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가리사니님이 번역하신 한 러시아 우파 지식인(?) 의 글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입니다.

레닌이 없었다면, 스탈린, 베리야,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고르바초프도 없었을 것이다. NKVD나 KGB도 없었으리라. 레닌이 없었다면, 소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러시아는 완전히 다른 운명을 맞았을 것이다. 러시아가 지상낙원이 되지는 못했을지라도, 분명히 강제수용소 지옥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출처(ref.) : The Acro - 메인게시판 - [번역] 소련의 불법성을 선언할 때가 되었다 - http://theacro.com/zbxe/main/243578
by 가리사니 1.

사실 이 글을 처음 읽고 나서 떠오른 영화가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굿바이 레닌' 이라고, 독일인 훈남 '다니엘 브륄' 이 주연한 독일 영화입니다. 동서독으로 아직 나뉘어 있었을 때 동독에 살던 과학자가 부인과 아직 어린 자식 둘을 남겨두고 혼자 서독으로 망명하면서 이산가족이 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떠난 후, 부인은 자기가 사는 지역 사회에서 공산당의 인간주의적인 가치를 전파하는 열혈 당원이 됩니다. 합창단을 조직하고, 마을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고, 또 지역 사회 봉사활동을 모범적으로 하면서 공산당에게 표창도 받게 되지요. 그러나 사고로 인해 그녀는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식물 인간이 되고 맙니다. 그 사이에 독일 국경이 무너지고, 동독은 무너집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가까스로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어머니가 그 이후의 급격한 사회 환경의 변화에 충격을 받을까 우려한 나머지 두 남매가 '아직 공산주의가 건재하는 세상인 것처럼' 체제를 연출하는 연극을 벌이기 시작한다는 것이 간단한 줄거리입니다. 
 
 이 영화 속에는 거리에 세워져 있던 육중하고 거대한 레닌 동상이 철거되는 씬이 담겨 있는데, 그때 남매가 우연하게 그 모습이 엄마가 누워 있는 방의 창가를 통해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엄마가 보고 놀라서 쇼크를 받을까봐 황급하게 조치를 취하는 웃지 못한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맑스와 레닌이 공산주의 국가블록 내부에서는 국가의 경계를 초월한 공산주의의 정신적인 상징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쉽게 수긍이 갈만한 씬이지요. 영화 속에 비쳐진 그 부인에게 공산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악한 국가 체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인도주의를 실현하는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정치 공동체의 근본 신념이었기 때문에, 남매의 그런 행동들이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2. 저는 교조화되고 우상화된 공산주의와, 점점 기승을 부리는 자본주의의 야만성에 결연히 맞서서, 인도주의적인 요구에서부터 시작된 정치, 사회, 경제 철학과 정치 운동으로서의 공산주의를 명확히 구분하는 방법을 알지는 못합니다. 아마 제가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제 삶으로부터 직접 이론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 당시 동독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이 부인의 경우처럼, 관료제적인 국가 기구에 순응되고 길들여진 무비판적인 당원이 아니라 공산주의의 내적인 가치에 대한 열렬한 동의로부터 활동을 했던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구 소련지역의 사람들 중에도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내적인 동의로부터, 즉 공동체 안에서의 경제 사회적인 <골고름>의 가치에 대한 동의로부터 공산주의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경제 사회적인 <균등>을 지향한다는 것이 보통 공산주의가 표방하는 근본 가치로서 흔히 언급이 됩니다만, 결과적이고 기계적이며, 또한 극도로 인위적인 형평이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가지고 있는 균등, 평등이라는 말 보다는 '고루고루 먹다'라는 우리말 동사에서 파생된 신조어를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말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기계적인 평등이 아닌, <필요에 따라, 적재 적소에 자원을 합의하에 사회적으로, 즉 공동으로 분배한다>는 공산주의의 원리를 더 잘 기술하고 있습니다.)   
 
 3. 그러므로 예컨대, <히틀러가 없었더라면 세상이 지금보다 더 살기 좋아졌을 것이다> 라는 말에는 쉽사리 수긍을 하겠지만, <레닌이 없었더라면 세상이 지금보다 더 살기 좋아졌을 것이다> 라는 말에는 수긍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체제 경쟁에서 자본주의가 결정적인 우위에 선 것이 70년대 이후부터라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면, 그 이전에 벌어졌던 역사적 상황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보다 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 설 필요가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패배하였다고 해서, 그리고 후기 공산주의가 전체주의적인 우상화로 경도되었다고 해서, 그 공산주의가 발생하게 된 시대사적인 맥락과 초기의 저항적 공산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정신적인 힘들에 대한 기억이 잊혀지고 폄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레닌은 무엇보다도 공산주의가 품었던,-그 이전의 어떤 사회개혁 노선도 가지지 못했던- 고유의 급진적인 혁신성을 볼세비키 운동을 통해 최초로 현실화시킨 사람입니다. 만약 트로츠키와 레닌의 대결에서 트로츠키가 승리했다면, 혁명적 사회주의는 역사적인 하이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러시아 지역에서 일어난 유의미한, 그렇지만 영향력은 미미했던 정치 운동으로만 기억되었겠지요.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이야기> 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결국, <역사적인 내러티브를 이해할 때는 결국 승자와 패자, 혹은 당파와 당파 간의 (정치적인) 입장을 명확히 구분하고, 그 역사적인 인식의 상대성에 먼저 주목하라>는 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역사 인식의 경우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정치, 사회, 문화적인 주제에 대한 사고 습관 일반에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원리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인식을 견인해 내는 것, 즉 그 (역사) 인식의 지적인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은 현재 인식하는 주체가 견지하고 있는 일정한 정치적인 가치판단일 경우가 많지요. 가치 판단이 인식에 선행한다면 인식에 대한 비판은 곧 그 선행적인 가치 판단에 대한 비판으로 귀착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