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 문제 시 즉시 삭제합니다.

원래 오늘까지 머리쓰개 관련 기사를 번역하려고 했는데.. 왠지 논쟁 열기가 식은 듯해서 그냥 이건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사실 제가 터키 측 기사 소스로 이용하는 <휘리예트 데일리>가 이 문제에 대해 좀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니까요. 터키어에 좀 더 숙달하게 되면 한번 다양한 일간지의 당시 기사들을 정리해 보도록 하죠.

그래도 번역 기사를 올리기로 했으니 대신 흥미로운 최신 칼럼을 하나 소개합니다. 터키에서의 쿠르드인 민족 문제에 대한 글인데요, 원문이 게재된 사이트에서는 방금 제가 번역하던 중에도 덧글이 달리고 있었을 정도로 논란거리가 되는 모양입니다. 글을 올리고 나서 덧글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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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인들은 '터키 민족'의 일원인가?
- 무스타파 아키올(Mustafa Akyol), 2010년 7월 23일



 

우리 다수파 터키인들이 모든 터키 시민을 포함하는 동질적인 '터키 민족'에 관해 말하는 경우, 이 개념은 사실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우리의 소망을 반영할 뿐이다. 분명히, 많은 쿠르드인들은 이와 달리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 이스탄불의 자유주의 싱크탱크 TESEV는 터키의 쿠르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헌법적 및 법률적 제언"을 제시한 보고서를 출간했다. 그러나 이는 민족주의 매체의 강한 압박을 받았고, 이 골치 아픈 논란거리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었다.


TESEV가 제안한 것은 간단히 말해서 터키 헌법에서 '터키성性' 과 '터키 민족'에 대한 언급을 전부 삭제하는 것이었다. '투르크'라는 단어는, 그들의 말에 따르면 모든 시민들이 공유하지 않는(무엇보다 인구조사에 따르면 터키 인구의 13-15%를 차지하는 쿠르드인들이 이 점에서 두드러진다) 민족적 정체성이다. 또한 나아가 TESEV는 헌법과 여타 기본적인 텍스트에서는 오직 '터키 공화국'에 대해서만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성원을 정의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동화주의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외국인이라면 당신은 이러한 제안이 합리적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곳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주장은 이단적인 생각이다. 그들은 모든 터키 시민은 터키인이고 터키인은 터키 시민이라는 식의 개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자라났기 때문이다. 헌법뿐 아니라 모든 교과서와 거의 모든 공문서가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 심지어 일간 <휘리예트>-이 신문의 자매지이며 3대 주류 일간지 중 하나인 터키어 신문-에도 오해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분명한 다음 모토가 있다. "터키는 터키인들에게 속한다."


여기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터키성'을 옹호하며 이것이 민족성이나 인종이 아니라 그저 시민의식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식의 논법은 부분적으로 정당하다. 일종의 인종주의가 30년 간 집권한 정권의 이념 중 일부였음에도(필자가 최근 쓴 다른 글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애초에 이런 것이 항구적인 공식 정책이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확히 반대 노선의 정책이 공식적인 정책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동화주의(assimilationism)이다.


둘 간의 차이는 파악하기 쉽다. 인종주의자들은 '진짜 터키인'들을 다른 시민들과 분리하기 원할 것이다. 나치가 독일에서 악명 높은 뉘른베르크 법(*)을 이용해서 그랬던 것처럼. 반면에 동화주의자들은 모든 사람을 터키인으로 만들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쿠르드인들을 '산지 터키인' 혹은 '뿌리를 잃어버린 투르크 종족' 으로 정의하거나- 요새 식으로 말하자면 '쿠르드 계통의 우리 시민'으로 정의할 것이다.


뒤의 정의는 동화주의 계획의 보다 성공적인 부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보스니아인, 알바니아인, 체르케스인, 아랍인, 라즈인 등과 같은 비-투르크 무슬림 종족 집단을 광의(廣義)의 터키인에 포함시키는 작업 말이다. 이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점진적이고 조직적으로 수행된 일이다. 자발적으로 동화되어 간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술한 집단들과는 달리 이민 집단이 아니며 수도 꽤 많은 쿠르드인들은 좀 경우가 다르다. 이들 대부분은 동화되지 않았고, 정부의 강력한 강요는 오히려 이 사람들의 자세를 더욱 탄력적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21세기 초의 터키에는 결국 두 개의 구별되는 정체성을 가진 두 개의 집단으로 나뉜 사회가 구축되어 있는 셈이다. 이 사회를 이루는 사람들 중 85%에 속하는 얼마간의 사람들은 '터키 민족'의 자랑스러운 일원이다. 나머지 사람들의 대부분은 쿠르드인으로 구성되며(그리고 쿠르드인과 가까운 자자인Zaza이라는 집단이 하나 더 있다), 극소수만이 스스로를 '터키인'으로 정의한다. 이보다 더 많은 쿠르드 민족주의자들은 '터키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하는 '쿠르드인'들에 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우리 다수파 터키인들이 동질적이며 모든 터키 시민을 포함하는 '터키 민족'에 대해 말할 때 사실보다는 소망에 근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소망은 주장을 단순히 반복하기만 해서는 실현될 수 없다.


 

오스만인에서 터키인으로


19세기에 오스만인들은 더 나은 해법을 고안했었다. 1876년의 제국 헌법에는 "제국의 모든 신민은 오스만인이라 불린다. 모든 오스만인들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황권에 대해 정치적 충성만 바친다면 누구나 시민이 되는 데는 충분했고, 이 외의 정체성 같은 것은 개인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오스만 투르크인', '오스만 쿠르드인', '오스만 유대인'과 같은 개념이 아무 무리 없이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케말주의 공화국이 한 것은 그저 터키령 내에 남은 제국의 다양한 인구 집단들을 동질적인 투르크 민족으로 재정의한 것뿐이었다. 사실 아타튀르크는 20세기 초에 과도적인 "터키에 속하는 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이는 곧 '터키 민족'으로 바뀌었고, 아아, 심지어는 '터키 인종race'이라는 경지까지 나아갔던 것이다! 그의 믿음은 충분한 '교육'과 선전만 거치면 국가는 원하는 어떤 형태로든 사회를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몽상은 명백히 파산했다. 케말주의자들은 종종 내부의 '반역'과 외부의 '음모'를 비난하지만, 이는 사실 그저 인간의 본성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 고유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싶어 한다. 그들이 과거의 기억을 상실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는 오히려 그들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더욱 강화할 뿐이다.


따라서, TESEV의 생각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다. 다양한 '터키에 속하는 민족'은 쿠르드인을 포함하는 개념일 수 있다. 유일한 문제는 터키 사회의 다수가 그러한 다원적 민족 개념을 받아들이기를 꺼려 한다는 것이다. 케말주의가 쿠르드인들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른 민족들을 충실한 터키 민족주의자로 만들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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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법(Nürnberger Gesetze)은 하켄크로이츠를 독일 국기에 삽입하고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입니다. 1935년 9월 15일 통과.