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끝내기와 사활에는 정답이 있지만 포석과 정석에는 확실한 정답은 없다고 이야기하는 프로 기사들이 많다. 사활 문제의 정답이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경우는 없다. 가끔 가다가 실수가 발견될 뿐이다. 반면 포석과 정석은 시대에 따라 어느 정도 바뀐다. 이전에는 어떤 정석이 흑이 약간 유리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가 지금은 백이 유리하다는 의견이 많아지는 식이다.

 

하지만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바둑에는 정답이 있다. 따라서 완벽한 수를 찾아내는 것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단지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걸릴 뿐이다. 361! 이라는 횟수를 감당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다면 바둑에서 완벽한 수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런 프로그램은 어떤 상대와 둬도 절대로 지지 않는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하다. 계승(factorial)의 위력이 궁금한 사람은 10! 1*2*3*4*5*6*7*8*9*10 까지만 계산해 봐도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포커를 칠 때 분배된 패를 모두 공개해서 상대편도 볼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 많은 초보자들이 그런 식으로 포커를 치면 자신은 절대로 잃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상대방의 패를 서로 볼 수 있도록 하고 포커를 치더라도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잃기 마련이다. 확률 계산을 정확히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어쨌든 이런 식의 규칙으로 치는 포커에서 중요한 것은 확률 계산이지 남의 패를 읽는 능력이나 적절하게 뻥카를 치는 능력은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패를 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포커에서는 분배된 패 중 일부 또는 전부를 가린다. 바둑에서는 상대편이 둔 수를 다 보고 두기 때문에 완전히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 수를 생각할 수 있다. 반면 포커에서는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베팅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바둑에서는 상대편 선수를 무시하고 정수를 찾으려고 노력하기만 해도 되지만 포커에서는 상대편 선수들을 고려해야 한다.

 

포커에서 수학이 중요하지만 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확률 이론이 중요하지만 확률 이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게임 이론도 필요한 것이다(포커 페이스나 평정심과 같은 문제는 무시한다면, 게임 이론도 수학이기 때문에 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이라는 표현에 문제가 있기는 하다).

 

 

 

만약 어떤 포커판에 있는 대다수 사람들이 느슨하게(loose) 친다면 인색하게(tight) 치는 것이 유리하다. 즉 상대가 툭하면 레이즈(raise)하고 잘 죽지(fold, die) 않는다면 좋은 패가 나올 때까지 잘 죽는 것이 유리하다. 반대로 상대가 인색하게 친다면 느슨하게 치는 것이 유리하다. 즉 상대가 툭하면 죽는다면 뻥카를 좀 더 많이 치는 것이 유리하다.

 

이것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들려주는 비둘기/매 전략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하다. 매 전략을 쓰는 개체는 먹이나 짝짓기 상대 등을 두고 충돌이 벌어졌을 때 공격적으로 덤벼든다. 반면 비둘기 전략을 쓰는 개체는 상대가 공격하려고 할 때 양보한다.

 

만약 어떤 개체군에 비둘기 전략을 쓰는 개체들만 있다면 매 전략은 매우 훌륭한 전략이다. 왜냐하면 항상 양보를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개체군에 매 전략을 쓰는 개체들만 있다면 매 전략은 훌륭한 전략이 아니다. 왜냐하면 맨날 싸우다가 부상 당하거나 죽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완벽한 수가 존재하는 바둑과는 달리 포커판이나 진화에서는 정해진 정답이 없다. 다른 개체들이 어떤 전략을 쓰는지에 따라 정답은 달라진다. 게임 이론은 이런 측면을 포착하려고 한다.

 

 

 

2010-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