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 문제 시 즉시 삭제합니다.

아까 이란 핵 문제로 인한 이란-러시아 관계 변동에 대한 기사를 하나 번역해 올렸었는데, 찾아보니 연합뉴스 번역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 버젓이 올라와 있더라구요. 그래서 황급히 지우고 다른 칼럼으로 땜질합니다.

이번에는 별 생각 없이 하나 골랐는데.. 구 소련의 유산에 대한 현대 러시아 지식인들의 피해의식을 엿볼 수 있는 글입니다. 출처는 모스크바 타임즈.(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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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불법성을 선언할 때가 되었다
- 안드레이 주보프(Andrei Zubov), 2010년 7월 27일

 



내 다차(*)가 있는 시골 마을의 중심가에는 '소비에트 군대'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철제 레닌 동상이 마을 중심에 떡하니 서 있다. 아이들은 이 동상 곁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이들이 놀기에는 실로 기분나쁜 곳이 아닌가. 그런데 아이들의 부모는 달리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레닌 할아버지 주위에서 놀도록 하세요. 아무도 짜증내는 사람 없잖아요. 어쨌거나 그는 재미있는 사람이니까." 그들의 말이다.

아직도 러시아 도시와 마을들을 장식하고 있는 수백 개-어쩌면 수천 개-의 레닌 동상과 기념 명판들은 재미있는 것 따위가 아니다. 나는 레닌의 모습을 보자마자 역겨워서 돌아서는 사람이다. 지하철에서도 스피커에서 "다음 역은 레닌 도서관입니다" 따위의 말이 흘러나오면 움찔하게 된다. 역사학자로서, 나는 레닌이 저질렀던 수많은 범죄들을,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가 흩뿌려졌는지를, 또한 레닌과 동지들이 내전과 공포 정치를 벌여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 죽거나 고난을 겪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레닌은 모든 종교를 증오했고, 이는 러시아 정교회를 비롯한 수많은 신앙에 대한 끝없는 폭력을 낳았다. 독일에서 수백만 마르크를 지원받아 1917년의 볼셰비키 혁명 자금으로 쓰고 나서, 레닌은 1918년 3월 3일 독일과 수치스러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었다. 레닌 이전의 어떤 지도자도 러시아에 이 정도의 손해를 끼친 적은 없었다. 레닌이 없었다면, 스탈린, 베리야,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고르바초프도 없었을 것이다. NKVD나 KGB도 없었으리라. 레닌이 없었다면, 소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러시아는 완전히 다른 운명을 맞았을 것이다. 러시아가 지상낙원이 되지는 못했을지라도, 분명히 강제수용소 지옥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레닌에 관해 재미있는 것 따위는 없다. 그는 사악할 뿐이다.

그러면 왜 아직도, 그리도 많은 러시아 도시에 레닌 동상과 레닌 가(街)가 있단 말인가? 이는 단순한 방치 때문이거나 동상을 철거하고 거리 이름을 개명하는 데 아무도 시간과 자금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실제로 1991년 이래로 많은 것들이 복구되었다.

레닌은 소련의 아버지였지만, 1991년 12월 소련 해체 후에도 레닌은 러시아의 지도자로 남아 있다. 적어도 법적인 의미에서는 말이다. 이는 1991년 12월 26일 보리스 옐친이 소련과 러시아 공화국 간의 법적 연속성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2000년 출판된 『대통령의 마라톤』이라는 책에서 옐친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이는 전적으로 만족할 만하며 논리적이고 법적으로 건전한 단계였다 - 특히 심각한 의무에 묶여 있는 외교적 문제에 관해서는 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2005년에 "소련의 붕괴는 20세기의 가장 커다란 지정학적 참사이며… 우리는 러시아 연방의 이름으로 소련의 가장 큰 부분을 보존했던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옐친의 결정을 지지했다.

1991년 12월 26일, 옐친은 러시아의 미래를 위해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 법적인 '연속성continuation'과는 분명히 다른 구 소련의 법적인 '승계succession' 말이다. 법적 승계는 러시아의 탈공산화를 위한 기초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이로써 러시아가 구 '백'러시아의 전통을 보존하도록 할 수도 있었다. 볼셰비키가 1917년 11월 22일에 인민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던 모든 구 러시아 법률을 폐지하고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완전히 새로운 정부를 만들면서 파괴해버린 전통을. 1917년 11월의 혁명 이후 5년 간, 적군과 백군의 내전은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백러시아에서는 공산 혁명 이전의 법들을 지켰다. 그러나 1922년 10월, 마지막 백군은 러시아 영토를 떠났고 적군이 승리자가 되었다. 1922년 12월 30일, 소비에트 연방이 수립되었고, 볼셰비키의 불법적이고 범죄적인 러시아 장악이 완료된 것이다.

소련과의 법적 연속성을 채택하기로 한 러시아의 결정은 결혼 후에 성이 바뀌었지만 동일인으로 남아 있는 기혼 여성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유사하게, 레닌이 소련을 창립했고, 러시아가 소련과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는 국가라면, 레닌은 아직도 현대 러시아의 창립자로 남아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우리가 1917년에 잃어버린 '구 러시아'에 대해서는 어떤가? 이것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길이 없다. 2002년, 외무부는 200주년을 기념했지만, 이 기념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이것이 질 나쁜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현직 외교관들은 알렉산드르 고르차코프나 세르게이 사조노프 같은 볼셰비키 이전 러시아 외교관들의 후예가 아니다. 그들은 전(前) 소비에트 외무장관인 레프 트로츠키나 바체슬라프 몰로토프, 안드레이 그로미코의 후예다. 이런 의미에서, FSB는 보다 정직하다. 90주년 기념 자료에서 이들은 볼셰비키 이전 러시아를 언급하지 않았고, 오직 소비에트 혈통만을 자랑했을 뿐이다. "체카, NKVD, KGB, FSB의 90년."

그러므로 우리는 소비에트 사회에 계속해서 살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의 공산주의자들은 이에 황홀해하고, 그들의 영광스러운 지도자의 동상을 기쁘게 바라본다. 그들은 레닌 동상을 보면서 황홀감에 젖어 울기도 한다. "레닌은 살아 계셨다, 레닌은 살아 계신다, 레닌은 언제나 살아 계실 것이다!"(**)

그러나 나와 수많은 러시아인들은 레닌을 그렇게 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레닌이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 우리는 레닌에 의한 수백만 명의 희생자, 부서진 교회, 더럽혀진 모스크와 시나고그를 기억해야 한다.


나는 진실된 러시아, 모든 소련색에서 자유로운 러시아, 레닌 없는 러시아에서 살고 싶다. 삼색기와 쌍두독수리 등 표면적인 정부 상징물만이 볼셰비키 이전 러시아를 나타내는 모조 러시아 같은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2000년, 옐친은 1991년 12월 26일부터 그가 내린 일련의 결정을 회고하면서 소비에트 이후 러시아를 소련의 법적 승계 위치로 돌려놓기 위해 『대통령의 마라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러시아에서 살게 되었겠는가, 우리가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우리가 소비에트 이전 러시아 - 1917년에 볼셰비키가 파괴한 - 의 법적 승계를 부활시켰다면… 완전히 다른 규칙에 따라 살 수 있었으리라. 소비에트의 계급투쟁 원리에 의하지 않고 … 법과 인권을 존중하는 원칙에 따라서. 우리는 상처를 껴안고 출발할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 무엇보다, 우리 러시아인들은 새로운 모국의 시민들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리라. … 우리의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이 나라의 역사적 승계를 회복하는 것은 대담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러시아인들은 언젠가 그런 과정을 원하게 될 것이다."

옐친이 이 문장을 쓴 이래로 10년 동안, 러시아인들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살았다. 그러나, 소련이 몰락하고 20년이 지난 지금, 레닌의 소비에트 연방에서 보낸 기억이 없는 새로운 세대가 태어났다. 그러므로 이 세대가 옐친이 꿈꿨던 새로운 러시아를 건설하기는 보다 쉬울 것이다. 그런 꿈을 실현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은 결국 레닌을 묘소에서 끌어내고 모든 레닌 동상을 철거한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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да́ча​. 뭔지 몰라서 찾아봤는데, 러시아식 시골 저택이라네요.(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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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의 마지막 문장인  "…내일이면 혁명은 힘차게 다시 일어설 것이며, 승리의 나팔 소리를 울리며 선언할 것이다. '나는 있었노라, 나는 있노라, 나는 있으리라!'" 을 패러디한 소련 구호라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