당성 주장이 완전히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즉, 이 경우에는 상호 주관적으로 합의될 수 있는 정당성 주장의 평가 기준을 찾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어떤 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하고자 할 때 어떤 권위를 완전히 배제해야 할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종교적인 신념을 통해 그 종교의 체계적인 도그마를 모조리 받아들이기로 결단을 한 신도에게, 동성애에 대한 당신의 판단, 즉 성서의 판단은 틀렸소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 질문을 제가 계속 제기하는 이유는 행위의 도덕성에 대한 판단에 앞서 '도덕성의 판단 기준을 성서에 일임하기로 한' 자의 결단 행위 자체는 합리적으로 평가되기가 사실 어렵다는 사정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결정에는 합리적인 평가를 넘어서는 순수한 결단의 계기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로부터 우리의 도덕성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 판단의 가능성의 문제를 유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합의 가능한 정당성 주장들의 판단 기준을 상호 주관적으로 마련하는 문제 역시 그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보다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