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 글에서는 기독교만 다룰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수 많은 종교 중에서 그나마 기독교에 대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이 글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다른 종교에도 적용될 것이다.

 

근본주의와 문자주의를 동의어로 쓸 것이다. 그리고 근본주의는 근본주의적 기독교를 자유주의는 자유주의적 기독교를 뜻한다.

 

대체로 근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에 비해 진화 생물학에 대해 터무니 없는 시비를 건다. 그들은 성경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대체로 근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에 비해 보수적인 도덕 철학을 지지한다. 예컨대 근본주의자들은 상대적으로 여성 차별이나 동성애 억압을 지지한다.

 

나는 이런 두 가지 측면 때문에 근본주의자들보다는 자유주의자들을 더 좋아한다. 즉 나는 근본주의자들이 비과학적이기 때문에 또는 반과학적이기 때문에 싫다. 또한 근본주의의 도덕 철학이 나의 입장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싫다.

 

하지만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차이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근본주의가 기독교의 정신에서 벗어났으며 자유주의가 진정한 기독교라는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진화 생물학을 부정하는 문자주의자들은 작은 일부일 뿐인가?

 

Richard Dawkins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같은 글에서는 종교와 과학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교가 과학 특히 진화 생물학에 터무니 없이 시비를 걸었기 때문에 종교가 문제라는 것이다.

 

Stephen Jay Gould의 『Rocks of Ages: Science and Religion in the Fullness of Life』나 Mary Midgley의 『Evolution as a Religion』과 같은 글에서는 그런 주장이 틀렸다고 이야기한다. 종교와 과학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주의 또는 문자주의에 문제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Gould는 문자주의가 기독교의 작은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말 그런가?

 

유대-기독교의 개념은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간 본성 이론이다. 최근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6퍼센트가 성서의 창조 이야기를 믿고, 79퍼센트가 성서에 기록된 기적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으며, 76퍼센트가 천사와 악마를 비롯한 비물질적인 영혼을 믿고, 67퍼센트가 어떤 형태로든 사후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반면, 15퍼센트만이 다윈의 진화론이 지구상에 출현한 인간의 기원을 가장 적절히 설명하는 이론이라 믿는다. (『빈 서판: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 Steven Pinker, 27)

 

문자주의나 근본주의라는 개념이 애매하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근본주의이며 어디부터 자유주의인지를 뚜렷하게 가리기는 힘들다. 어쨌든 위의 인용문이 보여주듯이 최근까지도 미국의 경우 전체 인구 중 다수가 진화 생물학을 거부하고 있다. 만약 기독교인들만 대상으로 조사했다면 진화 생물학을 거부하는 사람의 비율은 조금이라도 더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100년 전쯤에는 진화 생물학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현재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선진 산업국 중에서 미국의 기독교가 가장 근본주의적인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기독교인 중 진화 생물학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무시할 정도로 작지는 않을 것이다. Gould는 기독교인들 중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만 진화 생물학을 거부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기독교인들 중 다수가 또는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진화 생물학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와 과학 사이에 전쟁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과학의 편이라고?

 

Gould는 마치 자유주의자들이 과학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 물론 많은 자유주의적 기독교인들이 진화 생물학을 인정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진화 심리학까지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들은 진화 생물학이 동물을 설명할 때만, 인간의 육체만 설명할 때만 진화 생물학을 인정한다. 진화 생물학이 인간의 마음 즉 그들이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순간 그들은 진화 생물학을 져버린다. 사실 자칭 유물론자들 중 많은 사람들 진화 심리학을 거부하기 때문에 진화 심리학 거부를 순전히 종교 탓으로 돌릴 수 없긴 하다.

 

진화론/창조론 논쟁의 경우에는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진화론의 편에 선다. 적어도 진화 심리학이라는 문제가 개입되지 않을 때에는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주의자들이 과학의 교권을 온전히 존중한다고 생각하면 완전히 착각이다. 그들은 예수의 기적과 관련해서는 과학을 쉽게 무시한다.

 

자유주의적 기독교인들 중에 예수는 성령에 의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마리아가 요셉 또는 다른 남자와 성교를 해서 태어난 것이다. 죽은 사람을 살렸다는 예수의 기적은 뻥이거나 상징일 뿐이다. 실제로 예수는 죽은 사람을 살린 적이 없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도 뻥이거나 상징일 뿐이다. 실제로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1%나 될지 의문이다.

 

예수가 관련되지 않았을 때에는 과학을 인정하지만 예수가 관련되었을 때에는 과학을 깡그리 무시한다면 그 사람은 과학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편리할 때만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지 않을 때만 진화 생물학을 인정하는 사람이 진화 생물학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이것은 북조선, 구소련, 나찌 독일 등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는 국가의 인권 억압에 대해 비판하면서 남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일부 한국 사람들이 인권을 온전히 옹호한다고 보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문자주의자는 정말 일관된 문자주의자인가?

 

문자주의자들이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자들에 비해 성경 구절에 더 집착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도 어떤 때에는 성경 구절을 완전히 무시한다. 우선 구약에 있는 무시무시한 구절들을 살펴보자.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해나 달이나 하늘의 모든 천체와 같은 다른 신들을 찾아가서 섬기고 엎드려 절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이런 일이 있다는 보고를 듣거든, 너희는 그것이 사실인지 들어보고 잘 조사해 보아야 한다. 만일 이스라엘 가운데 누군가가 그같이 불측한 일을 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거든, 그런 못할 짓을 한 자가 남자든 여자든 성문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죽여라. (신명기 17:3~5)

 

자기 남종이나 여종을 때려 당장에 숨지게 한 자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그 종이 하루나 이틀만 더 살아 있어도 벌을 면한다. 종은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1:20~21)

 

여자와 한자리에 들듯이 남자와 한자리에 든 남자가 있으면, 그 두 사람은 망측한 짓을 하였으므로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한다. 그들은 피를 흘리고 죽어야 마땅하다. (레위기 20:13)

 

사생아는 야훼의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그 후손은 십 대에 이르기까지도 야훼의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신명기 23:3)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의 후손 대대로 몸이 성하지 않은 사람은 그의 하느님께 양식을 바치러 가까이 나오지 못한다. 소경이든지 절름발이든지 얼굴이 일그러졌든지 사지가 제대로 생기지 않았든지 하여 몸이 성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가까이 나오지 못한다. 다리가 부러졌거나 팔이 부러진 사람, 곱추, 난쟁이, 눈에 백태 낀 자, 옴쟁이, 종기가 많이 난 사람, 고자는 성소에 가까이 나오지 못한다. 사제 아론의 후손으로서 몸이 성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야훼께 가까이 나와 번제를 드리지 못한다. 몸이 성하지 못한 사람은 그의 하느님께 양식을 바치러 가까이 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하느님께 바친 양식, 곧 더없이 거룩한 것과 보통으로 거룩한 것을 받아 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는 몸이 성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휘장 안으로 들어가거나 제단 앞으로 나가서 나의 성소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 사제들을 거룩하게 하는 이는 나 야훼이다.'" (레위기 21:16~23)

 

원수를 치러 싸움터에 나갔다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원수를 너희 손에 붙여 사람을 사로잡게 해주셨을 때, 그 포로들 가운데서 마음에 드는 아리따운 여자가 있으면 그를 아내로 맞아도 좋다. 그럴 경우 너희는 그를 집 안으로 맞아들여라. 그러나 머리를 밀고 손톱을 깎고 잡혀올 때 입었던 옷을 벗게 하여라. 그리고 한 달 동안 집에 있으면서 자기 부모를 생각하고 곡하게 하여라. 그런 다음에라야 한자리에 들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너희는 그의 남편이 되고 그는 너희 아내가 되는 것이다. 만일 그 여자가 더 이상 너희 마음에 들지 않거든 원하는 대로 가게 하여라. 절대로 돈을 받고 팔지는 마라. 그 몸을 버려놓았으니, 마구 부려먹어서도 안 된다. (신명기 21:10~14)

 

기독교 문자주의자로 분류되는 21세기의 미국인 중에서 야훼를 믿지 않는 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노예제를 옹호하는 사람을,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사생아나 장애인을 교회에 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이웃 나라에 쳐들어가서 남자를 죽이고 여자를 차지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있더라도 극히 드물 것이다.

 

한편으로 대다수의 자유주의자들이 예수와 관련된 일이라면 과학을 완전히 무시한다. 다른 한편으로 대다수의 문자주의자들이 현대 문명국의 규범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면 성경 구절을 완전히 무시한다.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Gould와 같은 사람들이 믿는 것보다는 그 차이가 훨씬 작다.

 

사실 일관된 문자주의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모순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성경 속의 모순들에 대해서는 미신 없는 세상을 위하여(version 0.1)』 중 10.3. 성경 속의 모순들을 참조하라.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oAb/15

 

 

 

 

 

자유주의가 진짜 기독교라고?

 

어떤 사람들은 근본주의보다는 자유주의가 기독교의 정신을 더 잘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자유주의보다는 근본주의가 기독교의 정신을 더 잘 살리고 있다.

 

무엇이 기독교의 본질인가? 무엇이 종교의 본질인가? Gould는 과학의 교권과 다른 교권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과학의 교권에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누구 맘대로 그렇게 규정하나? 세상에 있는 수 많은 종교들 중에 과학의 교권에 개입하지 않았던 종교가 몇 개나 되나? 나는 하나도 모른다.

 

오래된 경전보다는 현대의 도덕 철학에 가까운 것을 지지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라고? 누구 맘대로? 자신의 경전인 성경을 무시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린가? 문자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보다 성경을 더 존중한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자유주의자들은 해석을 통해 이 문제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나 무시무시한 도덕 철학을 글자 그대로 읽지 말고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해석을 위한 기준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 성경 중 어느 부분을 글자 그대로 읽고 어떤 부분을 상징적으로 읽어야 하는가?

 

구약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읽지 말고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왜 예수의 기적은 문자 그대로 읽는 경우가 많은가? 내가 보기에는 둘 모두 지극히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왜 신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상징적으로 해석하지 않는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성경에 신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라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위에서 인용한 무시무시한 구약 구절들은 너무나 명백한 표현으로 쓰여 있다. 문자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모두 그런 구절들을 무시한다. 그들은 그 구절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만약 누군가 그런 무시무시한 구절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 상징일 뿐이라고 발뺌할 뿐이다. 그렇게 명백한 표현으로 쓰인 것을 상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성경에 있는 모든 구절을 상징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도대체 위에 인용한 무시무시한 구절을 어떤 식으로 상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문자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어떤 일관된 기준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신의 입맛에 따를 뿐이다. 현대 선진 산업국에는 노예제를 옹호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문자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노예제를 언급한 성경 구절을 그냥 무시한다. 동성애 억압에 대해서는 현대 사회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동성애 억압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성경 구절을 근거로 대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도 동성애자를 사형시키라는 말은 무시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들은 성경을 보고 자신의 믿음을 형성한다기보다는 자신의 믿음에 걸 맞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식으로 처신한다.

 

미신의 본질은 비과학적인 사고다. 미신들 중에서 과학을 더 존중하는 미신이 진정한 미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나찌의 본질은 인종주의다. 덜 인종주의적 나찌가 진짜 나찌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종교의 본질은 경전에 대한 존중, 성직자에 대한 복종 정신, 무조건적인 믿음이다. 그래서 종교에 더 충실할수록 더 비과학적이고 시대에 더 뒤진 도덕 철학을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의 문제에 대해 과학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다. 도덕 철학의 문제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토론한다면 그 사람은 도덕 철학자지 종교인이 아니다. 과학 개념이나 도덕 철학 개념과 대비되는 종교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과학을 존중하고 도덕 철학 문제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종교의 본질은 맹신이다라는 규정이 더 적절해 보인다.

 

 

 

 

 

2010-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